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 16회 - 2016
강혜빈 / 시 / 「열두 살이 모르는 입꼬리」 외 4편
허희정 / 소설 / 「페이퍼 컷」
김영임 / 평론 / 「시인과 재규어」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이 어느덧 16회를 맞이했다. 짧지 않은 세월
동안 『문학과사회』를 발판 삼아 공식적인 창작의 무대에 초대받은 많
은 동료 문인들은 그동안 이 상이 지지하고 독려하고자 하는 문학이란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무엇일지를 다채로운 방식으로 보여주고 있다.
신인문학상 상패에 각인된 ‘문학 혹은 텅 빈 이름의 이름으로’라는 문
구는 한국 문학의 다른 시간을 열어나갈 전위의 미래를 예감하려는 이
상의 제정 취지를 드러낼 뿐만 아니라 『문학과사회』가 지향하는 특유
의 문학적 태도와 믿음까지도 선명하게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다. 문학
은 제도의 산물이지만 동시에 제도라는 이름의 한계가 무화되는 순간
까지도 욕망하는 미정형의 에너지다. 그래서 문학은 늘 텅 빈 이름을
지향할 수밖에 없으며, 늘 다른 이름을 욕망하는 어떤 다른 시간에 다
름 아니다. 심사자들이 신인들의 작품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면서
한편으로는 두려운 심정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는 까닭 역시 바로 여기
에 있을 것이다. 이러한 미지의 가능성을 환대하고 완성되지 않은 미래
에 내기를 걸어야 한다는 점에서 심사 역시 일종의 문학적 모험에 가까
우니 말이다. 세상의 모든 문학을 다시 시작하겠다는 듯한 과감성과 야
망으로 가득한 문학적 동량들의 잠재성을 밝은 눈으로 알아보고 새로
운 이름으로 호명하는 것, 나아가 신생에 대한 의욕과 자기 혁신적 모
험을 독려하는 것이야말로 문학과사회 신인상 심사에 임하는 우리가
감당해야 할 모험임에 틀림없다.
이러한 모험을 꾸준히, 그리고 다양하게 이어나가기 위한 일환으로
올해 신인문학상에서는 심사 방식상의 작은 변화를 꾀했다. 현재 왕성
하게 활동하고 있는 문인들을 초청함으로써 좀더 다양한 문학적 입장
과 취향을 심사에 반영하고 나아가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이 견지하
려는 문학적 모험의 스펙트럼을 확장하고자 한 것이다. 시 부문에서는
최하연, 이제니 시인, 소설 부문에서는 백민석, 한유주 소설가와 함께
투고작들을 꼼꼼하게 살펴보면서 편집동인들(강동호, 금정연, 김신식,
이경진, 조연정)은 한국 문학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패기 넘치는 신
예들을 탐색하고자 노력했다. 4월 17일에 일괄적으로 예심을 치르고
시 부문은 4월 23일, 그리고 소설과 비평 부문은 4월 30일에 각각 본심
을 진행한 끝에 올해는 실로 오랜만에 세 부문에서 모두 당선작을 뽑는
기쁨을 맞이하게 되었다. 당선자 세 분께 아낌없는 축하를 보내며, 문
학의 이름을 새롭게 갱신하는 모험에 동참해준 모든 응모자들께 감사
와 응원의 말을 전한다. 앞으로도 『문학과사회』는 문학이라는 이름 너
머를 응시하고 한국 문학의 새로운 경계를 창안해내는 모든 도전적인
작품들을 두렵고도 떨리는 마음으로 기다릴 것이다.
[시 부문]
_쌍비읍 같은 건 여기서 찾지 마세요*
✽ “쌍비읍 같은 건 여기서 찾지 마세요”는 당선자의 응모 작품 중 지면에 실리지 않은 「8번 공」 에 나오는 문장이다. “내가 흰 공이 되어 굴러가는” 꿈이 등장하는 그 시의 마지막 행은 이렇다. “당신은, 지금 나의 반대편으로 굴러가고 있는 사람”. 바라건대, 부디 계속 멀어지시길. 그러나저 러나 쌍비읍 하나는 여기에 있소. 뽑.
