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해송문학상 21회
조은주 / 마해송문학상 / 비로와 호랑할배
우리 창작동화의 첫 길을 연 마해송 선생(1905~1966)의 업적을 기리고 국내 아동문학의 발전을 지원하기 위해 2004년 제정한 ‘마해송문학상’의 제21회 수상작이 아래와 같이 결정되었습니다. 수상자에게는 창작 지원금 일천만 원과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 참관 혜택을 드립니다.
올해 ‘마해송문학상’ 응모작들은 다채로운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어 많은 분량의 원고를 읽는데도 지루하지 않았다. 생활 동화부터 판타지, 현재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부터 과거와 미래를 넘나드는 이야기까지 다양한 소재와 기발한 상상력의 이야기들이 넘쳤다. 또한 단편집들의 수준이 다른 해보다 높아 눈에 띄는 단편집들이 많았다는 점도 덧붙인다. 예심에서 올라온 8편의 작품 중에 논의 끝에 본심에 올린 작품은 다음 4편이다.
우선 5편의 단편 동화집인 「밤과 고구마」는 차분한 이야기들로 다정한 위로를 주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생략을 통한 여운을 주는 세련된 구성, 아이들의 내면과 관계를 섬세하게 다루는 재능도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동화로서는 조금 불친절하다는 아쉬움이 들었다. 이것은 아이들의 독해력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어떤 작품을 ‘동화적으로 더 적합하게 써내려는 고민’이야말로 동화 작가가 반드시 가져야 할 태도이기 때문이다.
「동지에 눈이 오면」은 가족과 사별한 아이의 상처가 아무는 과정을, 엄마와 반려견이 바뀌는 마법을 통해 무겁지 않게 그려 낸 작품이다. 애도의 과정을 비극적으로만 그리지 않고 재미있고, 유머러스하게 풀어낸 점이 좋았고, 아이의 상처가 아무는 과정도 자연스럽게 잘 그려 내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그러나 이런 설정의 이야기는 너무 흔해서 그 흔함을 넘어서는 독창적인 어떤 것을 보여 주지 않는 한 평범한 작품에 머무르고 만다. 아쉽게도 이 작품은 그것을 넘어서지 못해 당선작으로 밀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고민재는 고민 중」은 완성도 높은 단편집 응모작들 중 가장 주목을 끈 작품이었다. 표제작을 포함한 5편의 단편 모두가 같은 화자의 이야기로 된 연작 동화 모음으로 주인공을 비롯한 아이들의 캐릭터가 매우 생생하게 살아 있고, 모든 작품이 안정된 완성도를 이루고 있었다. 어쩌면 이 작품들이야말로 현실의 어린 독자들이 가장 공감을 느낄 수 있는 ‘실감 나는’ 작품들이 아닌가 한다. 그런 미덕 때문에 마지막까지 당선작으로 논의가 되었지만 ‘안정된 완성도’를 넘는 강렬함이나 새로움이 부족하다는 점에서 아쉽게도 당선작이 되지 못하였다.
「비로와 호랑할배」는 이 시대의 동화들 사이에서 허를 찌르고 솟아 나온 작품처럼 보였다. 다들 판타지라 하면 인공 지능이나 환상 세계, 타임 슬립 등에만 쏠려 있을 때, 이 작가는 뜬금없이 호랑이를 들고 나왔다. 그것도 ‘같이 살던 할아버지가 진짜 호랑이로 변해 백두산에 가겠다고 나선다!’ 변신을 다룬 동화는 많고, 황당한 설정도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그것을 ‘현실적’으로 풀어내 설득력을 갖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런데 이 작가는 이 황당한 설정의 이야기를 지극히 현실적인 공간에서 바로 지금의 이야기로, 거의 사실적으로 풀어 나간다. 이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판타지로 도망가지 않은 채, 실감 나게, 끝까지 성실하게 풀어낸 것이다. 독자는 어느새 그것에 설득되어 이 조손의 가는 길을 마음 졸이며 따라가게 된다. 추적자인 가죽 밀매업자와 수색대, 비로의 아버지와의 이야기도 적재적소에 알맞게 들어가며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동화에서는 보통 약하고 가엾은 노인으로만 묘사되는 ‘할아버지’가 위엄있고 주체적인 캐릭터로 묘사되는 것도 신선했으며, 호랑이와 사람 사이에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의문에 끝없이 갈등하면서도 할아버지를 악착같이 따라가며 지켜 내는, 그리하여 ‘호랑이이며 인간인’ 자신을 찾아가는 비로의 캐릭터도 인상적이었고, 진정한 가족애란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해 주는 작품이었다. 