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해송문학상 8회

정설아 / 황금 깃털

선정 개요

정설아의 『황금 깃털』은 후회스런 과거를 오려 내고 싶다는 사람들의 욕망을 다룬 작품으로, ‘시간의 섬’이라는 상상 속의 공간을 매끄럽게 오가면서 ‘오늘이 확정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입체적으로 묘사하였습니다. 마해송문학상 운영위원회는 주인공 해미가 친구들과의 문제로 마음속 갈등을 겪다가 후회를 지우기 위해 더욱 후회할 만한 행동을 벌이고 그를 쉽사리 돌이키지 못하는 모습을 통해 아이들이 겪는 갈등을 아이들만의 문제가 아닌 인생 전체의 딜레마로 확장시키고, 미봉책이 아닌 근본적인 시각을 제시한 점과 주제 의식은 날카롭고 깊으면서도 작가가 창조한 이미지들은 유려하고 풍부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 하여 이에 이 작품을 올해의 수상작으로 결정하였습니다.

심사평

응모된 원고를 숙독한 후 숙의 끝에 최종심에 올린 작품은 이여누의 「달맞이꽃 유관순」, 유혜진의 「우리 둘이 두리안」, 정설아의 「황금 깃털」 등 세 편이었다. 세 편 모두 나름대로 장점이 많았으나 문학적 완성도와 구성력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작품이 먼저 선에서 멀어지게 되었다.
「달맞이꽃 유관순」은 입말체 편지글 형식의 일기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화학당에 다니는 유관순이 사촌인 예도 언니에게 편지로 전하는 학교생활과 삼일 만세 운동까지의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쓴 이야기다. 충실한 자료 조사와 문헌 연구를 통해 사실성이 확보된 점이 장점이었지만 이러한 서사 구조가 오히려 단점으로 작용하기도 하였다. 역사적 사실에 충실하게 서술하다 보니 픽션적 구조가 취약하고 담론적 성격 또한 미흡하였다. 인물의 성격과 행동이 연령에 어울리지 않고 수다스런 사담을 읽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였다. 또한 평면적이고 내밀하지 못한 구성도 선에서 밀리는 결과로 작용하였다.
「우리 둘이 두리안」은 제목이 시사하는 바와 같이 처음에는 반목하고 갈등하던 두 주인공이 종래에는 서로 이해하고 화합하는 이야기다. 이 작품은 부인과 사별하고 필리핀 여성과 재혼하기 위해 현지를 찾아간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 이국에서 겪는 이야기를 소재로 하고 있다. 이국 처녀와의 맞선에 동행한 아버지와 아들 재민이의 갈등, 아들까지 둔 외국 남자와의 비정상적인 결혼을 둘러싼 누나와 남동생 니키와의 갈등을 그리고 있다. 비교적 문장이 안정되어 있고 열대 과일 두리안이 상징하는 부적응처럼 부자간과 남매간, 그리고 재민과 니키 사이에 펼치는 갈등 구조와 심리 묘사가 우수하였다. 하지만 2부에 와서는 구성이 치밀하지 못하고 긴장감이 이완되며 문학성도 떨어졌다. 또한 2부에서부터 바뀌는 시점이 혼란을 초래하는 단초가 되기도 한다. 등장인물들의 행동 변화에 개연성이 부족한 점과 후반부로 오면서 약해진 서사력과 치밀하지 못한 심리 묘사도 아쉬움을 더해 주었다.
「황금 깃털」은 스케일이 크고 구성력이 돋보이는 판타지 동화다. 현실이라는 날실과 판타지라는 씨실로 피륙을 조합하듯 직조한 서사력이 환상 동화가 범하기 쉬운 황당 구조를 극복하고 있다. 판타지의 바다를 항해하다가 현실이라는 항구로 회항할 때 방향감을 잃지 않은 조타술이 믿음을 주었다. 현실 문제와 유리되지 않고 학교 현장에서 일어나는 왕따 문제를 정면으로 조명한 점도 장점이었다. 주인공 해미는 현실의 어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과거로 돌아가 ‘황금 깃털’로 시간을 지워 사건을 바꾸곤 한다. 하지만, 결국 헛된 일임을 깨닫고 자아를 찾게 되는 중심 줄거리가 흥미의 밧줄을 놓치지 않게 하고 있다. 등장인물들의 심리 묘사도 우수하고 빠르게 전개되는 스토리와 탄탄한 구성에서 오는 재미성이 이 동화의 큰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다소 설익은 문장이 눈에 띄고, 판타지의 공간이 서구적인 것이 아쉬움으로 남지만 문학적 역량을 평가하여 당선작으로 미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_박상재