힘들었고, 부끄러웠고, 이상했다. 6인용 책상 위에 가득 놓인 투고
작들을 하나하나 책상 아래 종이 상자로 옮기는 일은, 쉽지도, 자랑스
럽지도, 당연하지도 않았다. 시를 계량화하는 노동이라니. 나는 비로
소 빌라도의 심정을 이해했다. 심사에 참여한 소감을 쓰는 지금도, 이
이상한 기분은 가시지 않는다. 시를 쓰기 시작한 뒤로, 시는 나에게 목
적이었을까, 수단이었을까. 돌이켜보건대, 아마도, 결국 이도 저도 아
니게 될 것이다. 아무것도 아닌 것이 시인데, 죽기 살기로 쓰는 시인들
이 보낸 시들이 책상 위에서 상자 안으로 옮겨가고 있다. 그중 다섯 편
의 시가 이 책에 실렸다. 상자 안의 시인들에게 용기를 내라는 말은 사
치이고, 오늘도 이토록 진지하게 시를 대하는 문청들이 있다는 상찬은
공직선거용 구호와 같을뿐더러, 뽑힌 시인에게 축하를 건네는 건, 원조
교제를 사랑이라 항변하는 아저씨들의 변론과 같을 것이라서, 모두 생
략한다. 다만, 힘이 들었으니, 상자 속의 시인들에게 조금 덜 미안하고,
부끄러웠으니 ‘당신’을 몰라본 저를 너무 나무라지는 마시고, 이 모든
것이 이상하고 이상했으나, 그럼에도 한 편, 또 한 편, 종이를 넘길 때마
다, 문득문득 나를 아득한 곳으로 이끌어 눈물 나게 한 ‘당신’의 문장들
에게, 두 눈 지그시 감고 안부를 전한다. – 최하연(시인)
시란 무엇인가, 시를 쓴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물음 앞에
서 예심 내내 다소 엄격한 잣대로 작품을 읽어서인지도 모르겠으나 울
림을 주는 작품을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본심에 올라온 작품들을 읽으
면서도 고민은 마찬가지였다. 응모자들의 이름을 바꾸어 읽는다 해도
그리 다르게 읽히지 않을 정도로 비슷비슷한 시편들. 그야말로 잘 만
들어졌다고 여겨지는, 그러나 텅 비어 있는 시들이 대부분이었다. 어떤
간절함을 가지고 써나갔는가, 자기만의 언어를 어디까지 밀고 나갔는
가라는 질문 앞에서 선뜻 손을 들어줄 만한 작품을 찾기 어려웠다. 최
종적으로 정화연, 베이지, 백선율, 강혜빈의 시편을 중심으로 논의를
이어갔다. 정화연은 내면의 밑바닥까지 내려가서 쓴다는 점이 시인으
로서 좋은 덕목으로 여겨졌으나 자연스럽게 터져 나오는 내면의 발화
점이 사라진 자리에서 써 내려가게 될 무엇에 대해서는 유보적인 느낌
이 들게 했다. 베이지는 이미 자기만의 세계를 가지고 있다. 자유자재
로 거침없이 언어와 놀고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이번이 아니더라
도 곧 다른 지면에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백선율은 담백
한 어조가 인상적이었다. 하나 절제된 언어로 써 내려갈 때 단어 하나,
문장 하나가 감당해야 될 무게에 대해 숙고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강
혜빈은 본심에 오른 작품들 중에서 가장 개성적이고 활달한 어법을 가
지고 있었다. 시적 긴장감을 무너뜨리는 몇몇 안이한 문장들이 아쉽기
도 했으나 다양한 이미지들을 조화롭게 불러와 한 편의 시로 구성해낼
줄 안다는 점에서 이후에 써 내려갈 시편들도 기대하게 했다. 당선자에
게 축하의 말을 전한다. 오랜 낙선의 날들을 떠올리며 당선되지 못한 다
른 분들께도 몇 마디 전하고 싶다. 당선작과 낙선작의 차이는 실은 그리
큰 것이 아니다. 심사는 그저 하나의 편견 정도로만 여기고 계속해서 자
신만의 시의 길을 걸어가라고 말하고 싶다. 걸어가는 그 길이 어둡고 무
겁다 해도, 걸어가는 내내 당신 혼자만이 아니라고. 당신의 시가 당신의
곁에서 당신과 함께 걸어가고 있다고. 오늘의 이 어두운 눈을 비웃듯 번
쩍이며 솟아오를 또 하나의 시의 얼굴을 기대해본다. -이제니(시인)
총 507명이 응모한 올해의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 시 부문은 양적으
로 작년과 유사한 수준을 유지했다. 심사를 하는 과정에서 흥미롭게 여
겨졌던 것은 소위 ‘서정시’라고 광범위하게 지칭되는 전통적인 계열의
시들이 해를 거듭할수록 현저하게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예년의 심
사평에서도 유사한 소회를 밝힌 바 있지만, 이러한 현상은 2000년대에
촉발된 다양한 시적 실험의 파장과 영향이 어느새 안정적인 방식으로
시 창작의 현장에 스며들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분명한 징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영향 관계나 모방이라는 단순한 말로 충분히 아우를
수 없을 만큼 이러한 변화의 폭과 깊이는 근본적인 것으로 보인다. 시
에 대한 기존의 관습적인 이해가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
한다는 점에서 이러한 변화는 긍정적인 신호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
이다. 다만 시에 대한 통념의 파괴가 역설적으로 시에 대한 또 다른 형
태의 통념을 낳는 계기가 된 것은 아닌지 냉정하게 되물어야 할 시점에
이르렀는지도 모르겠다. 그 어느 때보다 자신의 감정과 생각들을 낯선
감각으로 능란하게 기록하는 응모작들이 많았지만, 응모자들이 구가하
고 있는 자유가 시에 대한 치열한 사유를 생략하고 포기한 결과가 아니
었는지 의문이 드는 것 또한 사실이다. 경험이 매개되지 않은 날 선 언
어들을 장황하게 전시하도록 내버려두는 듯한 작품들이 적지 않았으
며, 낯설고 특이한 이미지와 단어들을 조합하면 곧바로 시적인 문장을
탄생시킬 수 있다는 안이한 태도 역시 자주 목격되었던 것이다. 1차 예
심을 거쳐 본심에 오른 18명의 응모자들(강은재, 강혜빈, 김민지, 남다
솜, 박경주, 박영, 박하원, 백선율, 베이지, 서호준, 신수형, 양은경, 엄기수,
오경은, 이동호, 이희형, 정솔아, 정화연)의 작품들을 좀더 단호하고 꼼꼼
하게 검토한 것도 그 때문인데, 그 결과 최종적으로 정솔아(「인터뷰이
와 인터뷰어의 관계에 대하여」 외 9편), 베이지(「킷」 외 13편), 백선율(「암
전」 외 9편), 정화연(「유원지」 외 9편), 강혜빈(「열두 살이 모르는 입꼬리」
외 9편)의 작품들을 두고 본격적인 논의를 진행했다.
