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 10회 - 2010

윤해서 / 소설 / 최초의 자살

김엄지 / 소설 / 돼지우리

황혜경 / 시 / 모호한 가방 외

선정 개요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이 제10회를 맞게 되었다. 2000년대 문학의 새로운 상황에 호흡을 맞추기 위해 제정된 이 신인문학상은 그동안 시인 하재연, 최하연, 최원준, 박성준과 소설가 정이현, 한유주, 최제훈, 박혜상, 그리고 비평가 이수형, 허윤진, 김대산, 권온, 김나영 들을 배출하였다. 이 문학상을 통해 배출된 젊은 문학인들이 2000년대 문학 공간에 창조적 활기를 불어넣은 것에 대해 우리는 깊은 보람을 갖고 있다. 이에 지난 10년 동안의 경험을 토대로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의 새로운 발전을 위해 몇 가지 새로운 제도적 변화를 시도하게 되었다. 우선 봄호에 발표하던 신인문학상을 여름호에 발표하는 것으로 시기를 조정하였고, 신인문학상 예심에 외부의 젊은 비평가들을 참여시켰다. 그리고 수상자에게 그동안 원고료를 지급하던 것을 상금을 지급하는 것으로 전환하였다. 이런 변화를 통해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이 젊은 문학적 에너지가 집결되는 장으로서 전통을 이어가고, 또 한 번의 도약을 이룰 수 있기를 바란다.
단순히 10년이라는 세월이 주는 무게감 때문만이 아니라 상금을 내건 첫번째 공모라는 점에서도 올해의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은 편집동인을 포함한 심사위원들에게 각별한 기대를 갖게 했다. 최근 다른 문예지들의 문예공모나 신문사 신춘문예에서 내거는 상금의 액수가 날로 치솟고 있다는 소문이 『문학과사회』에까지는 이르지 않았다고 한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다만 문학이 화폐로 환산 가능한 교환가치를 가지는 것인지, 또 가져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 『문학과사회』는 항상 회의적이었고, 그런 이유로 그간의 인색함(?)에 대해서도 그다지 부끄러워할 이유는 없었다. 다행히도 우리 문학판에 아직 얼마간의 염결함은 남아 있어, 그간 ‘상금 없는’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에 공모해온 재능 있는 신인들은 줄어들지 않았고, 그렇게 배출된 적지 않은 수의 문인들이 주목할 만한 활약상을 보여줄 때마다 뿌듯하고 자랑스러웠던 것은 비단 편집동인들의 마음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니 올해부터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 수상자에게 주어지는 상금은 그저 화폐로 환산 불가능한 일생의 노역에 뛰어든 무모함에 대한 보상이라고 해두자. 다만 그 초라한 보상에 비하면 과분할 만큼 좋은 작품들이 예년에 비해 차고 넘쳐서 심사 과정이 순탄치 않았다는 사실은 덧붙여두고 싶다. 심사 과정 내내 심사자들 모두 행복하게 피로했다.