올해 마해송문학상 본심에 올라온 세 편의 작품은 저마다 뚜렷한 개성과 장단점을 갖고 있어서 당선작을 가려 뽑는 논의가 여느 때보다 진지하면서 풍성했다.
「달맞이꽃 유관순」은 제목에서부터 명료하게 드러나듯이 유관순의 생애 중 ‘달맞이꽃’이라고 부를 만한 어둠 속 개화기를 그린 이야기다. 유관순이 이화학당에 입학해서 여러 학우들과 우정을 쌓고 사회 현실에 눈떠 가며 만세 운동에 참여하기까지의 과정이 다정한 문체의 편지 형식 안에서 꼼꼼하게 펼쳐지는데, 자료 조사에 공을 무척이나 들인 듯 당시 시대 배경이 생생하다. 그러나 우리가 이미 아는 애국자 유관순의 이미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주인공의 캐릭터 때문에 유관순의 새로운 발견, 혹은 더 깊은 이해의 지경으로 나아가지 못했던 점이 아쉬움이었다.
「우리 둘이 두리안」은 제목에서 보여 주는 언어유희 정신이 본문에서도 상응하는 역할을 하리라는 기대를 안겨 주었지만, 기대와 달리 이야기는 자못 진지하고 심각하게 진행되었다. 어린 나이에 엄마를 잃고, 합동 맞선을 보려는 아빠를 따라 필리핀에 와 있는 아이의 심리 묘사가 뛰어난 1부는 당선작으로도 손색이 없을 터였다. 그러나 누나를 아들 딸린 나이 많은 한국 아저씨에게 보내야 하는 필리핀 아이의 시선으로 진행되는 2부는, 1부만큼의 심리적 깊이와 섬세한 터치를 보여 주지 못했다. 사려 깊은 소재와 성숙하고 따뜻한 인물들, 균형 잡힌 시각으로 국제결혼을 그리려는 웅숭깊은 의도 같은 장점들이 2부의 미숙함으로 살아나지 못한 것이 못내 안타까웠다.
「황금 깃털」은 일종의 시간 이동 판타지를 표방한 작품이었다. 시간을 지우는 황금 깃털, 그 황금 깃털로 아이들을 유혹하는 가탈, 가탈을 경계하게 만드는 보짱, 시간을 되돌아가 과거를 다시 살 수 있는 장치 같은 모티프들은 현란한 판타지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요소였는데, 이 모티프들이 유기적으로 엮이며 충분히 제 역할을 했다고 볼 수는 없었다. 그러나 살면서 저지르는 실수, 부딪히는 어려움을 어떻게 만회하고 극복할 수 있는가 하는 실존적 문제들을 심도 있게 고민하는 문제의식은 믿음직하고 바람직한 것이었다. 아이들이 겪는 갈등을 아이들만의 문제가 아닌 인생 전체에서의 딜레마로 확장시키고 단기 미봉책이 아닌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는 시각도 듬직했으며, 심리 묘사와 상황 묘사도 상당한 흡인력을 보여 주었다. 내 몫의 가시밭길을 피하지 말고 당당히 걸어가라는 힘찬 메시지가 울려나오는 이 작품을 당선작으로 결정하면서, 당선자에게 축하를, 모든 응모자들에게 감사를 보낸다._김서정