베이지는 본심에 오른 응모자들 가운데 가장 파격적인 작품 세계를
보여주었다. 그의 시는 기성의 의미를 파산시키고 새로운 의미 생성의
가능성을 집요하게 탐문하려는 의지로 충전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실험적인 의지가 시의 언어를 작위적으로 포박하고 있다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정솔아는 시적인 상황을 재치 있게 조성하는 능력이 범
상치 않았으며 시적 긴장이 일어서는 순간을 감각적으로 응시하고 있
었다. 다만, 시적인 정황과 순간을 연출하는 것에 몰두하다 보니 결과
적으로 시의 전체적인 구조를 희생시키는 경우를 종종 발견했다. 백선
율은 겉으로는 단아하고 미니멀해 보이지만, 현실과 꿈의 경계를 청신
한 감각으로 돋보이게 만드는 능력이 인상적이었다. 다만, 응모한 시편
들만으로는 그의 시가 지닌 스펙트럼의 넓이를 보여주지 못한다는 점
이 아쉬움으로 지적되었다. 전반적으로 시들의 색채가 비슷하다는 뜻
이다.
논의 과정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작품은 정화연과 강혜빈의 시였는
데, 두 응모자의 작품들은 마치 그럴 수밖에 없다는 듯 색채가 서로 달
랐다. 우선 정화연의 「유원지」 외 9편에서는 응모자 자신의 체험이 시
로서 강렬하게 육화되고 있다고 느껴질 만큼 깊은 울림을 느낄 수 있
었다. 타인에 의한 폭력과 고통을 소재로 자신의 일상과 육체를 낯설
게 되돌아보는 그의 시선은 신산한 감동을 선사하고 있었다. 다만 지나
치게 자신의 경험에 몰두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그것이 오히려
신인으로서의 시적 언어의 확장을 가로막는 장벽이 되는 것은 아닌지
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었다.
반면 강혜빈의 「열두 살이 모르는 입꼬리」 외 9편은 이미지들을 감
각적으로 산개해나가는 동화적인 상상력을 독자를 유혹하듯, 매끄럽
고도 유려하게 펼쳐내고 있었다. 시들 사이에는 다소 편차가 있었으나
시적 진술들이 조성하는 리듬감도 매력적이었으며, 여기에 아이 화자
특유의 자유로운 화법이 더해져 「괄호 속에 몸을 집어넣고 옅어지는
발가락을 만지는 중입니다」와 같은 감각적인 작품이 탄생할 수 있었던
듯하다. 오랜 습작을 통해 단련된 시처럼 보이지는 않았으나 때로는 숙
성을 거치지 않은 가능성이야말로 한 시인의 장점을 더욱 만개시키는
창조의 원천이라는 생각 끝에 강혜빈을 당선자로 결정했다. 수상을 진
심으로 축하하며, 모든 응모자들에게 응원과 감사의 말을 전한다.
– 『문학과사회』 편집동인
[소설 부문]
_예심에서 읽은 많은 작품이 글쓰기에 대한 글쓰기, 소설에 대한
소설이었다. 메타소설은 소설은 어떠해야 하는가, 소설은 어떻게 써야
하는가라는 물음이 선행되어야 하므로 많은 습작 경험과 소설 장르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는 제대로 써내기 어렵다. 내가 올린 네 분의 응모
작도 모두 메타소설적 성격을 갖고 있었다. 본심에 올라온 작품들 역시
적잖은 양이 메타소설이라고 부를 만했다. 다른 매체의 신인상에도 이
만큼 메타소설적 성격의 작품들이 응모되는지 궁금할 정도였다. 아마
이것이 오랜 세월 소설의 미학적 전위를 가치 있는 덕목으로 존중해온
『문학과사회』와 문학과지성사가 갖춘, 나처럼 바깥에 있는 독자의 눈
에 어리는, 뚜렷한 색깔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김지연의 「마그마」 「조도」를 추천했다. 김지연의 작품은 긴 호
흡의 문장을 무리 없이 이어나가는 솜씨가 인상적이었다. 삶의 퇴락을
감싸고 있는 어둡고 둔중한, 잘 정제된 목소리 톤은 기성 작가의 작품
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개성적인 것이었다. 나는 무엇보다 「조도」
에서 읽히는 인간의 정신과 행위에 대한 깊이 있는 인식이 좋았다.
