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해송문학상 6회 - 2010
정옥 / 이모의 꿈꾸는 집
정옥의 『이모의 꿈꾸는 집』은 엄마 말을 잘 듣는 모범생 진진이가 특목고 진학을 위한 특별 캠프 대신 엉뚱한 캠프 ‘꿈꾸는 집’에 초대되어 자신의 진정한 꿈이 무엇인지 깨달아 가는 과정을 활기차고 개성 있게 그린 작품입니다. 마해송문학상 운영위원회는 이야기 속의 모든 등장인물, 사물, 동물 들이 살아 있는, 저학년 아이들한테나 통할 만 한 이런 물활론적인 세계가 아기자기한 매력을 발하며 사람을 잡아끌 뿐만 아니라 꿈에 관한 통찰력 있는 문장들이 도처에 포진하고 있어 획일화된 부모의 꿈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짓눌린 아이들의 삶을 예리하면서도 유쾌하게 그려낸 이야기라는 데 의견을 같이 하여 이에 이 작품을 올해의 수상작으로 결정하였습니다.
1차 심사를 거쳐 본심에 오른 작품은 이성률의 「마트맨」, 김왈의 「달 위를 노닐다」, 김영주의 「빨간 수염」, 정옥의 「이모의 꿈꾸는 집」 등 네 편이었다. 이 중 3편을 놓고 집중적으로 논의했다.
「달 위를 노닐다」는 소재에서 반가운 작품이었다. 최근 동화는 ‘가족’이라는 소재가 마치 동화의 큰 몫인 것처럼 소재의 편중과 빈곤을 가져왔다. 우리나라를 벗어나 아마존이라는 매력적인 공간 또한 신선했다. 현지 경험 없이는 쓸 수 없는 생동감이 있고 문장도 거침없이 없다. 등장인물의 성격도 잘 그리고, 그들의 역할도 짜여 있으며, 네 사람이 무계획적으로 혹은 닥치는 대로 챙겨 가는 것처럼 보였던 물건들의 쓰임이 하나하나 밝혀지는 것도 수수께끼가 풀리듯 흥미롭다. 그러나 모험 동화로서의 긴장과 쾌감은 느껴지지 않는다. 이는 스토리가 나열식으로 전개되기 때문이며, 동화적인 묘미를 살리지 못한 데서 온 것이다. 소설적 구조와 잠언적인 사설도 재미를 느끼는 데 한계였다.
「빨간 수염」은 조선시대 책장수 조신선이라는 인물 이야기로 이 작품도 소재가 흥미롭다. 얇은 삼베옷에 짚신 한 켤레를 허리춤에 꿰고 다니며, 턱에는 빨간 수염이 나 있다. 손에는 든 것이 없는데 언제 누가 부탁을 하면 소매 속에서 수십 권의 책이 쑥쑥 나온다. 인물의 설정이 동화적이고, 문장이 간결하고, 우리말을 잘 살려 쓰고 있다. 역사적인 등장인물과 관련된 사건에 대한 저자의 깊은 공부가 있음을 느낀다. 동화를 읽는 어린이들은 우리가 기초적으로 얘기하는 기승전결의 결말을 상상하며 읽는다. 이는 주제의 승화를 위한 일관된 스토리 전개로 일궈 내야 한다. 이 작품은 이 부분이 미흡하다. 역사적 인물과 사건이 짜깁기 식으로 전개되어, 그 사건과 인물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으면 읽는 재미를 놓치게 되고, 분량도 감당키 어렵다.