그러나 이 글의 가장 큰 미덕은 ‘재미’가 아닐까? 이 작품은 어린 독자들을 위한 ‘재미’가 말초적인 웃음 코드나 자극적인 소재가 아닌 진지한 주제로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 줬다는 점에서도 반갑고 고마운 작품이었다. 단 한 가지, 할아버지가 백두산에 가려는 간절한 목적이, 끊어진 우리 땅을 이으려 한다는 점은 작가의 노파심이 가져온 옥의 티로 이 글의 감동을 갉아먹는다. 호랑이 할아버지는 죽을 때가 되어 자신의 고향으로 가고 싶어 하는 걸로 족하다. 그가 인간이 만든 철조망을 유유히 넘어 자기 고향으로 가는 그 자체가 이 땅의 분단을 실감하게 해 줄 것이다. 등장인물들이 굳이 입으로 말하지 않게 하는 것, 아마도 창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늘 염두에 두고 조심해야 할 사항이리라. 당선을 축하하며, 더욱 정진하여 책에서 떠나가는 어린 독자들을 새로운 매력으로 붙잡아 주시기를 기대하는 바이다._이경혜
올해 ‘마해송문학상’ 심사는 다양한 작품을 검토하는 즐거움이 있었다. 어린이와 동화에 대한 감상적 접근은 여전하였으나 예년에 비해 AI 소재, 암울한 미래 배경 소재는 다소 줄어든 편이었고, 단편 모음 응모작의 약진이 눈에 띄었다. 판타지 방식의 작품이 상대적으로 많았던 만큼 후보에서 검토한 판타지 작품 또한 여럿이었다. 심사위원 전원이 응모작 전체를 검토하여 후보작을 다수 올렸고, 그중에 4편을 최종 후보로 골라 면면을 검토하였다.
「밤과 고구마」는 단편 모음 응모작이다. 일상적 소재를 감각적으로 드러내는 저력이 엿보이고 소소한 일상과 특별하지 않은 인물들을 다정하게 주목하는 시선이 정겨웠다. 그러나 자주 걸리는 비문, 구성이 보이지 않는 전개가 다른 후보작에 비해 밋밋하다는 아쉬움을 남겼고, 5편의 작품이 개별적 인상이라 한 권의 책이 되기에는 통일감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았다.
「동지에 눈이 오면」은 인물의 몸이 바뀌는 설정에 상실감 극복이라는 의도를 얹은 판타지 작품이다. 엄마와 집안의 개가 몸이 바뀌어 상대의 슬픔을 알아채는 이 방식은 새롭지 않으나 자식을 늘 빼앗겼던 개 동동이의 상실감까지 조명한 점, 이별을 극복하는 첫 번째가 충분히 슬퍼하기인 점을 담으려 한 것은 적절해 보였다. 그러나 민속적 소재가 개연성을 확보하지 못해 의문으로 남았고 설정에 치우쳐 주제가 희석되는 결과를 낳았다.
「고민재는 고민 중」은 단편 모음이자 같은 인물들이 개별적 사건을 겪는 연작 동화이다. 친밀감을 가장하여 돈을 갈취하는 상급생, 선행 학습을 비틀어 선행 놀기를 시도하는 인물들, 숙제하려다 찍은 사진 때문에 문제 학생 취급받는 사건 등 요즘 어린이의 현실적인 문제가 구어체로 맛깔나게 전개되는데 이렇다 할 사건이 없음에도 저작자의 내공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라는 평을 얻었다.
「비로와 호랑할배」는 장편에 어울리는 다층적 구조와 인물마다의 입체감이 잘 갖춰진 모험 서사이다. 등장인물이 많은 편인데도 인물 개성이 선명하여 집중도를 높인 점, 할아버지가 사실은 호랑이였다는 황당한 설정을 설득력 있게 풀어내는 감각 또한 남달랐다. 고만고만한 미래 배경의 판타지 응모작, 죽음과 귀신을 유행처럼 소비하는 최근의 응모작들과는 다른 면모를 보인다는 평가와 앞으로의 창작을 기대할 수 있다는 믿음에 이 작품을 수상작으로 결정하였다. 우리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곧 확인할 수 있기를 바란다._황선미
심사하는 동안 나라 안팎으로 중요한 일이 있었다. 노벨문학상 시상식과 계엄과 탄핵이 그것이다. 둘은 다른 것 같으면서도 묘하게 동일한 성격을 갖는다. 44년 만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것. 한강 작가는 문학의 힘을 수상 소감으로 말했다. 생명을 파괴하는 모든 행위에 반대되는 위치에 서 있는 것이라는 말이 오늘 이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특히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 남다른 울림이 되었으리라.