허희정의 「페이퍼 컷」은 양식미가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A와 종이
남자, 단 두 인물만이 등장해 플롯을 끌고 나가는 이 소설은, 두 인물 사
이의 갈등 관계에 극단적으로 집중함으로써 작품이 가지는 의미의 외
연을 극단적으로 확장한다. 개인 대 개인의 갈등은 개인 대 세계의 갈
등으로 이어지고, 두 인물의 기이한 행위는 사랑의 행위에 대한 메타포
이면서 한편으론 사회구조적 억압과 폭력에 대한 고발일 수도 있다. 허
희정의 다른 작품 「평서할 수 없는 마음의 상태」는 발랄한 상상력 때문
에 즐겁게 논의되었던 작품이다. 완성도는 떨어지지만 작품을 읽는 기
준이 완성도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서혜진의 「있다」와 「돌아갈 수 있을까」도 인상적으로 읽었다. 일관
되게 단문만으로 한 작품을 완성하는 일은 내 경험으로 미루어보아
쉽지 않은 일이다. 생략에 의해 꼭 필요한 부분만 남긴 압축된 서사는
작품을 시처럼 읽게 한다. 작품에서 펼쳐지는 소설 언어와 인간 심리
에 대한 탐구가 돋보였다. 만만치 않은 훈련을 쌓은 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박새롬의 「모두의 미미」와 「구의 문」은 그의 재능을 기대하게 만든
다. “이제부터 내가 어떤 소리에 대해 생각할 거야, 시작”이라는 문장
에서 읽히듯 이 소설은 언어가 가진 물성에 대한 집요한 탐구다. 언어
로 이뤄진 상징의 세계와 현실의 세계는, 언어의 물성이라는 접점을 통
해 서로 관계를 맺고 영향을 주고받는다. 이 독특한 세계에서 언어는
인물처럼 주체화되고, 인물은 언어처럼 행동한다. 언뜻 이처럼 진지한
언어유희가 또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 백민석(소설가)
수많은 응모작들을 읽어나가며 받은 인상들 중 하나는 작품 속 인물
들이 좀처럼 이동하지 않거나, 현실과 유리된 장소로의 탈주를 비현실
적으로 실행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오늘의 한국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근대적’ 의미에서의 이동을 감행하기란 어렵다고 생각하는 입장에서,
먼저 이동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조건들을 고찰하거나 혹은 비현실적
이동의 현실적 의미를 묻는 소설들을 관심 있게 살펴보게 되었다.
전자의 인물들이 폐쇄적인 가정이나 고시원, 클럽, 편의점 등으로 대
표되는 한정된 공간에 머문다면, 후자의 인물들은 IS 주둔지나 옛날 사
이버펑크적 세계관을 연상시키는 멸망 이후의 세상을 떠돌아다니고
있었다. 양쪽의 인물들 모두에게서 장단점을 찾을 수 있었는데, 전자에
서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들을 던지고는 있지만 이야기들
이 다소 천편일률적으로 보인다는 점과 후자에서는 날렵하고 매끄럽
게 이야기를 전개하는 솜씨에도 불구하고 해당 소재나 세계관을 채택
한 합당한 이유를 좀처럼 찾기 힘들다는 점을 단점으로 지적할 수 있었
다. 또한 많은 응모작들이 소설이 반드시 이야기로 환원될 수 없는 까
닭을 고민하고 있었으나, 거친 방법론을 선보이거나 맹렬한 분투로 이
끌어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아쉬움을 남겼다.
고심 끝에 본심에 올린 작품들 중 남현정의 「마라와 드라이버」는 이
동이라는 관점에서 신선하게 읽히는 단편이었다. 구체적이면서도 불
분명하게 제시되는 목적지로 이동하는 인물을 냉소적인 유머로 그리
는 동시에 아버지의 부재를 교묘하게 끼워 넣는 솜씨가 훌륭했다. 그러
나 후반부로 갈수록 ‘수다’를 빌려 이야기를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 아
쉬웠다. 최현아의 「터널」은 깊은 울림을 주었다. 일종의 종말이 지나간
이후의 세상을 맴도는 ‘나’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이 이야기의 마지막
부분에는 누구라도 세월호 사건을 떠올릴 수밖에 없는 대목이 나타난
다. 거대한 비극 앞에서 한낱 소재주의에 빠지거나 이야기의 외설성에
압도되지 않고 자신의 사회적 책무를 다하려고 노력하는 작가의 태도
를 볼 수 있어 반가우면서도 고개가 숙여졌다. 이 작품이 지닌 많은 요
소들이 좀더 매끄럽게 봉합되었더라면, 선택을 망설이지 않았을 것이
다. 김지연의 「마그마」와 「조도」는 마지막까지 고민을 거듭하게 했다.
두 작품 모두 도입부부터 독자를 몰입하게 하는 힘이 대단했고, 이 힘
은 이야기의 마지막까지 균일하게 유지되고 있었다. 불필요한 선택을
찾아보기 힘든 경제적인 묘사와 서술방식 역시 인물의 내면에 조용히
집중하게 했다. 그러나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유려한 필치에 비해 해당
이야기 자체가 다소 흐릿하게 뒤로 물러나 있다는 점으로 인해 선택을
주저하게 되었다.