「이모의 꿈꾸는 집」은 만우절 놀이에 속아 ‘꿈꾸는 집’으로 들어가는 부분이 동화로서 강한 호기심과 흥미를 준다. ‘이모’는 친근감이 있다. 엄마 같고 큰언니 같고, 뭐든 다 들어주는 그런 이모의 이미지를 실명으로 차용한 것도 작가의 치밀한 캐릭터 설정임을 알 수 있다. 소재는 요즘 베스트셀러 소재로 유행하는 ‘책’이어서 진부하기도 하다. 그러나 이야기 속에 행복한 꿈을 꿀 수 있는 동화가 있다. 즉 주제를 이끌어 가는 이야기의 구조와 전개가 섬세하고 진지하다. 4분의 3박자로 꼬리를 흔드는 게 꿈인 덩치, 날고 싶은 어기, 매일 행복한 꿈을 꾸는 두레박 퐁, 꿈꾸는 집이 꿈인 이모. 그 집에서 주인공 진진의 계획된 꿈을 황당해하는 이모가 진진에게 행복한 꿈을 심어 주는 과정이 경쾌하게 음악처럼 전개된다. 동화는 서사적인 것에 판타지가 어우러졌을 때 가장 빛난다고 할 수 있다. 글씨를 보여 주지 않는 책들, 우울해서 소리 내지 않는 피아노가 교감 없이 의무적으로 해내야 하는 모든 일들에 대한 상징으로 처리된 것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흠도 있다. 상수리라는 아이가 전혀 암시 없이 불쑥 나타난 것, 학습 책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 ‘퀸과 비틀즈’의 노래, 작품 말미에 붙여 놓은 책 제목 등이다. 세 심사위원은 고심 끝에 어린이가 새롭고 재미있게 읽힐 수 있는 「이모의 꿈꾸는 집」을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앞으로 신인 작가로서의 역량에 대한 신뢰감도 간다._이상배
올해 총 응모작은 29편이었다. 예년에 비해 훌쩍 줄어든 편수에 심사에 앞서 걱정부터 되었던 게 사실이다. 해가 갈수록 문학상의 숫자도 늘어나고 상금의 규모도 커지고 부상도 화려해지는 탓일까, 씁쓸한 마음이 앞섰던 까닭이다. 그러나 막상 심사를 시작하고 나자 그런 근심은 금세 사라졌다. 응모편수는 적었지만 그 어느 해보다도 다양한 소재를 다룬 작품들이 눈에 띄었고 공을 들여서 쓴 작품들이 많아 보였기 때문이다. 심사위원들은 다음과 같이 네 작품을 최종심에 올려놓고 토의했다. 김왈의 「달 위를 노닐다」, 이성률의 「마트맨」, 김영주의 「빨간 수염」, 정옥의 「이모의 꿈꾸는 집」.
「달 위를 노닐다」는 소재 면에서 가장 특이한 작품이었다. 아마도 이제까지 우리 아동문학에서 한 번도 다루어진 적이 없었던 아마존 탐험을 소재로 다루고 있었다. 심사위원들은 이 원고가 간접 자료를 바탕으로 쓰인 것이 아니라 글쓴이의 직접 체험에서 나온 글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만큼 낯선 세계의 매력이 느껴지는 글이었다. 그러나 서사 구조가 약하고 원주민과 한국인 주인공 가족의 대비라는 점을 제외하면 인물의 성격도 뚜렷하지 않으며 주제 의식도 단순한 편에 속했다.
「마트맨」은 딱 떨어지는 제목부터 흥미를 유발하는 원고였다. 대형 마트 내부에서 하나의 세상을 읽어 내는 글쓴이의 시선이 신선했고, 등장인물들의 캐릭터 또한 생생했으며 심리 묘사도 돋보였다. 그러나 주인공 아이 가정의 생활고를 친구 아버지가 해결해 준다는 식의 설정으로 쉽게 문제를 해결한 것은 아무래도 억지스러웠다. 또, 뒷부분에서 마네킹이 소원을 들어주는 등 초현실적인 풍경들이 펼쳐지면서 앞부분의 매력이 급감하고 하나의 ‘작품’으로 나아가지 못한 원고가 되었다.
「빨간 수염」은 원고의 양이 보통 다른 원고의 두 배쯤이나 되고 배경이 조선시대인 점, 실존 인물이었던 책장수 이야기라는 점, 정약용, 박지원을 비롯한 당대의 지식인들이 상당수 등장한다는 점만으로도 만만찮은 공력이 들어간 원고라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정갈하고 힘 있으면서도 다정한 문체는 아이들 마음을 잡아 두기에 충분했고, 시종 일관, 지식인으로부터 기녀들에 이르기까지 백성들의 삶에 미친 책의 이야기를 하면서 독자로 하여금 마침내는 책을 읽고 싶어지게 만드는 힘이 있는 작품이었다.