올해 ‘마해송문학상’ 응모 원고는 전반적으로 단편이 많았고, 주인공이 4학년인 경우가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과 가족 내의 죽음이나 부모의 이혼 같은 이유로 기존 가족 관계의 붕괴에서 비롯된 이야기가 눈에 많이 띄었다. SF의 경우도 지금껏 보지 못한 다양한 방식의 작품이 보여서 읽는 즐거움을 더해 주었다. 작가의 노력한 흔적이 엿보인 작품들이 많았지만 최종심에는 4편의 작품이 올랐다.
「밤과 고구마」는 4학년이 주인공인 단편으로, 학년이 올라가면서 불편해진 친구와의 관계 회복, 최신식 로봇 청소기로 인해 벌어지는 소동, 문고리가 떨어져 나간 구멍을 통해 마음을 주고받는 시야네 가족, 자주 바뀌는 가족 규율로 인해 민망해진 소린 이야기, 밤까지 혼자 있어야 하는 태현을 위로하는 친구들의 방식 등을 통해 따뜻함을 느끼게 하는 작품들이었다. 5편의 이야기의 차분하고 정적인 면이 돋보인다고만 생각했는데, 정적인 배경을 채우는 인물들의 미시적인 동선의 표현 또한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표현적인 치밀함에 비해 「밤과 고구마」 「노크 대신 윙크」 「혼자, 더하기」 등 작품마다 나름의 완성도를 추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형식적인 치밀함은 상대적으로 아쉬웠다. 작품을 하나로 관통하는 전략적 짜임이 없을 때의 산만함에 대해 고민해 봐야 할 것이다. 또한 재미와 감동을 주는 작품들 사이에서도 인물들 간의 특별한 사건 없이 자성으로 회복되는 관계가 또래 독자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지 의문이다.
「동지에 눈이 오면」은 아빠의 죽음 이후 상실감에 힘들어하던 나라가 가져온 팥죽 때문에 벌어지는 판타지 이야기다. 아빠가 떠나고 엄마로부터 다정한 돌봄을 받지 못하는 나라에게 팥죽으로 인해 엄마와 집에서 기르던 개 동동이가 바뀌는 사건이 벌어진다. 갑자기 달라진 엄마의 태도와 그것을 알게 되었을 때 바로잡으려는 나라의 애쓰는 과정이 어떤 결과가 될지 알면서도 흥미진진하게 지켜보게 된다. 또한 흔하게 소비되는 마법의 팥죽이라는 소재, 정해져 있는 결과가 자칫 진부하게 느껴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읽게 만드는 작가의 필력이 단단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엄마와 반려견이 바뀌었다는 설정이나 이야기 속의 인물이 도식적으로 그려진 점, 모호한 팥죽 집 할머니의 정체 등은 전형성을 더욱 공고히 하지 않나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판타지 속의 낯설고 가슴 떨리는 경험이야말로 어린이 독자들이 기다리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고민재는 고민 중」 역시 4학년 주인공이 겪는 사건들을 연작으로 엮은 작품이다. 아이들이 모두 부러워하는 상급생에 의해 돈을 갈취당하는 사건, 또래 친구들과 놀기 선행, 낡은 휴대폰이 생기고 잘못인지 모르고 찍은 사진들, 나이 많은 아빠와 친구의 젊은 아빠의 신경전, 산후조리원에서부터 친구가 같은 반의 이성으로 존재하게 될 때 생기는 사건 등 아기자기한 이야기가 돋보였다. 5편의 이야기가 층위 없이 고른 수준으로 배치되어 안정감 있는 짜임새로 작품에 완결성을 갖게 했다. 무엇보다 독자로 하여금 4학년 민재가 된 듯한 실감 나는 표현이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지나치게 안전한 서사가 주는 위험성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현실의 4학년이 겪을 수 있는 에피소드이지만, 정작 사건이 벌어졌을 때 민재는 주인공이 아니라 관찰자로 밀려난 것 같은 상황이 반복된다. 좀 더 치열하게 파고들어 독자가 이야기의 주인인 민재와 힘께 울고 웃는 경험을 놓치지 않는 게 중요하다.