허희정의 「평서할 수 없는 마음의 상태」와 「페이퍼 컷」은 색다른 매
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두 작품 모두 일반적인 ‘메타소설’이 지닌 피할
수 없는 지루함을 새로운 관점으로 타파하고 있었는데, 그 중심에는 각
각 복사기와 종이라는 평범한 사물들을 통해 글쓰기와 소설의 실체에
대해 묻는 질문이 놓여 있었다. 「평서할 수 없는 마음의 상태」는 다소
성급한 마무리가, 「페이퍼 컷」은 강력한 이미지에 비해 약간 헐거운 구
조가 단점으로 지적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에 대해 신선하
고 활달한 시각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 상당한 장점으로 여겨졌다. 하
여 허희정의 작품을 선택하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응모작들 앞에서 가장 먼저, 그리고 맨 마지막까지 일관
적으로 갖는 감정은 부끄러움이다.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고민하고 썼을
응모자들에게 무한한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한편으로는 원고지
80매에서 1백 매 내외로 규정된 분량이 더 자유롭게 소설을 쓸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지만, 여기서는 분량의 강박 없이 좋은 작품을 생산할 수 있는
토양이 점진적으로 마련되기를 바란다는 정도로 정리하기로 한다. 당
선자에게는 축하를, 응모자들에게는 감사와 격려를 보낸다. – 한유주(소설가)
올해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 소설 부문 응모자는 총 444명으로 그
중에서 소설 부문 예심을 통과한 응모자는 총 16명(고미성, 김계피, 김
광균, 김지연, 남현정, 박새롬, 박세현, 배보람, 서혜진, 손은지, 안태연, 이
동민, 이정옥, 최원섭, 최현아, 허희정)이었다. 본심을 통과한 작품들은
예년보다 많았지만, 본심은 예상 외로 싱겁게 진행되었다. 김지연과 허
희정의 2파전으로 논의가 빠르게 압축되었기 때문이었다. 이 두 사람
의 작품을 논하기 전에 먼저 본심에서 거론된 몇몇 작품들을 언급하고
지나가려 한다. 우선 후장사실주의에 대한 오마주라 할 법한 최원섭의
「후장」은 유머 감각이라는 근래 보기 드문 장점을 지닌 작품이었지만,
그의 다른 작품 「핑」과 마찬가지로 성을 바라보는 시각이 지나치게 진
부하다는 것이 큰 단점으로 지적되었다. 남현정의 작품들도 몇몇 심사
위원들의 이목을 끌기 충분했다. 특히 ‘끊임없이 이동 중인 블라디미르
와 에스트라공’을 연상케 한다는 평을 받은 「마라와 드라이버」는 마라
와 택시 드라이버라는 두 인물의 끝없는 유예와 공회전의 서사가 매력
적이었다. 하지만 마라의 목적이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것이었다는 다
소 도식적인 설정이 그 매력을 반감시켰다.
이제 우리를 행복한 고민에 빠뜨린 김지연의 작품으로 가보자. 「조
도」와 「마그마」 두 편을 응모한 김지연은 응모작 두 편이 모두 고르게
수준이 높아 그의 내공을 짐작게 했다. 두 편 다 신인답지 않은 탄탄한
문장력과 안정된 구성력, 삶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 그리고 이러한 성
찰을 성급하게 자랑하지 않는 절제의 미덕을 갖추고 있었다. 「마그마」
는 이미 자살한 화자가 한때 자기를 이루었던 ‘마음들’을 덤덤하게 추
스르는 구성력이 돋보이는 작품이고, 「조도」는 습기와 소금기로 질식
할 것 같은 어느 부둣가 마을의 스산하고 무기력한 풍경들을 담담하면
서도 밀도 있는 어조로 소묘하는 작품으로서, 뛰어난 문장력이 시선을
붙드는 작품이었다. 그렇지만 그가 하는 이야기에서 신인다운 새로움
을 발견하기는 쉽지 않았고, 기성 작가와 구분되는 문체상의 개성도 뚜
렷하게 보이지 않았다. 이러한 이유에서 우리는 안타깝지만 김지연을
당선자로 선택하는 데 망설이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를 곧 문단에
서 만나게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우리가 선택한 작가는 허희정이었다. 허희정의 작품 두 편은 군데군
데 문장이 거칠고 전체적으로 완성도가 떨어지는 단점이 있었다. 하지
만 우리가 귀하게 여긴 것은 그의 이야기꾼으로서의 재기발랄한 상상
력이었다. 「평서할 수 없는 마음의 상태」는 발칙하고 수다스런 복사기
를 모델로 삼아 소설을 쓰려는 작가 지망생의 욕망과 체념이라는 흥미
로운 서사를 들려주었다. 그의 또 다른 작품 「페이퍼 컷」은 빚쟁이처럼
진술서를 독촉하는 ‘종이 남자’와의 사투를 다룸으로써 글 쓰는 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밖에 없는 백지에 대한 공포를 신선한 상상력으로 풀어
간다. 두 작품 모두 다른 방식으로 소설 쓰기의 어려움을 진술하는 것
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어려움에 대응하는 방식은 서로 반대이다. 첫
번째 작품이 무한히 더해가는 보르헤스적인 도서관의 우주를 동경하
고 있다면, 두번째 작품 「페이퍼 컷」에서는 무한히 나뉘는 미분의 세계
를 탐닉한다. 여기에서 언어는 어떠한 진술도 가능하지 않고, 적분이
불가능한 미분의 세계 속에서 궁극적인 파괴를 경험한다. 하지만 이것
은 어떤 종말의 서사로 읽히지 않는다. 매번 커터칼을 새롭게 집어 드
는 행위는 새로운 소설의 시작을 알리는 몸짓처럼 경쾌하다.