이번에 응모한 작품을 전반적으로 살펴보면 도전적이라기보다는 안정적인 구성과 소재를 채택한 작품이 많았다. 특히 몇몇 작품은 이야기의 반경이 넓지 않더라도 섬세하고 입체적인 전개를 이루어 낸다면 얼마든지 울림이 큰 이야기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인물의 내면에 존재하는 갈등을 표현할 때도 미세한 마음의 번복 지점까지 파고들며 면밀하게 기록하려는 경향이 뚜렷했다. 상대적으로 인물의 움직임이 크거나 시공간적 배경이 웅장한 작품은 드물었다. 한동안 두드러졌던 전형적 전개의 판타지 응모작도 눈에 띄게 줄었다.
상당수의 응모작에서 사건에 대한 어린이의 시선을 거칠게 단순화하지 않으려는 작가의 노력도 읽을 수 있었다. 작중 어린이 인물을 솔직 담백하게 표현하려면 어떤 메시지의 틀에 그들을 끼워 맞추려는 생각을 떨쳐야 한다. 어린이 인물 스스로 자신의 나이에 맞게 작품 안에서 뛰놀도록 우선 내놓아 주어야 한다. 만일 책 속의 어린이들이 ‘내가 아는 가장 말이 잘 통하는 어른’을 뽑는다면 작가가 적어도 순위권에는 올라야 한다. 심사위원회는 고심 끝에 세 편을 본심에 올렸다.
「달맞이꽃 유관순」은 사춘기 소녀 유관순의 기숙 학교 시절을 다룬 활달한 작품이다. 일제 강점기 치하의 삼엄한 분위기와 더불어 치욕적인 역사적 사건을 목격해야 하는 소녀의 분노가 담담하게 서술되어 있다. 열사 유관순보다 여학생 유관순에 초점을 맞추었기에 풋풋한 성장담의 느낌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역사적 인물로서 유관순과 이 작품의 관순이가 하나의 인물로 받아들여지려면 좀 더 화학적인 결합이 필요했다고 본다. 작품 속 관순이의 고민은 앳된 소녀의 천진함을 간직하고 있어 새롭게 느껴지지만 그만큼 배경 서사와 유리된 것처럼 여겨진다. 결말 부분에 등장하는 만세 운동의 역사적 무게라든가 관순이의 연령을 생각한다면 이 작품에서보다는 좀 더 성숙한 사람으로 그려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미 잘 알려진 유관순의 삶을 제외하고는 새롭게 발굴된 흥미로운 서사가 드물다는 것도 창작물로서는 아쉬운 점으로 작용했다.
「우리 둘이 두리안」은 필리핀으로 재혼 맞선을 보러 떠난 아빠를 따라간 재민이의 이야기다. 두 가족과 그들의 서로 다른 문화가 어떻게 만나고 어떻게 어우러지는지를 따뜻하게 그려 냈다. 재혼하려는 아빠의 마음을 이해하고 국제결혼에 대해서도 충분히 수긍하는 재민이지만 낯선 환경, 낯선 사람과 가족을 이루게 된다는 사실은 여간 내키지 않는다. 그렇지만 새엄마의 남동생과 우정을 나누면서 물과 기름처럼 섞이기 힘들 것만 같았던 두 가족이 하나의 가족으로, 관계의 변증적 발전을 이루는 이야기다. 이 작품은 전반부의 사실감 넘치는 전개와 뚜렷한 인물 묘사에 비해 후반부의 전개가 평면적인 점이 걸렸다. 재민이와 니키의 화해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결말이었고 화해를 주선하는 사건도 평이한 느낌을 주었다. 후반부에 작중 화자를 바꾼 것도 반드시 필요한 선택이었는지 의문이다.
「황금 깃털」은 후회스런 과거를 오려 내고 싶다는 사람들의 욕망을 비교적 세련된 방식으로 다루었다. ‘시간의 섬’이라는 상상 속의 공간을 매끄럽게 오가면서 ‘오늘이 확정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입체적으로 묘사하였다. 특히 주인공 해미의 마음속 갈등을 정확하게 읽고 그에 집중하여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 점이 돋보였다. 후회를 지우기 위해서 더욱 후회할 만한 행동을 벌이고 그를 쉽사리 돌이키지 못하는 해미는 생생하면서도 공감이 가는 사실적 인물이다. ‘이 모든 일을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한다’는 것은 잠시 위안거리조차 되지 않는다. 진실은 내 자신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므로 자기 내면의 두려움을 바라보라는 작가의 메시지는 환상적인 이야기 속에서 무리 없이 표현된다. 주제 의식은 날카롭고 깊으면서도 작가가 창조한 이미지들은 유려하고 풍부한 점을 높이 샀다. 얼핏 보기에 사랑스러워 보이는 이 이야기 속에는 동화가 얼마나 중층적인 텍스트일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겹겹의 통찰이 깃들어 있다. 몇몇 문장이 다소 관념적이라거나 후반부에서 부분적으로 무리한 설정이 눈에 띄는 점은 안타깝다. 그러나 읽을수록 매력적인 흐름의 이야기임을 부인할 수 없었다. 이번 공모에 관심을 갖고 응모해 주신 많은 지원자 여러분께 감사드리며 자신이 창조한 낯설고 새로운 시간 속으로 독자를 초대하게 된 수상자에게 축하를 보낸다._김지은

