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지문학상 11회

김멜라 / 소설 부문 / 나뭇잎이 마르고

백은선 / 시 부문 / 비밀과 질문 비밀과 질문

김멜라

수상자: 김멜라

장르: 소설 부문

작품: 나뭇잎이 마르고

수상 소감:

초등학교에 입학한 첫해, 운동장에 서서 조회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줄에서 서너번째 순서에 열중쉬어 자세로 서 있었는데, 햇볕이 내리쬐는 날에 교장 선생님의 훈화 말씀이 끝날 줄 모르고 계속되었습니다. 그런데 앞에서 아이들을 보며 서 있던 담임 선생님이 옆 반 선생님을 손짓해 가까이 오게 하더니 저를 가리켰습니다. 두 사람은 저를 보며 무언가를 속삭인 다음 웃었는데, 저는 그 모습에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왜 선생님들이 날 가리키며 웃는 걸까. 내 옷이 이상한가? 내 표정이 화가 나 보였나? 내가 줄을 비뚤게 맞췄을까? 머릿속으로 딴생각하는 걸 선생님이 아신 걸까?
수없이 떠오르는 질문에 불안한 마음이 들면서 마치 놀이기구를 탄 것처럼 뱃속이 간지러웠습니다. 비밀은 한참 후 엄마가 옆집 아주머니에게 한 말에서 밝혀졌습니다.
“은영이가 글쎄, 운동장 조회를 하는데 꼼짝도 안 하고 서 있었대. 담임이 그걸 보고 신기해서 옆 반 선생님한테 쟤 좀 보라고 하면서 웃었다네. 어른도 힘든데 어린애가 어떻게 저렇게 가만히 서 있느냐고.”
그 말을 듣고서야 저는 선생님들이 저를 흉보거나 놀린 것이 아니라는 걸 알았습니다. 그렇다 해도 그때 느낀 불안이나 긴장감은 사라지진 않았는데, 오히려 새로운 부담이 하나 더 얹어진 느낌이었습니다. 어른들은 나 모르게 나에 관해 얘기하는구나. 가만히 서 있으라고 해서 그렇게 한 것뿐인데…… 그렇게 힘들지도 않았는데……
어릴 적 그 일화로 저는 제가 잘 참는 사람이란 걸 알게 되었습니다.

소설 쓰기도 제게는 참는 시간입니다. 전혀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글을 참고 또 참으며 조금씩 쓰고 고치다 보면 어느 순간 소설이 되어갑니다. 등단 후 몇 년간 청탁을 받지 못했던 시간도 기다리며 가만히 있는 것이 그리 괴롭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저의 이름이 호명되고 사람들 앞에 서야 하는 순간이 저를 더 긴장시키고 불안하게 합니다. 제 모습을 되돌아보게 합니다. 소설에 깃든 저의 태도와 표정, 머릿속 생각들을 되짚어보게 합니다. ‘김멜라’라는 필명으로 글 쓰는 저에게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해방감을 주고 싶었는데, 이름이 주는 구속이 하나 더 늘어난 느낌입니다. 제가 돌보고 책임져야 할 이름이 세상에 띄워지고 물결치면서 제가 모르는 곳까지 흘러갑니다. 때때로 저는 여덟 살 아이가 되어 그 알 수 없는 방향에 마음을 졸이기도 하지만, 실은 저를 향한 손짓이 그리 나쁘지 않은 마음이란 걸 깨닫습니다. 문지문학상의 손짓이 저에게 다가와 잘 서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 웃음에 조금은 마음을 놓고 주변을 둘러봅니다. 저의 앞과 뒤에서, 또 옆에서 함께 소설을 쓰며 서 계시는 작가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나뭇잎이 마르고」는 하나의 질문에서 시작했습니다.
왜 그 남자는 나무를 마르게 했을까.
소설을 쓰고 난 뒤에는 질문이 바뀌었습니다.
나무가 마르는 것이 꼭 나쁜 것일까. 마르고 비틀린 것이 병들었다는 징후일까. 병든 것이 꼭 나쁜 것인가. 누군가 그 나무 아래 씨를 뿌리를 수 있다면, 나무의 마름과 썩는 시간은 또 다른 생명의 시작이 아닐까. 마르고 썩는 것은 오히려 새로운 창조력의 징조가 아닐까.
나는 내 마른 부분을 어떻게 잘 썩힐 수 있을까.
땅 밑에서 피어오르기를 원하며 참고 기다리는 존재들.
그들을 따라 씨앗의 얼굴을 하고 낮게 엎드립니다.

작가 소개:

2014년 자음과모음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적어도 두 번』이 있다.

백은선

수상자: 백은선

장르: 시 부문

작품: 비밀과 질문 비밀과 질문

수상 소감:

긴 뿔피리를 품에서 꺼내
숨이 찰 때까지 불었다

한때 살아 있던 것을

밤마다 찰랑이는 유리항아리를
안고
숲을 건너

온몸이 흠뻑 젖은 채
잠에서 깨는 날이 많았다

부끄럽지만 이름을 불러보고 싶어 적는다

고맙다는 말로도 부족한 마음은
어떻게 해야 좋을까

내 시의 가장 앞에 있는 김혜순 선생님
늘 다독여주신 이원 선생님

아무에게도 할 수 없는 시 얘기를
언제든 함께 나눠준 승일, 미옥
덕분에 시를 지킬 수 있었다

힘들 때 옆에 있어준 지현, 주현

나의 소울메이트 구유

최고 편집자 민희 씨

엄마는 여러 번 나를 구했다
흥 많은 자매 은미언니

영원이라는 것을
두려움 없이 말할 수 있게 해준
윤이선에게

내 목숨보다 중요한 이선에게

이제껏 내 시를 응원해주신 모든 사람들에게

입술이 부르틀 때까지 피리를 불어주고 싶다
항아리를 기울여 물을 부어주고 싶다

그것이 내가 줄 수 있는 감사의 방식
가장 분명한 사랑의 표정이다

작가 소개:

2012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가능세계』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장면들로 만들어진 필름』 『도움받는 기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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