이번 소설 부문 심사에서 눈여겨볼 만한 현상은 ‘소설에 대한 소설’,
즉 메타소설의 범람이었다. 젊은 작가 지망생들 사이에서 메타소설이
붐을 맞이한 것인지, 아니면 『문학과사회』의 ‘전통적인 취향(?)’을 공
략하는 전략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보르헤스의 영향이 반세기를 넘
어서 한국의 젊은 작가들을 사로잡고 있다는 것은 무척 흥미로운 징후
였다. 그러한 소설들이 모두 흥미로운 것은 아니었지만, 허희정의 소설
은 이런 넘쳐나는 메타소설들 중에서 단연 돋보이는 장점을 지니고 있
었다. 그것은 바로 가벼움이었다. 그의 작품은 자신이 쓰고 있는 주제
의 진지함과 난해함에 한없이 함몰되어버리는 다른 메타소설들과 달
리 발랄함과 가벼움을 갖추고 있었다. 소설의 실패와 소설가의 좌절을
하나의 소설로 제출하는 소설들은 많다. 그러나 과잉된 자의식과 우울
에 빠지지 않고, 소설의 막다른 벽을 넘어보려는 경쾌한 몸짓을 지닌
소설은 많지 않다. 그 가벼움이 앞으로도 소설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패
기를 잃지 않는다면, 그리고 피상성과는 다른 명랑함을 띨 수 있다면,
허희정이라는 새로운 작가의 출현을 기대해봄직하다. 축하의 인사를
보낸다. – 『문학과사회』 편집동인
[평론 부문]
_평론의 하중학 荷重學. 심사하는 동안 건축가 마리오 살바도리의
『건축물은 어떻게 해서 서 있는가』(기문당, 2005)를 읽었다. 제출된 평
론들이 재미없어 한 짓은 아니다. 오해 마시길. 책 속엔 건축물이 서 있
기 위한 다양한 요소가 소개되었다. 특히 적재하중이란 용어에 관심이
갔다. 적재하중은 한 건물 안에 들어갈 사람, 가구, 시설 등을 따져 최악
의 변수를 고려해 설정되는 일종의 ‘무게 견딤값’이다. 건축가는 하중
을 통해 구조물이 세워지고 있다는 ‘주조감’뿐 아니라, 언제든 그 구조
물이 무너질 수 있다는 ‘붕괴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평론도 그렇지
않을까.
심사장으로 돌아온다. 응모작의 외관은 화려했다. 하나 평자가 택한
텍스트의 무게, 평자가 텍스트를 통해 보여주려는 비평적 의지의 무게
를 서로 예민하게 견주는 평문을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특히 심사자
들은 ‘해설의 무게’에 관해 이야길 나눴다. 평자들은 자신이 읽은 텍스
트와 그 텍스트를 만든 작가의 영토를 떠나 다른 영토를 상상한다. 누
군가 동참하길 바라며. 해설은 떠나야 할 필요성에 믿음을 부여하는 장
치로 쓰인다. 다만 해설의 무게가 과하면, 애초의 의도는 틀어진다. 평
문을 읽는 이들은 툴툴거리기 시작한다. 우리가 왜 평자가 제안한 영토
로 가야 하는 거지? 평자는 당황스럽지만 여정을 이어나간다. 그때 평
자의 해설은 자신의 설계가 얼마나 건실한지 고집하는 외로운 열정으
로 쪼그라든다.
대다수 응모자가 그러했다. 서두에 언급된 대담한 제안들은 결언에
느닷없이 나타났다. 본문엔 제안을 든든하게 다지는 내용 대신, 해설을
위한 해설이 그득했다. 평자 자신도 왜 그 지점을 세세히 짚어야 하는
지 멍한 상태에서 평자의 에너지가 엉뚱하게 소모되는 상태. 이와 관련
하여 응모자들이 자신의 설계가 얼마나 꼿꼿한지 증명하고자 내건 전
략에 대해선 언급해두고 싶다. 가령 심사자들은 여러 시인의 작품을 평
자 자신이 구상한 공통의 테마로 묶어낸 기획물을 유심히 살폈다. A, B,
C라는 시인이 평자가 포착한 문제의식을 보여준다고 했을 때, A와 B,
B와 C, A와 C 간의 이음새는 의문스러웠다. 무엇보다 평자들은 헐거움
을 메우기 위해 고유의 분석력을 밀어붙이는 대신, 시적 감성이 자아내
는 통찰력 어린 문장에 쉽게 기대고 있었다. 응모자들이 보여준 평문은
(의도치 않았겠지만) 작가의 예지력에 투항한 ‘예찬학’에 머물었고, 시
어의 감미로움에 젖어든 문체는 필요 이상으로 장엄했다.
심사자들은 평어의 무게에 예민한 사람을 찾고 싶었다. 심사자들을
사로잡은 ‘치고 나온 문제작’은 없었지만, 그 대신 감당할 수 있는 무게
를 감안하며 넌지시 화제를 던지는 평자에게 한 표를 던져야겠다고 생
각했다. 우리는 고민 끝에 김영임의 「시인과 재규어」를 당선작으로 정
했다. 본 평론은 진은영의 시 세계를 다루었다. 일단 김영임이 두드러
진 점은 자신의 평문이 어느 위치에 있어야 하는지 자리를 찾는 노력이
었다. 자신의 수사력搜査力에 취해 몽롱한 해설의 검은 구멍으로 들어간
응모자들에 비해, 김영임은 2000년대 이후 한국 문학에 대한 평론의
‘위치감’을 의식하려는 모습을 놓지 않았다. 둘째, 평자가 자신이 설정
한 평론의 무게를 감당하는 데엔 동원되는 재료도 중요한데, 김영임은
자신이 준비한 재료를 잘 부릴 줄 알았다. 몇몇의 응모자들이 다종다양
한 대중문화적·예술적·문헌적 재료를 가미하다가 정작 그 재료의 난
해함에 헐떡거렸기에 이 점은 더욱 눈에 들어왔다. 셋째, 김영임의 평
론엔 꺼낸 말을 향한 집요함이 있었다. 본 평문은 시가 인간, 비인간의
존재 사이를 관통하며 인간의 세계에서 느끼기 힘든 감각의 경험과 재
배치를 실현할 수 있는가를 고민하는 데 주력했다. 이를 위해 김영임은
“어머니, 정말 시 수업이 도살장을 폐쇄시킬 수 있으리라 믿으세요?”란
쿠체의 소설 속 문장으로 문을 열면서, 이 질문을 계속 이어나가려는
탐문의 단계를 밟아갔다. 당선자에게 축하의 말을 건넨다.
