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지문학상 13회

예소연 / 소설 부문 / 사랑과 결함

김리윤 / 시 부문 / 전망들

예소연

수상자: 예소연

장르: 소설 부문

작품: 사랑과 결함

수상 소감:

애써서 갔다가 다시 돌아오고 마는

수상 소식 전화를 병원에서 받았습니다. 간이침대에서 까무룩 잠이 들었다가 전화를 받았는데, 너무 좋은 소식이라 잠시간 많이 행복했습니다. 저는 아직까지도 소설 쓰기에 어설픈 사람입니다. 첫 문장을 쓰기 위해 빈 문서를 들여다보면 여전히 머릿속이 하얘집니다.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몰라 한참을 망설이는데, 또 쓰다 보면 어떻게든 쓰게 됩니다. 저는 생각을 머릿속으로 잘 정리하지 못하는 사람인데, 소설을 쓰다 보면 내가 이런 기억이 있었구나,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 그제야 떠올리게 됩니다. 그래서 제게 소설을 쓴다는 것은 저를 알아가는 과정에 가깝습니다. 내 머릿속에서 잊혔던 이야기가 마음속에 여전히 남아 있었다는 걸 알게 되는 행위, 그것이 바로 소설 쓰기입니다.
부끄럽지만, 「사랑과 결함」은 이전 회사에서 몰래몰래 쓴 이야기입니다. 작은 창을 띄워놓고 몰래몰래 썼던 소설이 이렇게 큰 상을 받게 되어 얼떨떨할 따름입니다. 이 소설을 구상할 때쯤 친구와 청계천을 오래 걸었습니다. 걷다 보니 먹자골목이 나왔고, 그 먹자골목 한가운데 여자와 남자가 부둥켜안고 쓰러져 있었습니다. 저는 그들이 모르는 사이일지도 모른다고 했고, 친구는 분명 연인 사이일 테니 그냥 가자고 했습니다. 저는 굳이 여자를 깨웠고 여자는 함께 쓰러져 있던 남자를 보더니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며 비척비척 택시를 타고 가버렸습니다. 저는 아직도 친구에게 그때 이야기를 자랑스레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소설 쓰기는 재미있습니다. 낯선 인물을 꼭 아는 사람인 것처럼 대해야 하니까요. 그들 사이를 침범하고 파고들어야 할 때도 있습니다. 능청스러워야 할 때도 있고 조심스러워야 할 때도 있습니다. 또한 그들을 헤아려야 하고 보살펴야 합니다. 내가 만들어 낸 인물이니까요. 그런 책임감으로 비롯된 문장들도 더러 있습니다. 길에 쓰러져 있는 여자를 깨우면서 모르는 사람의 삶에 관여하고자 한 것도 이러한 소설 쓰기의 맥락과 이어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일은 들여다봐야 안다고 생각합니다. 들여다보지 않으면 타인의 삶을 쉽게 오해하고 판단하게 됩니다. 저는 과감한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늘 생각하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늘 조심스러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생각이 끊임없이 머릿속에서 줄타기를 하는데, 그러다 보면 또 실수를 하고 일을 그르치고 맙니다.
그래서 그런지 자꾸 실패한 이야기를 하고 싶고, 애써서 갔다가 다시 돌아오고야 마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집니다. 모든 일에는 그래도 의미가 있다고 항변하고 싶어집니다. 그래서 인물을 자꾸 그런 상황에 처하게 만듭니다. 그러다 보니 늘 인물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큽니다. 그래도 그런 이야기를 계속 쓰게 될 것 같습니다. 우리의 존재가 미온하지만 다정하다고 이야기하면서, 슬픔과 실패에도 조그마한 가치를 부여하면서. 그래야만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제가 그런 사람이라서요. 우리는 모두 안쓰럽게 살아가기 마련이니까요.
「사랑과 결함」은 누구도 함부로 미워할 수 없게끔 씌어진 소설입니다. 저는 사랑하는 사람을 제일 미워하고, 미워하는 사람을 제일 사랑합니다. 그 마음만큼은 누구보다도 잘 안다고 자신합니다. 그렇게 이 소설은 씌어졌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만이 누군가를 미워할 수 있습니다. 이런 마음을 이해해주고 알아준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이 상에 어울리는 작가가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겠습니다.

작가 소개:

2021년 『현대문학』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김리윤

수상자: 김리윤

장르: 시 부문

작품: 전망들

수상 소감:

꿈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꿈에서 빵 두 개를 구워 품에 안고 잤어. 그것은 너무 생생하고 소중해서 살아 있는 물질처럼, 일종의 생명체처럼 느껴졌지. 고슬고슬한 표면을 가진 새하얀 치아바타 하나, 매끄러운 표면을 가진 갈색 치아바타 하나. 품 안의 빵은 따뜻하고 부드러웠고, 나는 빵의 안팎이 가진 세부를 다 보고 있는 것 같았어. 모습과 촉감과 냄새와 온도와 맛 같은 것들을. 둘 중 하나를 한 사람과 나눠 먹었어. 한 손에 쥐고, 다른 손으로 조금씩 뜯어가며, 아무것도 바르지 않고. 빵을 뜯을 때마다 희고 부드럽고 성근 내부에서 고소한 냄새가 훅 끼쳐 왔어. 그 사람은 투명한 얼굴로, 사랑이나 기쁨 부드러움 같은 것,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의 동물적인 즐거움 같은 것 들을 모두 보이는 것으로 만들어 응시 앞에 꺼내놓는 그 얼굴로 내가 만든 빵을 먹었어.