「이모의 꿈꾸는 집」 또한 책에 대한 이야기였다. 「빨간 수염」이 차분하고 묵직한 이야기라면 「이모의 꿈꾸는 집」은 톡톡 튀는 개성 있는 이야기였다. 이모가 엄마의 자매를 가리키는 낱말이 아니라 책으로 둘러싸인 집에 사는 어른의 이름이라는 점부터 이상하기 시작한 이 원고 속의 모든 등장인물, 사물, 동물들은 모조리, 하다못해 두레박까지 성격이 있고 수다스럽다. 그런데 저학년 아이들한테나 통할 만 한 이런 물활론적인 세계가 아기자기한 매력을 발하며 사람을 잡아끈다. 꿈에 관한 통찰력 있는 문장들이 도처에 포진하고 있는 이 작품을 읽다 보면 어른도 저절로 ‘이모의 꿈꾸는 집’에 가고 싶다는 꿈을 잠시 꾸게 된다. 아주 오래간만에 만난, 동화의 본령에 맥이 닿아 있는 작품이었다. 이 작품에 대한 논의를 하면서 원고를 들춰 내서 다시 읽고 함께 웃으면서 심사위원들은 즐겁게 이 작품을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작가의 정진을 빌면서 힘 있는 행보를 기대하고 새로운 작가의 탄생에 한 아름 축하를 보낸다._최윤정
결선에 올라온 네 편의 작품들은 다양한 소재를 보여 주었다. 시적으로 펼쳐지는 아마존 강 탐험 이야기, 시공을 자유롭게 휘젓고 다니면서 조선 시대의 책과 사람들을 섭렵하는 신비로운 인물 이야기, 대형 마트를 아이들의 일상과 환상의 공간으로 새롭게 조명하는 이야기, 현실에 짓눌려 무감각해진 아이의 마음에 살아 움직이는 책과 동물과 사물이 새로운 생기를 불어 넣어 주는 이야기. 그러나 각각의 작품들은, 개성은 있으나 문장력, 구성력, 흡인력 등의 면에서 조금씩 혹은 상당 부분 아쉬운 면이 있었다.
「달 위를 노닐다」는 아마존 탐험이라는 독특한 소재가 흥미로웠고, 작가의 실제 체험이 배어 있지 싶게 구체적인 여정과 풍경 묘사가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서사가 두서없고, 플롯이 허약하다는 허점이 컸다. 그 아마존 탐험의 목표 혹은 의도가 무엇인지, 이야기 중 언급되는 세 가지 과제가 무엇인지를 명확히 밝혀 주고, 선원인 세 원주민에게도 충분히 제 몫을 하게 해 주었다면 활기 넘치는 모험담으로 발전할 수 있었을 것이다.
「마트맨」은 날마다 대형 마트의 시식 코너를 돌아다니며 눈치껏 배를 채우는 가난한 집 아이의 허기에 관한 이야기이다. 자칫 감상과 동정에 빠질 수도 있는 소재이지만 깔끔하고 경쾌하면서도 부드러운 문장으로 감정 과잉의 위험은 피해 가고 있다. 몸의 허기를 채워 주는 마트가, 엄마가 핸드백 도둑일 수도 있다는 마음의 불안도 풀어 주는 역할을 하는 대목에서는 우리 동화에 부족한 공간 인식, 새로운 공간 활용의 가능성을 볼 수도 있었다(거대 자본이 전횡하는 대형 마트가 이런 긍정적 기능의 공간으로 사용되는 메커니즘에 대한 논의는 또 다른 문제이다). 그러나 작은 에피소드 한두 개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맴도는 플롯이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다.
「빨간 수염」은 그 방대한 분량과 함께 조선 시대의 책자들과 그 책에 얽힌 사람들에 대한 작가의 광범위한 지식에 감탄을 금치 못하게 하는 작품이었다. 탄탄한 문장과 다채로운 에피소드들도 작가적 역량을 가늠하게 하는 요인이었다. 그러나 그런 광범위한 지식, 많은 인물,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하나로 꿰어 내는 탄탄한 축이 없었다는 점이 이 작품을 당선작에 올려놓지 못한 이유로 작용했다. 무엇보다 작품이 ‘동화’로 기능하기 위해 필요한 동화적 요소, 예를 들면 어린 독자들이 동일시할 수 있는 확실한 어린이(다운) 캐릭터, 흥미를 느낄 만한 주요 사건, 공감할 수 있는 메시지가 결여되어 있었다.
「이모의 꿈꾸는 집」은 가볍고 사랑스러운 판타지이다. 특목고, 서울대, 변호사가 꿈인 모범생 딸 진진이가 괴상하고 엉뚱한 캠프장인 ‘꿈꾸는 집’에 엉겁결에 초대 돼서 진정한 꿈이 무엇인지 깨달아 간다. 그 과정에서 개, 오리, 제비들이 의인화되어 아이와 대화를 나누고, 심지어 두레박과 책 같은 사물들까지 끼어들어 떠들썩한 놀이판을 만드는 장면이 군더더기 없는 문장과 톡톡 튀는 대화로 흥겹게 그려진다. 꿈조차 주체적으로 꿀 수 없는, 너무나 현실적으로 획일화된 부모의 꿈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짓눌린 아이들. 그 아이들의 삶의 현장을 사뿐히 뒤집으면서 영혼의 숨통을 틔워 주는 놀이의 장이 펼쳐지는 이 ‘꿈꾸는 집’은 반가운 설정이었다. 작품 속에 나오는 수많은 책과 노래는, 그것들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에게는 걸림돌이 될 수도 있겠지만, 또 다른 놀이판으로 끌어 주는 길잡이 역할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책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보여 주는 이 작품을 당선작으로 내놓으면서 이 작가가, 그리고 다른 작가들도 더 풍성하고 자유로운 책의 세계를 만들어 가기를 바란다._김서정
수상자: 정옥
작품: 이모의 꿈꾸는 집
수상 소감:
세상과 소통하는 게 늘 힘들었습니다.