실토 한 가지. 심사하기 전 나는 출품작들이 죄다 ‘전략적 체념’만 그
윽한 평문이면 어쩌지 걱정했었다. 피로와 무력감에 휩싸인 채 행여 평
자들이 벼려낸 이죽거림에 전염되어 더 피곤하진 않을지 심사를 꺼렸
었다. 하지만 이는 기우였다. 심사를 한답시고 응모자들의 좋은 지적
영양제만 맞고 끝맺은 건 아닌지 괜히 죄스럽다. 뽑는 사람이나 뽑히는
사람이나 뽑아야 하고 뽑혀야 한다는 얄궂은 운명에 처해 있지만, 영역
을 불문하고 심사라는 과정은 늘 하나의 깨달음을 주는 것 같다. 절실
함. 아직 이곳엔 할 일이 많다…… – 『문학과사회』 편집동인
수상자: 강혜빈
장르: 시
작품: 「열두 살이 모르는 입꼬리」 외 4편
수상 소감:
나는 꿈을 자주 꾸는 아이였다. 내 눈물의 일부는 잠에서 깰 때 쓰였
다. 그곳에 살아 있는 ‘나’들은 이름이 없다. 매일 새로운 방식으로 죽고
다시 태어났다. 등으로 착지하는 돌고래와 파랑으로 범벅된 교실. 위아
래가 없는 계단. 밀물 같은 아이들. 그리고 얼굴이 지워진 나. 일어나자
마자 비몽사몽을 기록했다. 조그만 꿈들이 뭉쳐 나를 좀더 단단하게 만
들었다. 나의 십대는 고장 난 장면들을 조립하다가 끊임없이 실패했다.
언제나 솔직한 일기를 썼으나 언제나 빼앗겼다. 선생님은 빨간 펜을 들
었고 모르는 친구들이 일기장을 돌려 읽었다. 그런 기분으로 시를 썼다.
의사는 내게 숨을 너무 많이 쉰다고 했다. 내 몸에 안 맞는 숨을 집어
먹어서 내가 자꾸만 불어났다. 불안은 나의 나쁜 친구다. 마음에 조금
이라도 틈이 생기면 금세 비집고 들어오는. 그만 가주겠니, 예의를 차
려 물어보면 앞뒤 없이 화를 내는. 나를 너무 사랑하는 그 아이는 그래
도 다시 올 테지만. 그래도 죽지는 않는다는 말이 가장 재미있어졌을
때. 시인이 되었다.
당연한 것에 질문을 던지는 일. 사람을 생각하는 일. 곁을 바라보는
일. 학교에선 그런 것들을 배웠다. 검은 피켓을 들었고 찬 설움을 마셨
다. 우리는 지거나 이기지 않았다. 나의 무수한 고백을 듣고 손을 내밀
어주었던 그들을 기억한다. 적어도 누구보다는 불편하고 싶다. 이가 뾰
족한 부끄러움을 거느리고 싶다. 화를 축축한 곳에 두고 오래오래 기를
것이다. 커다란 얼음을 물고 있는데 어쩐지 뱉을 수 없는 느낌처럼. 얼
얼한 시를 쓸 것이다.
한 번도 제게 틀렸다 말한 적 없으신 어머니, 감사합니다. 언제나 제
선택을 믿고 지켜봐주신 덕분에 마음껏 아파하고 마음껏 시를 쓸 수 있
었습니다. 길을 헤맬 때에도 ‘첫’을 잊지 않게 해주신 유현아 선생님,
감사합니다. 당신께 시를 배웠고 사람을 배웠습니다. 저는 비로소 온전
히 저로서 있을 수 있습니다. 영원한 스승 박철우 교수님, 정신적 지주
이연희 교수님, 감사합니다. 이제 싸우는 것은 제가 하겠습니다. 나의
오빠 같은 동생 현빈이, 사랑하는 나의 첫 독자 외할머니, 새로운 영감
이 되어준 지후 삼촌. 기꺼이 함께 흔들리고 있는 나의 벗 현석, 선. 늘
다정한 안부를 전하고픈 다슬, 연실, 우석 오빠. 따뜻하게 곁을 내준 유
정이, 수현이, 윤희, 지우 언니, 효정이. 물고기 다방 그녀. 제게 시가 되
는 모든 존재들, 사랑합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저로서 다시 살아볼 수
있게 기회를 주신 심사위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첫’을 잊지 않고 열
심히 쓰겠습니다.
작가 소개:
1993년 성남에서 태어났다.
2016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사진가 ‘파란피’로 활동 중이다.
수상자: 허희정
장르: 소설
작품: 「페이퍼 컷」
수상 소감:
당선 소식을 듣고 내 입에서 가장 먼저 튀어나온 말은 “왜요?”였다.
의심과 혼란과 흥분의 나날을 보냈고, 사랑하는 이들에게서 분에 넘치
는 축하를 받았으며, 당선되었다는 원고를 몇 번씩 다시 읽어보기도 했
지만, 여전히 답은 찾지 못했다. 아마 나는 영원히 답을 찾을 수 없을 것
이다. 다만, 앞으로의 행보가 곧 나의 답안지가 되리라는 생각을 할 뿐
이다.
돌아가신 외할아버지께서 이 소식을 들으셨더라면 정말 기뻐하셨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외할아버지의 말씀과 책 들은 여전히 나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
유주 언니, 지금 이 모든 게 2010년 2학기 소설 쓰기 수업에서 시작
된 거란 생각이 들어요. 항상 지켜봐주셔서 감사해요.