「비로와 호랑할배」는 도입부터 할아버지가 호랑이라는 사실을 주저하지 않고 밝힌 작가의 기개가 독자로 하여금 이야기에 빠져들게 한다. 점점 호랑이로 변하고 있는 할아버지의 소원은 백두산으로 돌아가는 것. 비로는 할아버지의 소원을 들어주기로 한다. 두타산을 시작으로 해서 호랑이 할아버지와 손자의 숨 막히는 여정이 눈에 보이는 것처럼 펼쳐지는데, 마지막까지 두 주인공의 서로를 향한 애틋한 배려가 각별하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이 작품의 장점은 할아버지가 호랑이라는 파격적인 발상이었다. 처음부터 할아버지가 호랑이가 된 이유를 주절주절 설명했더라면 몰입하기 힘들었을 텐데, 그 사실을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비로를 통해서 독자도 다른 의문을 갖지 않도록 만든다. 또한 두 주인공의 구도도 매력적이다. 점차 변해 가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아이다운 걱정과 호기심으로 스스로의 정체성을 고민하면서도 할아버지를 향한 마음에 집중하려고 하는 비로와, 백두산에 가고자 하는 욕망과 가족들과 헤어져야 하는 슬픔 속에 갈등하는 할아버지가 동등한 지위에서 서사를 이끌어 나간다는 점이다. 다만 이야기가 비로의 시점과 할아버지의 시점 등 지나치게 분화되어 연결이 매끄럽지 않았고, 느닷없이 등장한 설영이 두 주인공의 동등한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생각해 봐야 할 문제라 여겨진다. 최종심에 오른 작품들의 장단점을 놓고 논의한 끝에 「비로와 호랑할배」를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지금껏 보지 못한 색다른 판타지라는 점과 작가가 안전한 지점에 머무르지 않고, 어쩌면 무모해 보일 수도 있는 모험을 감행했다는 점이다. 그 여정을 흥미진진하게 이끈 작가에게 축하와 찬사를 함께 보낸다. 또한 아쉽게 기회를 놓쳤지만, 오롯이 자기만의 세상을 만들어서 보여 준 응모자분들에게도 박수를 보낸다._최나미
수상자: 조은주
장르: 마해송문학상
작품: 비로와 호랑할배
수상 소감:
책보다 가볍고 재미있는 즐길 거리가 넘쳐나는 시대입니다. 그래서 책을 읽고 있는 어린이를 보면 고맙다고 꾸벅, 인사라도 하고 싶지요. 재미없는 사람인 제가 재미있는 동화를 쓰고 싶어 안달하는 이유입니다. 재미있는 글을 쓰는 건 늘 어렵지만 「비로와 호랑할배」는 특히 그랬습니다. 호랑할배가 선택한 험난한 여정을 어린 독자들이 공감해 줄까? 너희들도 분단의 아픔을 알아야 한다고 가르치려 드는 건 아닌가? 그런 의도가 드러나는 글이라면 어린이들이 단박에 알아차리고 외면할 텐데……
수상 소식을 듣고 얼떨떨했습니다. 큰 상을 받게 된 것도 기쁘지만, 마해송문학상 수상작이라는 영광 덕분에 좀 더 많은 어린이가 ‘비로와 호랑할배’의 모험과 여정을 응원해 주리란 기대를 품습니다. 어린이들이 부디 재미있게 읽어 주면 좋겠습니다.
부족함이 많은 이야기에서 장점을 발견해 주시고 수상작으로 뽑아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감사드립니다. 동화 쓰기의 길로 이끌어 주신 선생님들, 동화가 뭔지 가르쳐 주신 선생님들, 모두 감사합니다. 글쓰기의 여정을 함께 하는 글벗들께도 감사합니다. 동생 우상이의 수고와 응원이 없었다면 이 기쁨은 없었을 겁니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기뻐할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이 행운이 한 번 따면 평생 쓰는 운전면허가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 삶이 다하는 날까지 어린이를 사랑하며 한 줄 한 줄 즐겁게 쓰겠습니다.
작가 소개:
제28회 KB 창작동화 공모전에서 장려상을 받았고, 제26회 MBC 창작동화 공모전에 중편 동화가 당선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