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해송문학상 5회 - 2009

이송현 / 아빠가 나타났다!

선정 개요

이송현의 『아빠가 나타났다!』는 댄스 교습소에서 춤을 가르치는 ‘춤 선생’ 아빠와 단둘이 사는 열두 살 남자 아이의 일상과 내면을 밝고 따듯하게 그린 작품으로, 세상의 어지러운 바람에 휩쓸리지 않고 자기중심을 붙든 채 자기가 살고 싶은 삶을 정성스럽게 사는 아빠가 자신을 창피해하던 아들의 마음을 결국 얻어 내는 과정이 찬찬이 그려지는 동안 그 정성이 읽는 이의 마음에 고스란히 전해져 옵니다. 이에 마해송문학상 운영위원회는 주제도 뚜렷하고 무엇보다도 오랫동안 우리 아동 문학의 트렌드가 되어 있는 아프고 어두운 상처를 드러내는 이야기가 아니라 따듯하고 밝게 차이를 극복하는 이야기라는 데 의견을 같이 하여 이에 이 작품을 올해의 수상작으로 결정하였습니다.

심사평

최종심에 오른 정복현의 「넌 아직도 우정을 믿니」, 류호선의 「엄마 찾아 삼천리-마르코를 따라서」, 한아름의 「마지막 풍경」, 이송현의 「아빠가 나타났다!」 등 네 편을 두고 최종 논의를 했다.
「넌 아직도 우정을 믿니」는 초등학교 고학년 아이들의 우정을 그린 작품이다. 있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보다 정말 요즘 아이들의 세계가 이럴까 하는 놀라움과 함께 이 작품을 읽은 독자가 만에 하나라도 나쁜 쪽을 받아들이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섰다. 속도감 있는 문장에 호감이 갔지만, 오히려 그로 인해 사건 전개의 요철이 심했고, 초등학생답지 않게 생각하고 마무리 짓는 주인공의 조숙함과 크게 기대했던 ‘민주’의 역할이 적은 것도 아쉬운 부분이었다.
「엄마 찾아 삼천리-마르코를 따라서」는 참신한 도입부와 싱그러운 문체가 돋보이고, 맛깔스러운 대화가 재미를 주지만 그 재미가 점점 알맹이 없는 말재주로 변질되는 안타까움을 주다가 끝내는 동화라기보다 ‘아르헨티나 여행기’가 아닐까 하는 아쉬움을 남겼다. 한 문장씩 행을 가르듯 쓰는 글쓰기도 되짚어 볼 문제다.
「마지막 풍경」은 6학년 아이들의 사랑에 가까운 감동적인 우정을 그린 이야기다. 과연 6학년 아이가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할 정도로 성숙하고 발랄한 삶 속에서 감칠맛 나는 우리말과 세상을 보는 따뜻한 시선이 돋보였지만 남녀의 구별이 모호한 주인공 이름, 너무 어른스러운 비유, 더러 재미에만 치우친 문장, 너무 지루한 하모니카 교습 등은 아쉬움을 주는 부분이었다.
「아빠가 나타났다!」는 제목에서부터 묘한 즐거움을 주는 작품이다. 두 살 때, ‘피치 못할 사정’으로 아내와 헤어진 ‘춤 선생’ 아버지와 함께 사는 5학년짜리 주인공의 일상이 슬픔이나 어두운 면 없이 밝고 따뜻하게 그려진 작품이다. 그러나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낙천적인 주인공의 일상이 긍정적이기는 하나 화자의 내레이션에는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철이 없는 아빠 밑에서 자라 철이 빨리 들었다’고는 하나 작가의 생각이나 말투가 너무 깊이 스며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네 편의 작품을 다 읽고 선뜻 이것이다 하고 수상작을 가려 내지 못한 것은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 조금은 허전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아빠가 나타났다!」를 수상작으로 결정한 것은 이 작가가 가진 밝고 맑은 긍정적인 힘이다. 점점 결손 가정이 많아지고 있는 현실을 두고 볼 때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이런 일상을 꽃밭처럼 가꿀 수 있는 그 무엇이 절실히 요구되기 때문이다. 작가의 크고 넓은 마음 밭에서 따뜻한 이야기들이 샘솟듯 피어나기를 바라며, 정진을 빈다.
_배익천