희란 언니, 앞으로 함께 고군분투할 생각을 하니 엄청 신나요! 그리
고 단 언니와 선민 언니, 조금이라도 앞으로 나갈 수 있었다면 그건 언
니들과 함께한 시간 덕분일 거예요. 앞으로도 쭉 함께하고 싶어요.
도현 오빠, 등 떠밀어줘서 고마워요.
사랑하는 연세문학회 동기, 선배, 후배 들. 여러분은 토익 점수 잘 받
으려고 영어 공부하는 것 같았던 내게 글을 쓰는 것이 그 자체로 얼마
나 신나고 즐거운 일인지 다시금 깨닫게 해준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이
있어서 하루라도 더, 그리고 한 글자라도 더 쓸 수 있었어요. 진우랑 원
이, 폭풍 같았던 이십대 중반을 함께한 내 친구들. 고마워. 김영우, 빨리
잘되자. 나 다음 차례는 너야, 알지? 신영아, 너와 버스에서 나눴던 얘
기들이 나를 여기까지 데리고 온 것 같아. 평생 같이 쓰자. 영건, 뭐 하
나 보여줄 때마다 A4 너덧 장씩 꼼꼼히 감상을 적어줬던 걸 기억해. 그
말들이 굉장히 큰 힘이 되었어.
수상 소감을 쓰고 있는 오늘, 5월 12일은 남자 친구의 생일이기도 하
다. 평생 단 한 번뿐일 신인상의 수상 소감을 남자 친구에게 선물하고
싶다. 그는 나의 가장 오랜 지지자이자 첫 독자이며, 서울 지도라고는
매일 타는 버스 노선밖에 몰랐던 나에게 지도가 넓어지는 경험을 선사
해준 사람이기도 하고, 나의 조잘거림을 성심성의껏 빠뜨림 없이 들어
주는 사람이며, 동시에 쓰는 손만 있고 보는 눈은 없는 내게 언제나 조
언을 아끼지 않는 사람이다.
항상 뜬금없이 이런저런 일을 벌이곤 하는 큰딸을 묵묵히 지켜봐주
신 부모님, 그리고 동생들에게도 사랑과 감사를 전하고 싶다. 엄마, 아
빠, 유정, 승연, 다들 너무 다르지만, 그래도 이렇게 서로 다른 사람들과
가족이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나날이 늘어가고 있다.
마지막으로, 부족한 원고에서 일말의 가능성을 발견해주신 심사위원
분들께도 감사드린다.
작가 소개:
1989년 서울 출생.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및 같은 과 대학원 재학 중.
수상자: 김영임
장르: 평론
작품: 「시인과 재규어」
수상 소감:
포르투갈의 시인인 페르난두 페소아는 인생을 심연으로 가는 마차
를 기다리며 머무르는 여인숙에 비유했다. 그 마차가 우리를 어디로 데
려갈지는 알 수 없다. 내려보니 바로 여기다. 문학 옆에 와 있다. 그것도
바싹.
서가 문을 열면 밀려드는, 초콜릿 향 같은 오래된 종이 냄새가 좋아
중학교 다니는 내내 도서관 청소를 좋아했다. 그러다 우연히 빌려간 연
애소설에 나오는 주인공들을 마음속으로 조롱하기도 하고, 가끔은 그
속에 빠져 우울해하면서 사춘기 시절을 보냈지만, 나의 문학은 거기까
지였다.
그러다 문득 궁금해졌다. 그들은 문학 안에서, 그것도 누군가는 사망
선고를 내린 그 영역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처음에는 거만하게
팔짱을 낀 채 말을 걸었다. 하지만 아마 내면에는 응답을 기다리는 절
박함이 있었을 것이다. 조금씩 퍼즐이 맞춰지면서—비록 그것이 나의
착각일지라도—어린 시절 나를 행복하게 했던 문학의 기억을 다시 떠
올리고 용기를 냈던 것 같다. ‘그렇지, 문학은 그랬었지’라고.
하지만 내 자리의 이름은 여전히 문학 밖의 독자일 뿐이다. 다소 꼼
꼼하고 궁금증이 많은, 그리고 해답을 찾기 위해 글을 쓰는 독자. 작가
들과 수많은 책들 속의 사유의 조각들을 가지고, 나 개인의 궁금증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퍼즐을 맞추는 사람. 그래서 이번 수상 역시 휴스,
쿠체, 랑시에르, 진은영에 대한 빚에 다름 아니다. 갚지 못할 빚이지만,
오롯이 묵묵하게 갈 길을 가고 있는 문학이라는 마차에 승차하면서 더
많은 빚으로 갚아나갈 것을 다짐한다.
부족한 글을 선택해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나
이 많은 제자의 망설임에 항상 큰 버팀목이 되어주시는 이선이 교수님
과 경희대학교 국제한국언어문화학과의 여러 교수님들, 그리고 비평을
만나게 해주신 남승원 선생님, 감사드립니다. 지윤이, 그리고 한국현대
문화 연구회 동학님들, 즐거운 대학원 시절을 보내게 해줘서 고맙고 앞
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연로하신 어머님들께 이 글을 통해 사랑의 마
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항상 제 글의 첫번째 독자인 B에게
감사와 존경을 전합니다.
작가 소개:
김영임. 1970년 부산 출생. 경희대학교 국제한국언어문화학과 박사과정 수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