심사평

_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에 대한 관심과 열기를 반영하듯, 올해 신인문학상 시 부문에는 총 495명이 응모를 하였다. 응모자 수와 작품 수준이 비례하는 것은 아니지만, 올해는 예년에 비해 빼어난 기량을 선보이는 이들이 많았다. 예심을 맡은 세 명의 심사위원은 그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이 한국문학에 참신한 기운을 불어넣고 고유의 개성적 목소리를 내는 이들에 주목하였던 점을 우선적으로 고려하였고, 오랜 숙고 끝에 11명의 작품을 골라내었다. 이 중 최종 본심에서 논의된 작품은 김새봄의 「장국영」외 9편, 박지혜의 「센티멘탈왕」 외 11편, 이수현의 「나의 자랑, 아프리카」 외 8편, 진수현의 「묵시록의 기사」외 10편, 황혜경의 「모호한 가방」 외 14편이었다. 최종 심사에 남은 다섯 명의 작품은 누구를 당선자로 결정해도 무리가 없다고 여겨질 만큼 완성도 면에서 고른 수준을 보여주고 있었다.
2000년대 이후 한국 시는 평단의 많은 우려 가운데서도 다양한 형식 실험과 혁신적인 시 의식에 힘입어 이전의 시와 확연히 구분되는 형태로 분기되었고, 지금 이 순간에도 전인미답의 지평을 열기 위한 걸음을 줄기차게 이어가고 있다. 2000년대 등장한 신진들에 의해 주도된 이러한 흐름이 일시적인 세대적 특질로 마감될지, 한국 시사에 또 다른 진화가 모색된 역사적 결절점으로 기억될지 아직 속단할 수 없지만, 기성 시단으로의 진입을 시도하는 응모자들의 주된 경향이 2000년대 이후 본격화된 한국 시의 변화에 깊이 반향하고 있다는 점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물론 이런 현상을 예의 주시하는 입장에서는 ‘영향에 대한 불안’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가령, 유행을 따르듯 앞 세대를 모방하는 아류의 대량 생산은 예상되는 가장 부정적 영향에 속한다. 이번 신인상에 응모된 작품 중 좋은 시의 전범을 2000년대 시에서 찾고, 그것을 무반성적으로 수용하여 남의 것을 제 것인 양 가장한 경우도 없지 않았다. 예심을 통과한 작품의 상당수도 그렇고, 본심에서 거론된 이들의 시에도 2000년대 이후 한국 시의 급진적 변화의 영향은 상당히 농후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상과 달리, 아니 예상보다 훨씬 더, 시적 영향의 개연성과 필연성은 긍정적 효과를 낳고 있는 듯하다. 본심에 오른 응모작의 수준이 이를 입증하고도 남음이 있다. 기존 형식의 구태의연함에서 벗어나려는 시적 파격과 그것을 시 내부에서 통어하는 언어의 장악력이 치우침 없이 결합된 것을 이들의 작품에서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김새봄의 시는 표현하기 힘든 미묘한 감정의 층위를 일상이 기묘하게 각인되는 순간과 결부시켜 되살리는 능력이 돋보였다. 산문시임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리듬감을 조성하여 이를 서정적 분위기로 환원할 줄 아는 감수성은 앞으로 잘 살릴 필요가 있다. 박지혜의 시는 허무로부터 발성되는 언어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몸으로 겪으며, 마치 태고의 주술사가 이 세상에 없는 언어를 지하 밑바닥에서 끄집어내어 자기 육체를 통과시켜 정화하는 듯한 읊조림이 투명한 아름다움을 빚어내고 있다. 이수현의 시는 화자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깊은 공허와 슬픔이 예기치 못한 순간 흘러나와 굳건해 보이는 현실 세계를 모호하고 흐릿한 시공간으로 바꾸는 환상적 찰나를 간결한 언어와 감각적 묘사를 통해 표현하고 있다. 진수현의 시는 추상적 관념의 감각적 형상화에 능한데, 터부시되는 한자어를 기술적으로 사용하여 숭고한 것의 이미지화에 성공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근래 보기 드문 강건한 진술적 어조가 인상적이었다. 황혜경의 시는 생활의 사소한 단편을 비범한 의미를 내재한 존재론적 사건으로 통찰하는 시인의 직관이 빛을 발한 경우이다. 사건의 의미성이 무엇인지 간파하여 그것을 그 자체로 드러내는 유일어를 찾아내고, 오직 그러한 유일어로만 이루어진 밀도 높은 시를 빚어내는 힘은 자기 고유의 시 세계를 창조하기에 모자람이 없다.
이들 모두 당선작으로 내어도 좋을 만큼의 완성도를 보여주었기에 최종 선택이 어렵지 않을까 예상되었으나, 의외로 당선작을 결정하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만큼 당선자인 황혜경의 시가 다른 이들을 압도할 만큼 뛰어나다는 데 이견이 없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활동한 기성 시인이 아니냐는 즐거운 오해를 살 만큼, 황혜경의 시는 언어를 다루는 솜씨가 미숙함을 찾아볼 수 없는 완숙한 경지에 달해 있고, 그것을 세련되게 제어하는 능력뿐만 아니라, 자기 시의 문법을 어떻게 주조해야 할지를 본인 스스로가 터득하고 있다는 점이 높이 평가되었다. 덧붙여 그의 시가 2000년대 등장한 젊은 시인들의 단점과 아쉬움을 한 단계 극복하면서 그만의 정수(精髓)를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라는 평도 있었다. 오랜 시간 동안 시 쓰기에 자기 전부를 걸었을 당선자에게 아낌없는 축하를 보낸다. _시 예심: 강계숙 송종원 조연정 본심: 강계숙 이광호 우찬제