세 명의 심사위원이 원고들을 나누어서 읽고 난 다음에 모여서 최종심에 올릴 작품을 가리는 1차 회의를 했다. 각자 강력하게 수상작으로 추천하고 싶은 작품이 한 편이 아니라 두세 편씩 되는 경우, 토론이 길어지고 일은 복잡해지지만 심사위원들은 신이 난다. 하지만 올해는 그런 어려움이 없었고 심사위원들은 다음과 같이 네 작품을 최종심에 올렸다. 「넌 아직도 우정을 믿니」, 「엄마 찾아 삼천리-마르코를 따라서」, 「마지막 풍경」, 「아빠가 나타났다!」
「넌 아직도 우정을 믿니」는 안정감 있게 풀어 나가는 솜씨 덕분에 이야기가 탄탄하고 심리 묘사도 탁월한 편이다. 그러나 제목이 암시하듯이 이 작품은 우정에 대한 회의와 의심에 대한 이야기인데 작품 초반에 잠시 등장해서 주제의 실마리가 되었던 민주가 마지막에 편지를 보내, 어둡고 때로는 섬뜩한 이야기를 서둘러서 ‘해피엔딩’으로 만들어 버린 점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글쓴이의 ‘동화’에 대한 가치관이어서 심사위원들은 이 작품을 두고 걱정을 많이 했다.
「엄마 찾아 삼천리-마르코를 따라서」는 아르헨티나라는 이국적인 배경이 새롭고 열 살짜리 주인공의 일인칭 시점에 생생하게 살아 있는 아이들의 감각, 속도감 있는 문장으로 재미있게 읽혔지만 가벼운 여행기 이상을 넘어서지 못했다.
「마지막 풍경」은 너무나 많은 이야기를 한 편의 동화에 담아내느라 산만하고 인물의 성격도 흔들린다. 게다가 문체도 옛날과 오늘이 뒤섞인 것처럼 어수선하다. 결국 따뜻하게 마무리되는 이야기는 평범하기 그지없다.
「아빠가 나타났다!」는 재미있게 읽힌 작품이다. 군데군데 가벼운 잘못들이 눈에 띄었지만 인물들이 개성적이고 이야기도 잘 짜여 있다. 주제도 뚜렷하고 무엇보다도 오랫동안 우리 아동 문학의 트렌드가 되어 있는 아프고 어두운 상처를 드러내는 이야기가 아니라 따뜻하고 밝게 차이를 극복하는 이야기라는 점도 심사위원들의 눈길을 끌었다. 당선자에게 축하를 보내며 정진을 바란다.
_최윤정

한때는 꽃이니 별을 운운하는 몽상 같은 이야기가 동화로 여겨진 적이 있었다. 상투적인 꿈과 대책 없는 희망과 어이없는 선함이 동심의 표상으로 여겨진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동화는 아이들의 삶을 그리는 문학이니 아이들의 실존적 고민과 어두운 내면, 그들이 살아가야 할 세상의 척박함, 부조리함, 어수선함을 보여 주는 것도 임무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에는 변함이 없지만, 이제는 동화가 그 임무를 지나치게 충실히 수행하려 드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든다. 극단적인 소재, 거칠고 날 선 혹은 무딘 언어로 아이들 삶의 부정적 환경을 후비듯 파내어 보여 주는 동화들이 많아지는 경향이 보이기 때문이다. 현실이 이리 팍팍하니 그것을 반영하자는 자세이기는 하겠지만, 그렇다면 동화는 오히려 그 현실을 한 발 넘어서 이제 다시 희망과 위로와 꿈을 말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피상적이지 않은 꿈, 진심 어린 위로, 설득력 있는 희망이 부드러운 언어에 실려 나오는 동화를 만나고 싶다는 것이 요즘의 바람이다.
「아빠가 나타났다!」는 그런 바람을 채워 주는 이야기다. 무엇보다 아들과 함께 차차차를 추는 긍정적인 아빠 캐릭터가 반갑다. 죽은 아빠, 폭력 아빠, 가출 아빠, 이혼 아빠… 요즘 동화들을 채우는 이 어두운 아빠들 사이에서, 차차차를 추는 춤 선생 아빠는 빛을 발한다. 세상의 어지러운 바람에 휩쓸리지 않고 자기중심을 붙든 채 자기가 살고 싶은 삶을 정성스럽게 사는 아빠. 그가 아빠를 창피해하던 아들의 마음을 결국 얻어 내는 과정이 찬찬히 그려지는 동안 그 정성이 읽는 이의 마음에 번져 온다. ‘아빠 때문에 속상’한 애늙은이 열두 살 아들의 여리고 따뜻한 속마음도 기특하다. 이런 미덕이 구성상 느슨함이라는 약점을 덮고 당선작으로 결정되게 하는 힘이 되었다.
치밀한 문장과 심리 묘사가 돋보이지만 전체적으로 심리적 압박이 과한 데다 결말의 개연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넌 아직도 우정을 믿니」, 탄력 넘치는 문장, 유머러스한 시각, 독특한 사건이 눈에 띄지만 플롯이라고 하기 어려운 나열식 사건 전개가 아쉬운 「엄마 찾아 삼천리-마르코를 따라서」, 경쾌하고 다채로운 인물과 사건이 재미있지만 굵은 맥이 없어 어수선한 「마지막 풍경」이 최종심에서 다루어진 작품들이다. 계속 정진하기를 바라고, 당선자에게 축하를 보낸다.
_김서정

이송현

수상자: 이송현

작품: 아빠가 나타났다!