정설아

수상자: 정설아

작품: 황금 깃털

수상 소감:

참으로 겁 많고 소심한 아이가 있었습니다. 처음 자기 방을 갖게 된 날, 자기 방이 생겼다는 기쁨보다도 혼자 자야 한다는 두려움에 몸서리치던 아이였지요. 아이는 밤마다 찾아오는 어둠과 사투를 벌였고 어느 정도 어둠에 익숙해져서야 편안한 밤을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는 자랄수록 또 다른 어둠과 만나야 했습니다. 매년 바뀌는 새 교실이, 낯선 사람들이, 또 다른 배움과 자극이 아이에게는 모두 어둠이었지요. 그런 어둠과 싸우는 법으로 아이는 혼자서 공상을 하거나 글을 썼습니다. 그렇게 겁 많고 생각 많던 아이가 바로 저였습니다.
아직도 저는 유치원 때 썼던 일기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으로 쓴 동화(차마 동화라 부르기도 민망한 이야기)도 갖고 있지요. 중 ․ 고등학교를 지나 대학생, 대학원생, 그리고 지금까지도 저는 제가 기록했던 모든 것을 버리고 있지 않습니다. 그것이야말로 저의 보물이니까요. 그런데 그 기록들을 보다 보면 한 번쯤은 돌이키고 싶은 과거가 속속 드러납니다. ‘그때 그랬더라면 좋았을 걸’ 후회하는 거죠. 하지만 저는 그때의 선택이 달랐더라도 후회 없는 삶이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진실한 나’는 ‘지금의 나’를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거라 생각합니다. ‘지금의 나’를 포기한다는 것은 ‘과거의 나’를 포기한다는 뜻이고 그건 ‘나’라는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자신이 믿고 싶은 것, 보고 싶은 것만 본다면 그것은 진실한 삶이라고 할 수 없을 테니까요.
제가 동화를 쓸 때 주로 하고 싶은 말은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내가 아직 모르는 감춰진 나에 대해, 그리고 현실 속에 숨어 있는 진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전 아직 30대지만 분명 제가 지금껏 마주했던 보이지 않는 어둠들은 요즘의 아이들도 만날 거라 생각합니다. 저는 바로 그 어둠들을 어떻게 이겨 냈는지, ‘온전한 나’를 찾기 위해서는 무엇을 느끼며 살아야 할지 어린이들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로 들려주고 싶습니다.
공모전 최종심에 오른 지 세 번 만에 드디어 당선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감사했던, 그리고 앞으로도 감사해야 할 분이 참 많습니다. 우선 항상 큰 힘이 되어 주는 가족과, 오랫동안 함께 동화 공부를 해 온 ‘꿈꾸는 꼬리연’ 식구들에게 감사합니다. 제게 작가의 기회를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과, 동화를 쓸 때마다 큰 가르침을 주셨던 김서정 선생님, 등단 소식에 그 누구보다도 기뻐하셨던 시인 최문자 선생님, 글쓰기를 포기할까 했을 때 장작이 모여야 불을 지필 수 있다며 합평의 중요성을 말씀하셨던 강정규 선생님,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 인사를 올립니다. 마지막으로 언제나 제 글의 첫 독자이자 영원한 팬이라 칭하는, 매일 사랑한다 말해 주는 남편 최규용 씨와 곧 태어날 배 속의 아기에게도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작가 소개:

중앙대학교 대학원에서 문예창작으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늘 보이지 않는 세상에 대한 궁금증을 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EBS 「천사랑」의 작가로 활동하다가 지금은 ‘꿈꾸는 꼬리연’에서 어린이를 위한 동화를 쓰고 있다. 지은 책으로 『나 오늘 일기 뭐 써?』 『폭탄 머리 내 짝꿍』 『생각이 커지는 철학동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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