_2010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 소설 부문에 단편 혹은 중편소설을 투고한 응모자는 총 482명이었다. 응모작은 테이블 가득 쌓였고, 거기서는 지금 이곳의 현실을 가깝게 반영한 사건이 전개되고 있는가 하면, 보편적이고 전통적인 주제의 담론이 진행되기도 했으며, 이쪽도 저쪽도 아닌 전혀 새로운 세계가 형성되고 있기도 했다. 어떤 경향을 찾기는 어려웠으나, 예심위원들은 그것이 혼돈이라기보다는 활력으로 불릴 수 있기를 기대하며 기꺼이 심사에 임했다. 그 활력은 현재 소설 문단이 보여주는 다양성의 반영이기도 했고,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에 집결된 젊은 문학도들의 에너지의 총화이기도 했다.
그중 10명(김신재, 김엄지, 김치수, 서수진, 양귀헌, 윤해서, 이가흔, 이영호, 전은지, 조하나)의 후보자가 일차적으로 제10회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 소설 부문 수상자 후보에 올랐고, 행복한 피로 속에서 계속된 한나절의 토론이 끝나자 최종적으로 김엄지의 「돼지우리」, 서수진의 「사랑한다면 코카콜라를」, 이가흔의 「흰색은 왜 검은가」, 윤해서의 「최초의 자살」 네 작품이 남았다.
서수진의 「사랑한다면 코카콜라를」은 코카콜라를 맥거핀 삼아 지적이고 발랄한 언어와 사유의 유희를 마음껏 펼쳐 보인 재기 넘치는 작품이었다. 응모된 작품들 중 가장 가독성이 높았고, 활달했고, 거침없었다. 대중문화적 상상력, 시각적 이미지 활용, 하이퍼텍스트적 구성과 ‘가짜 인용’ 기법 등 다양한 소설적 장치들이 대거 출현하여 읽는 이로 하여금 소설은 문자 문화의 산물이라는 등식 밖의 자유를 누리게 하는 재주가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종종 재주가 유희 충동을 통어하지 못한다는 점, 이런 유형의 소설 쓰기에서 이미 선편을 쥔 선배 작가들(가령 이기호나 박형서)의 흔적이 쉽게 노출되고 있다는 점 등이 걸렸다.
이가흔의 「흰색은 왜 검은가」는 동일한 트라우마를 겪은 두 인물을 초점 인물로 삼아 일종의 교차 편집 형식으로 구성된 중편이다. 일단 사변적이고 밀도 높은 문장들을 중편 분량의 끝까지 밀고 나가는 뚝심이 돋보였고, 동원된 언어들이 고도로 지적이란 점도 사줄 만했다. 굳이 이름 붙이자면 ‘어떤 편집증 형성 과정에 관한 보고서’ 정도가 적당할 이 작품을 쓴 이가 프랑스의 문화와 언어, 정신분석과 현대 철학의 여러 개념들에 정통한 전문가일 거라는 점에는 심사위원들 모두의 의견이 일치했다. 그러나 바로 그 점이 또한 이 작품의 취약점으로 거론되었는데, 문장 사이사이 종종 돌출하곤 하는 현학과 말장난이 작품에 보탬이 되기보다는 흠을 내는 경우가 많았다.
김엄지가 오랜 습작기를 거친 신중한 신인일 거란 생각은 애초부터 심사자들 누구도 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돼지우리」는 누가 봐도 그야말로 ‘일필휘지’로 씌어진 소설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작품의 결함이 되기보다는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 되는 기이한 사태에 심사자들 모두가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가독성이 있었고, 어느 순간 작가도 통제하기 힘들었음에 분명한 언어들의 난장이 매혹적이었다. 그에 비하면 거칠다거나, 구성이 치밀하지 못하다거나 하는 결함들은 소소한 것으로 용납되어도 무방해지는 작품이 「돼지우리」였다. 간만에 보는 구어체 소설, 88만원 세대의 원한이 언어를 만난 소설이란 견해가 보태지자 이 작품을 끝내 버릴 수는 없게 되었다.
윤해서의 「최초의 자살」은 응모작들 중 그야말로 문지의 문학적 지향에 가장 적절하게 어울리는 작품이었다. 문학이란 무엇보다도 ‘언어’의 예술이다. 서사나 구성, 인물이나 행위가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그 모든 것들이 언어적으로 매개되지 않는 바에야 굳이 그것을 문학이라 할 이유는 없다. 윤해서는 신인임에도 불구하고 그 사실을 충분히 알고 있고, 또 그런 방식으로 습작기를 겪었음에 분명해 보였다. 신화적 상상력, 밀도 높고 연마된 문장, 사유의 끈질김, 그리고 소설 장르에 대한 자의식적 실험 등이 이미 신인의 수위를 넘어서고 있었다면 지나친 상찬일 터이지만, 조만간 바로 그런 소설을 써낼 신예임에 틀림없다는 믿음은 심사자들 모두가 공유했다.
결국 최종적으로 김엄지와 윤해서의 작품이 남았고, 심사자들은 「돼지우리」와 「최초의 자살」 중 어느 하나도 끝내 버리지 못했다. 두 작품을 공동 수상작으로 결정하기로 합의한 후, 이런 말이 나돌았다. ‘문명과 야만.’ 잘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두 신인 작가에게 축하를 보내되, 김엄지는 좀더 야만적으로 일필휘지하기를, 윤해서에게는 항상 문명의 최대 자산, 곧 언어와 즐겨 씨름하기를 당부한다. _소설 예심: 김남혁 양윤의 이수형 본심: 김동식 김태환 김형중 우찬제 이광호 이수형