꿈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꿈을 복기하며, 눈으로 꿈을 더듬으며. 산책길이었다. 개는 꿈에서 본 빵과 같은 흰색과 갈색 털로 햇빛을 받으며, 걸으며, 냄새 맡으며 빵의 빛깔에 동작을 더하고 있었다. 빵을 만들고 껴안고 나눠 먹었을 뿐인데 이상할 정도로 생생한 꿈이었다. 꿈은 모든 것을 보이는 것으로 만들어 응시의 기억으로 저장하는구나 생각했다. 모든 것을 흡수한 이미지로 저장한다고. 꿈 바깥에서 꿈은 가능한 모든 지각을 욱여넣어 동여맨 투명한 자루 같은 것이라고. 본다는 행위 안에는 느낌과 경험과 기억이, 시간이 내재해 있다고.

점심으로 먹을 빵을 사기 위해 꿈 이야기를 하던 전화를 잠깐 끊은 사이 걸려 온 전화로 수상 소식을 들었다. 꿈 이야기를 들어주던 사람에게 소식을 알리자 이 상이 그 빵인가 보다,라는 대답이 돌아왔고 우리는 품에 안긴 따뜻한 빵 한 덩이를 보는 것처럼 웃었다. 희고 따뜻하고 부드럽고 고소한 냄새가 나는 것. 살아 있는 물질 같은 것. 그것을 보이는 격려로, 용기로 꿈 바깥에서 소중하게 지니고 있으려 한다.

*

비행기로 열다섯 시간 남짓 걸리는 장소에 머물다 돌아온 후로 열세 시간의 시차가 만든 공간 안에서 어슴푸레한 하루를 더듬으며 누워 있는 시간이 생겼다. 시차의 이쪽 끝에 누워 저쪽 끝의 시간을, 기억을 반복해서 더듬는다. 가령 그런 것. 도록 표지에 검은색 산세리프 서체로 인쇄되어 있던 문장, “두려움 없이 보기”.

믿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시를 쓰는 일이 가능하게 하는 믿음이 있고, 그것이 계속해서 시를 쓰게 한다고. 지금 나는 믿음과 관계없이 그냥 있는 세계가 있고, 보이는 것을 보는 것이, 그것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보기는 우연과 선택과 행동이 뒤엉켜 만든 사실이라고. 살아 있음은 무언가를 본다는 감각과 견고하게 엉켜 있으며 우리는 보기를 통해 세계와 뒤엉킬 수 있다고. 보기를 통해 세계를 미완의 상태로 유보할 수 있다고. 보기는 움직임을 발생시킨다. 몸을 옮기게 하거나 풍경을 수선하게 하거나. 응시가 불러오는 움직임에는 몸을 옮기기 위해 필요한 것을 구하기, 풍경에 무언가를 심기, 만들기, 부수기, 오려내기, 붙여넣기 등이 있다. 이 모든 일을 하기 위해 기다릴 수도, 싸울 수도, 사랑할 수도 있다. 보기는 움직임과 동선을, 움직임에 동반되는 지각을, 움직임이 불러오는 느낌과 감정과 경험과 마음을 발생시킨다. 무엇을 믿기 위해 나를 작동시키는 것보다 무엇을 보기 위해 나를 작동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응시는 언제나 ‘보다’라는 동사를 동반하고, 동사는 행위를 데려오므로. 눈과 손을 사용하는 것이, 적당한 장소에 눈을 두고 눈과 함께 손을 움직이는 일이 중요하다고. 두려움과 함께 보기를 무릅쓰는 일은 두려움 없이 보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그리고 시를 쓰는 일이 가능하게 하는 보기가 있다. 시는 시선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보여준다. 응시를 가로지르며 찢는다. 찢긴 응시를 다른 방향으로 이어 붙인다. 우연을 도입한다. 의미화될 수 없는 우연들이 서로 뒤엉키며 멈추고 굴러가고 튀어 오르며 관계 맺는다. 보기를 흔든다. 완결된 보기를 불가능하게 한다. 출처가 불분명한, 언젠가 메모해두었던 책의 서문에서 말하는 문장의 두 가지 힘은 영원성 그리고 살과 피를 가진 자에 의해 말해진다는 것이다. 그것을 이렇게 바꿔 말해볼 수도 있겠다. 언어는 영원을 가능하게 하는 보여주기라고. 없는 몸을 통해 피와 살과 뼈를 가진 몸들에게 영원히 기억될 수 있는 보여주기. 그리고 투명한 자루에 가능한 모든 지각을 담아 시선 앞에, 눈을 필요로 하지 않는 응시 앞에 놓아주는 재료라고.

시선을 가진 얼굴들을 생각한다. 나의 시를 읽어주는 멀거나 가까운 얼굴들. 알거나 모르는 얼굴들. 언제나 보이는, 보여주는, 보게 되는, 때로는 보기 위한 장소가 되어주는 곁의 얼굴들을. 다 보이는 투명한 얼굴을. 언어의 넓이와 문장의 힘에 기대어 고마움과 사랑을 말하고 싶다. 이 문장들이 가진 영원을 보여주고 싶다. 언어를 재료로 사용하며 가능한 방식으로, 아주 조그맣게 접어 주머니에 넣고 언제나 가지고 다닐 수 있도록. 몇 번을 접거나 펼쳐도 여전히 영원이라는 단어가 영원의 공간을 가진 채 있도록.

응시가 만드는 부드러운 입구 앞에서, 빈 문서 앞에서.
두려움 없이 보기 위해 두려움과 함께.
두려움 없이 보여주기 위해 두려움과 함께.

작가 소개:

2019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을 통해 시를 발표하기 시작했다. 시집 『투명도 혼합 공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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