돌아보니,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 선택한 길이 나와 사람들 사이를 가로막았더군요. 진보주의자, 여성주의자, 비혼주의자, 채식주의자……
억울했습니다.
내가 그런 선택을 했다고 해서 정치적 견해가 다른 사람들을 부정하진 않는데, 남성들을 적으로 생각하지도 않는데, 결혼 제도 안의 삶을 멸시한 적도 없는데, 고기를 즐겨 먹는 사람을 싫어하지도 않는데, 왜 세상은 나를 따돌릴까?
나는 다만 남보다 더 부유하게 살기 위해서 경쟁하는 삶이 죄스러웠습니다. 이전의 여성들보다 나은 삶에 만족하기 싫었고, 동시대의 남성들과 동등하게 살고 싶었습니다. 결혼이라는 제도 밖에서 사람을 사람답게 오롯이 사랑하고 싶었고, 먹을 것이 넘쳐나는 나라에서 굳이 살아 있는 것을 죽여서 먹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나를 인정하지 않았고, 나도 나를 인정하지 않는 세상이 미워서 돌아서 버렸습니다. 너 따위와는 타협하지 않는다며 세상을 비웃었지만 내심 두렵고 불안했지요. 외롭고 우울하진 않을지. 하지만 세상과 등 돌린 시간 동안에도 내 삶은 여전히 유쾌하고 행복했습니다. 바로 책이라는 친구가 있었기 때문이지요.
책과 함께 놀면서 보낸 서너 해 동안, 내 친구는 나에게 속삭여 주었습니다. 완벽한 것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니니 좀 더 유연해지라고, 진정으로 소통하고 싶다면 더욱 겸손하게 타자와 마주하라고, 내 억울함의 뿌리는 내 오만함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그렇게 일깨워 주었습니다. 그들은 내게 단 한 번도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다만 내가 스스로 부족한 나를 고백할 때까지 하소연을 듣고, 고개 끄덕이며 기다려줄 뿐이었지요.
이제는 알았습니다. 나도, 세상도 틀리지 않았단 것을. 다만 내 방식이 나에게 어울리지 않았을 뿐이란 걸. 그래서 다시 세상으로 나오면서 내게 가장 어울리는 방식으로 손을 내밀어 보았습니다.
조심스럽게 내민 손을 이렇게 선뜻 맞잡아 주셔서 고맙습니다. 아직은 날것의 비린내가 풀풀 나는 작품이지만 기대에 부끄럽지 않은 작품을 쓰라는 따뜻한 격려임을 잊지 않겠습니다.
“아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상상하는 것이다.”
동화가 존재하는 까닭이 바로 이것이라고 믿습니다.
상식과 권위가 두려워 차마 상상조차 못하는 꿈, 그런 꿈을 버젓이 쓰는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아무 것도 가르치려 들지 않는 동화, 이것만이 옳다고 윽박지르지 않는 동화를 쓰겠습니다.
끝으로 이 작품이 내 것이 아님을 밝힙니다.
내 그릇엔 버겁도록 선한 유전자를 물려주신 어머니, 오소남님. 삶이 거짓이 아니라면 진실한 글은 늦어도 뒤따라온다고 격려해 주신 큰언니, 차정필님. 내 상식이 세상의 상식이 아니란 게 서러워 울 때마다 꼭 안아 주던 어린이도서관 ‘햇빛따라’의 김은자님.
이 작품은 그 분들의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작가 소개:
정옥은 대구에서 태어나 자랐고, 지금도 대구에서 살고 있다. 책 읽고, 사유하고, 상상하는 걸 좋아한다. 진보정당 운동, 여성 운동, 환경 운동을 하다가 지금은 동화를 쓰고 있다. 상식과 권위가 두려워서 감히 상상조차 못하는 꿈을 마음껏 펼치고 싶어서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