_이번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 평론 부문 응모작은 총 17편으로 비교적 수는 적었지만 그중 몇 편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일정한 비평적 안목과 수준을 보여주는 것이어서, 여전히 진지한 비평 지망생들이 많이 있다는 든든한 느낌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자신 있게 신인 비평가로 내보낼 수 있을 만한 새롭고 견실한 목소리를 찾는 데는 실패하고 말았다. 당선작 없음이 우리의 결론이었다.
응모작들에 대한 검토에 있어서 전반적으로 세 가지 문제가 눈에 띄었다.
첫째, 이론의 공전(空轉)이다. 잘 소화되지 않은 채 거듭되는 이론적 참조는 수사적 가치는 있을지 몰라도, 비평의 질을 높이는 데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여기서 소화란 두 가지 의미다. 어떤 이론을 참조할 때는 우선 비평가 자신이 그것을 잘 소화하고 있어야 하며, 다음으로는 작품 읽기 속에 그 이론이 잘 소화되어야 한다.
둘째, 논리와 문장의 불안정성이다. 많은 응모작들이 이러한 문제를 노정하고 있는데, 그것은 위의 문제와도 무관하지 않다. 잘 소화되지 않은 이론의 참조는 논리와 문장의 구성에 균열을 일으키기 쉽기 때문이다. 말하고자 하는 바가 불확실한 경우에 말은 그 기반을 잃고 흐트러지게 된다.
셋째, 인식론적 환원이다. 작품을 단순히 내용적인 차원에서 작가의 세계 인식으로 환원시키는 바람에, 작품의 미적 고유성에 대한 고려가 실종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경향은 특히 소설 비평에서 두드러진다. 하지만 장르를 불문하고 비평가가 끝내 놓지 않아야 할 질문은 작가가 삶, 사회, 우주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가지고 있느냐가 아니라, 그러한 인식이 왜 문학적인 것인가(왜 소설적인 것인가, 왜 시적인 것인가)이다. 너무나 원론적인 문제지만 또한 너무나 자주 잊히는 문제이기에 새삼 지적해둔다.
마지막까지 고려의 대상이 된 작품은 허민 씨의 「침묵할 수 없는 말들—한유주론」과 김영범 씨의 「사랑과 순간의 변증─김명인론」이었다. 허민 씨의 글은 한유주의 글쓰기를 언어가 의미에서 떨어져 나와 아무것도 재현할 수 없게 된 시대에 부정의 방식으로 언어를 구원하려는 시도로 파악하고 있는데, 부분적으로 한유주 문학 세계에 대한 흥미로운 통찰을 제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관점의 기반이 된 언어의 타락에 대한 이론은 충분히 전개되지 못해 취약하게 느껴졌다. 김영범 씨의 글은 김명인의 최근 시집을 중점적으로 다룬 것으로, 시 하나하나의 분석에 있어서는 안정된 문체와 꼼꼼한 숙고, 비평적 상상력 등의 장점이 잘 발휘되고 있다. 하지만 이 글 전체를 관통하는 문제의식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던져보면 답변이 궁해진다. 서두에 배치된 이론적 논의도 이후의 분석과 행복하게 결합하지는 못한 것 같다. _평론 심사: 김동식 김태환 김형중