수상 소감:

한동안 밥그릇을 갖고 고민한 적이 있었습니다. 내 능력은 작은 간장 종지만 한데 미련을 못 버리고 간장 종지보다 훨씬 큰 욕심과 꿈들을 가득 주워 담으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하나뿐인 인생을 가지고 무모한 배팅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러다가 아무것도 되지 않고 뜨거운 물에 녹아 없어지는 설탕처럼 그냥 스르륵 사라져 버리는 것은 아닌지 조바심을 냈습니다. 모두가 직장에서 자리를 잡아 가고 통장의 잔고를 늘려 가며 제 삶의 터전을 착실하게 꾸려 가고 있는 동안, 나 혼자만 공상 속에 빠져서 뜬구름을 잡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으로 불면증에 시달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붓을 꺾지 못하는 나를 보며 어머니는 ‘배부른 고민한다. 즐거운 마음으로 써’라고 유쾌한 대답을 해 주셨습니다. 귀가 얇은 탓인지 나는 그 말을 철석같이 믿었습니다. 그리고 나의 이야기 속에서 한껏 즐거워지자고 결심했습니다.

수상 소식을 듣는 순간, 귀가 잘 들리지 않았습니다. 아침 수영을 마치고 나온 탓에 귀에 물이 잔뜩 들어가 있어서 먹먹했습니다. 내 귀가 잘못된 것이라고, 설마 하는 소식이 현실이 되는 순간 금발의 꼬마가 떠올랐습니다.
2004년 봄, 내셔널갤러리 앞에서 아빠를 따라온 금발 머리의 꼬마를 만났습니다. 엘 그레코 특별 전시회였는데, 아이는 그림을 보고 감탄하는 사람들 틈바구니 속에서 홀로 떨어진 채, 간이 의자에 앉아 동화책을 보고 있었습니다. 알록달록한 삽화가 곁들어진 그림책이었는데 어찌나 골똘히 보고 있는지, 나 또한 위대한 엘 그레코의 명화를 뒤로하고 금발 꼬마의 곁에 앉아 버렸습니다. 책 제목을 묻는 내게 아이는 친절하게 제목을 말해 주고 곁들여 책의 내용까지 설명해 주었습니다. 지금 떠올려 보면 그 동화책의 제목과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아이의 대답이 내 심장을 다시 뛰게 만들었습니다.
“이거 읽으면 아주 기분이 좋아져. 행복해지는 이야기야. 그래서 매일매일 읽어.”
부족한 제 이야기가 누군가를 매일매일 행복하게, 기분 좋게 만들어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소원을 빌어 봅니다.
심장 뛰는 글들을 쓸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그 이야기들을 모두와 함께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부족한 제 작품을 놓고 고민하셨을 시간을 성실한 글들로 보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제 글쓰기 인생의 큰 스승님이신 아동문학가 조대현 선생님, 소설가 이동하 선생님, 비교문학자 김환희 선생님께 이 영광을 돌리고 싶습니다. 언제나 함께 한 문우들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보냅니다.
마지막으로 종지 그릇 크기밖에 되지 않는 제 그릇을 세상에서 제일 단단하고 커다란 그릇이라고 믿게 만들어 주신, 과도한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던 부모님께… 사랑합니다.
그 어느 해보다 눈부신 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뜨거운 물에 녹은 설탕의 단맛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깜빡 잊고 있던 지난날을 반성하며 이젠 더 이상 설탕의 단맛을 잊는 일은 없을 겁니다.
세상의 모든 긍정을 고스란히 껴안을 수 있는, 유쾌하고 즐거운 이야기꾼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작가 소개:

대구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다.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에서 박사과정을 공부하고 중앙대 교양학부에 출강 중이다. 제5회 마해송문학상, 2010 조선일보 신춘문예 동시 당선, 제9회 사계절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 지은 책으로는 『아빠가 나타났다!』 『천둥 치던 날』(공저) 『내 청춘, 시속 370km』 『호주머니 속 알사탕』(동시집) 『지구 최강 꽃미남이 되고 싶어』 『슈퍼 아이돌 오두리』 등이 있다. 재미난 이야기가 머릿속에서 항상 맴돌았으면 좋겠다.

마해송문학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