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지문학상 10회

임솔아 / 희고 둥근 부분

임솔아

수상자: 임솔아

작품: 희고 둥근 부분

수상 소감:

「희고 둥근 부분」은 ‘사유지’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썼다. ‘사유지’는 네 명의 미술작가가 만든 공동체다. 사유지의 작가들이 어째서 내게 연락을 한 것인지, 내가 어떤 사람일 줄 알고 일 년 내내 함께 맹점을 찾아다니자고 선뜻 제안을 한 것인지, 처음엔 좀 의아했다. 의아했지만 같이 회의를 했고, 작업을 했다. 처음 해본 경험이었고, 즐거웠다. 덕분에 건강이 좋지 않아 무력했던 시간들을 잘 버텼다.

의아한 일들이 일어난다.
아이팟 한쪽을 떨어뜨렸던 것. 그래서 잃어버렸던 것. 어느 날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가 그 안에서 아이팟을 꺼내어 손에 들고 기뻐했던 것.
선물 받은 화분이 죽어버린 것. 그래도 일 년 내내 물을 주었던 것. 이 쌀쌀한 날에 새잎이 나는 것.
의아함으로 시작된 만남이지만, 나는 이들과 친구가 되어갔다. 처음에는 내가 이들을 잘 몰라서, 모르는 사람이니까 의아함을 느끼는 줄로만 알았다. 아니었다.
최근에 집에 택배가 왔다. 주문자에는 내 이름이 적혀 있었다. 우유갑 모양 상자에는 보늬밤이 들어 있었다. 나는 이걸 주문한 적이 없었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서 혜원이 밤나무 아래에서 두 발로 밤송이를 눌러 밤을 하나하나 꺼내던 장면이 떠올랐다. 혜원은 냄비에 밤을 담고, 설탕을 넣어 보글보글 끓였다. 색이 진해진 밤을 꺼내 밤의 심지를 하나씩 빼냈다. 그리고 다시 냄비에 밤을 담았다. 단물을 더해 한 번 더 졸였다. 더 깊이 단맛이 스며들도록. 레몬 한 점이 담겨 있는 병에 혜원은 밤을 옮겨 담았다. 다 먹어버리지 못하게, 생각날 때마다 꺼내 먹을 수 있게, 라고 혜원은 말했다. 대청마루에 앉아 젓가락으로 보늬밤 하나를 찔러 입에 넣은 다음, 볼 가득 우물거렸다.
그 장면을 보며 나도 보늬밤이라는 것을 만들어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먹고 싶어 한 적은 분명 있었지만, 주문을 한 적은 없었다. 건망증이 심해진 걸까. 잠꼬대를 하고서도 기억을 못 하듯이, 잠결에 주문을 하고 잊어버린 것은 아닐까. 이런 식으로 주문한 물건들이 혹시 더 있는 걸까. 결제 내역을 살펴보았다. 도대체 나는 어느 사이트에서 보늬밤을 주문한 걸까.

며칠이 지나서야 친구가 내게 보늬밤을 보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가을이어서 보냈다고 했다. 친구로부터 보늬밤을 받게 된 사람은 나 한 명이 아니었다. 영문을 모를 보늬밤을 받게 된 친구들이 모두 나처럼 의아함에 빠져 며칠을 보내고 있었다는 것도 나중에야 알았다.
나는 뚜껑을 열어 젓가락으로 보늬밤 하나를 찔렀다. 단물이 뚝뚝 떨어지는 보늬밤을 입에 넣었다. 맛있어 보였지만 이토록 맛이 좋을 줄은 몰랐다. 엄청나다, 엄청난 맛이다, 중얼거렸다. 이것은 친구가 느닷없이 내게 보낸 가을의 맛이었다.

보늬밤은 아직 냉장고에 있다. 유통기한은 길다. 겨울 내내 생각날 때마다 하나씩, 아끼고 아껴서 먹을 것이다.
의아한 일들이 내게 힘이 되어 주었다.
아무리 친해져도 계속 의아한 내 친구들도 내게 큰 힘이 된다.
이 상도 마찬가지다. 보늬밤 같다.

작가 소개:

2013년 중앙신인문학상을 수상하여 시를, 2015년 문학동네 대학소설상을 수상하여 소설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눈과 사람과 눈사람』, 장편소설 『최선의 삶』 『겟 패킹』, 시집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이 있다.

문지문학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