윤해서

수상자: 윤해서

장르: 소설

작품: 최초의 자살

수상 소감:

그날 밤, 우리는 끝이 보이지 않는 호숫가에 모여 있었다. 나는 삼십여 명의 사람들 가운데 서 있었고, 사람들은 조금 들떠 있었다. 어디에선가 얼굴 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물이 태어나는 시간이다. 나는 그 소리를 기억하지 못한다. 다만, 간절히. 너희는 모두 죽을 것이다. 그리고 곧, 앞서 호수로 걸어 들어갔던 한 사람이 무릎을 꺾고 쓰러졌다. 거의 동시에, 나는 깨달았다. 감전. 이것은 꿈이다. 물속에 전기가 흐르고 있었다. 깃털이 모두 빠져버린 작고 까만 새처럼 그의 몸은 앙상했다. 그의 숨이 멎을 때, 나는 죽은 것처럼, 꿈에서 깨리라. 죽음 이후를 본 적이 있던가. 몸은 천천히 마비되기 시작했다. 빛, 어둠, 빛. 그 가운데 한순간, 나는 내 몸이 완전히 흩어졌다고 느꼈다. 이것은 거짓말이다. 사실 그때 나는 아무 생각도 하지 못했고, 나는 내가 아니었다. 그것은 단지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그리고 멀리서 소리가 들려왔다. 어렴풋이, 점점 더 가까이. 소란스럽게. 누군가 내 어깨를 잡고 나를 일으켜 세우려 하고 있었다. 이제 몸이 생기는 것이다. 다시, 몸. 내가 태어난 곳은 먼 미래, 천 년의 세월이 훌쩍 흘러버린 어떤 곳이었다. 나는 그곳을 기억하지 못한다. 아무것도 말하지 않겠다. 담담하게, 고요하게 가고 싶다.

문학과지성사 선생님들께 감사드립니다. 함께해준 벗들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떨리는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쓰고, 찢고, 다시 쓰겠습니다. 언제나 그리운 교수님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당신들은 나의 ‘영원한 첫’이십니다.

작가 소개:

1981년 부천 출생.
서울예술대학 문창과 3학년 재학 중.

김엄지

수상자: 김엄지

장르: 소설

작품: 돼지우리

수상 소감:

흔히 글에 대한 열정을 ‘열병’에 비유한다. 나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나의 글쓰기는, 엄밀히 말하자면 열병이라기보다 염병에 가깝다. 염병이나 열병이나. 하기야 염병도 일종의 열병이지만. 나에게는 글이 그렇다. 쓰기 전에는 써야 되니 안달 나고, 쓰고 나면 또 별론 것 같아 안달 나고. 응모 직전에 고민되고, 응모하고 나면 더 걱정되고. 도대체가 만족은 없고 그야말로 안달과 염병의 연속. 이건 싸움도 아니다. 싸움에는 이유라도 있지. 글 때문에 염병 난 데에는 이유가 없다. 내가 쓰는데, 내가 열나고 안달이고 염병이다. 안 쓰면 그만인데, 그게 또 안 되니 환장할 노릇. 진짜 염병인 거다.
당선으로 두어 달은 잠잠할 수 있을까? 글쎄, 두어 달이나 갈지도 장담할 수 없다. 아마 상금과 사람들의 관심이 모두 떨어지면, 그때 다시 염병의 열기가 나를 달구고 태울 것이다. 그렇게 되면 다시 이상한 열망에 콧구멍부터 바싹 마르고, 입을 열 때마다 혓바닥이 낙엽처럼 후드득 떨어질 것이다. 그러나 걱정은 없다. 결정적으로 나는 이 염병이 재미지다. 그동안 혼자 염병 떨고 혼자 관객인 셈이었는데, 재미가 쏠쏠했다. 이번 당선으로 관객이 늘어난 것 같아 부끄럽기도 하다.
내게 무대를 마련해준 문학과지성사에 감사의 뜻을 전한다. 영원한 나의 도피처 이정숙 님에게도 늘 감사하다. 늘 내 꿈을 묻는 해리, 너는 좋은 선생님이야. 학교에 계신 선생님들의 은혜 잊지 않겠어요. 그리고 정두기, 유수, 대원이, 동휘바, 바그니다, 아이로봇, hqabc81, 끝으로 링딩동회, 꼭 건강해야 해. 사랑해.
모두에게, 염병에 들끓는 글로 다시 찾아뵙겠다.

작가 소개:

1988년 서울 출생.
조선대학교 문창과 졸업.

황혜경

수상자: 황혜경

장르: 시

작품: 모호한 가방 외

수상 소감:

꿈을 적어내라는 백지, 한 어린이가 연필을 꾹꾹 눌러 겁도 없이 ‘시인’이라고 적고 있다. 토요일에는 교실보다 백일장 잔디밭에 앉아 손톱을 물어뜯는 날이 많았던 고민 많은 어린이. 시제(詩題)를 받아들고 지웠다 쓰기를 반복하던 그 어린이가 내 안에 살고 있다. 집념은 무서운 것이다.

뭐든 스스로 깨닫고 해답을 얻기까지는 그것을 정답으로 온전히 믿지 못하는 나쁜 버릇, 그러므로 나는 언제나 늦되는 아이였다. 나이가 들면서는 조로(早老)와 유아성(幼兒性)의 뒤섞임으로 인해 ‘기우뚱’과 ‘불쑥’ 사이에 서 있기도 했다. 시를 쓰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나를 의심하는 것. 최근 몇 년간 일절 합평을 삼갔다. 좀 늦더라도 능동적으로 변화를 모색하기로 했다. 타인의 말들을 통해 재빨리 나를 변화시키는 것은 경계해야 할 ‘테크닉’이라는 믿음. 그렇게 마음을 고쳐먹고 시간 속에 천천히 나를 맡겨두기로 했더니 칠전팔기(七顚八起)쯤은 견딜 준비가 되어갔다. “나는 앉지 않으리라, 뾰족한 못들이 나를 서게 하리라” 다짐하며 오랫동안 시 앞에 혼자였다. 매년 열두 달의 절반은 황당하고도 차가운 녹색. 냉골의 침묵. 달려가 간절히 묻고 답을 구하고 싶은 스승은 나무속에 잠들어 있거나 멀리서 병이 깊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이룩한 나의 ‘전부’가 그 어떤 것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매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외롭고 무서웠다. 불편하게 자는 동안 점층법으로 늙었다.

그동안 책상 앞에서 사진으로나마 함께해주셨던 두 분, 오규원, 최승자 선생님께 젖은 이 마음을 전한다. 스물한 살, 오규원 선생님의 권유로 신춘문예에 응모했던 작품에는(`「나는 유유히」외 9편) 아직도 그날의 붉은 글씨가 선명하다. 시를 쓰겠다는 내 고집의 시초에 선생님이 계신다. 그때 선생님은 어린 내게서 무엇을 읽으셨던 것일까?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으나 가장 깊고 정확하게 나를 꿰뚫어 보시던 최승자 선생님. 10년 전 그날, 시장 안, 삼겹살집에서 쓴 한 줄의 문장을 기억하시나요? 이제야 나는 에덴동산의 당신께 그것을 바칠 수 있게 되었다. “당신은 영원한 winner입니다.”

늦되는 자식을 믿고 기다려주신 부모님, 99점의 ‘따뜻한 위로’─이승하 선생님,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내게 가르침을 주신 모든 스승, 글썽일 때마다 눈 맞추고 귀 기울여준 정 많고 순한 나의 사람들, 눈물을 핥아주던 십 년 지기 동거견(犬) ‘달구’ 씨, 그리고 얼룩 많고 연약한 언어를 가능성으로 읽어주신 『문학과사회』의 선생님들께 깊이 감사드린다.
이제는 어떤 방식으로든 내게 크고 작은 상처를 안겨준 당신들에게도 고마움을 전할 수 있을 것 같다. 상처는 우리가 함께 숨 쉬었다는 증거다. 시를 쓰며 어렴풋이 알아가고 있다. 쥐고 있던 1인칭을 조금씩 놓아주는 것, 그것이 삶이라는 것을. 매 순간 나를 위기에서 건지신 아버지 덕분에 나는 아직 살고 있다.

작가 소개:

1973년 인천 출생.
서울예술대학 문창과와 추계예술대학교 문창과 졸업 및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학예술학과 수료.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