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해송문학상 19회
오늘 / 마해송문학상 / 나 혼자 사춘기
우리 창작동화의 첫 길을 연 마해송 선생(1905~1966)의 업적을 기리고 국내 아동문학의 발전을 지원하기 위해 2004년 제정한 ‘마해송문학상’의 제19회 수상작이 아래와 같이 결정되었습니다. 수상자에게 창작 지원금 일천만 원과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 참관 및 유럽문화기행의 특전이 주어지는 이 상의 시상식은 2023년 5월에 열릴 예정입니다.
<심사평>
최근 들어 심사를 할 때마다 느끼는 점이지만 이번 심사에서도 수준 이하 작품이 많지 않은 대신 탁월한 작품도 보기 드물었다. 그만큼 아동문학이 안정기에 들었다는 말이기도 하겠지만 심사를 하는 입장에서는 언제나 신선하고 독보적인 작품을 기대하기 때문에 아쉬운 마음도 컸다. 또한 많은 작품들이 이제는 너무 흔해 진부해진 왕따, 결손 가정, 가난 등을 다루었는데 문제적인 주제에 대해 관심이 가는 건 작가로서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남들이 많이 쓴 얘기를 쓸 때는 그만큼 독창적으로 그려내야 한다는 각오가 있어야 할 텐데 그렇지 못한 작품이 많았다. 진부한 주제를 진부한 방식으로 풀어내고, 머릿속으로만 피상적으로 생각해 쓴 작품은 재미나 감동을 주기 어렵다. 심사위원들의 주목을 받아 예심에서 올라온 작품은 총 9편이었고, 논의를 거친 끝에 본심에 올린 작품은 다음 4편이다. 새롭고 개성 있게, 혹은 새롭지는 않아도 진정성 있게 얘기를 풀어낸 작품들이었다. 각 작품에 대한 평은 다음과 같다.
「투명 고양이 또또」는 깔끔하고 사랑스러운 작품이다. 사료만 먹고 사라지는 고양이의 정체를 추리해 가며 추적하는 과정이 설득력 있게 전개되고, 마무리까지 적절하여 균형감 있는 작품이었다. 아이들 각자의 성격과 심리도 간결하고 명쾌하게 그려져 있다. 무엇보다 마지막 신비로운 여지를 둔 결말이 작품의 격을 높인다. 그러나 이야기나 인물이 평범하고 너무 소품이라는 한계가 있어서 당선작으로 밀기에는 아쉬웠다.
「마침내 해피엔딩」은 최근 동화에서 많이 다루는 조손 가정을 다루고 있지만 당당하고 건강한 자아를 가진 주인공과 개성 있는 할머니를 등장시켜 진부한 소재의 한계를 극복해 냈다. 특히 할머니 자매의 묘사가 이야기의 재미를 높였고, 할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시설을 선택하는 전개가 신선했다. 그러나 그런 파격적인 선택에 이르는 과정에 대한 서술이 부족했고, 마지막의 느닷없는 어머니의 등장은 작위적으로 느껴져 감동을 반감시켰다.
「고타 선생과 우주」는 매우 재미있게 잘 써낸 작품이다. 우주가 부모한테 자신의 진짜 마음을 말하지 못한 채 마음에 없는 선물을 받게 되고, 그 선물이 동네에서 가장 고리타분한 ‘고타’ 선생을 강아지로 만들어 버려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흡인력 있게 전개된다. 그러나 결말 부분이 앞의 구체적이고 흥미로운 전개에 비해 추상적이고, 힘없이 끝나서 급작스러웠다. 마지막까지 수상작으로 논의가 되었던 작품인 만큼 결말 부분만 잘 보완한다면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매력적인 작품이 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나 혼자 사춘기」는 사춘기에 들어선 한 소년의 마음이 성장하는 과정을 ‘손편지’라는 실마리 하나로 능숙하고 흥미롭게 그려낸 수작이다. 어느 날 친하지도 않은 여학생한테서 손편지가 온 사건 하나로 이 작가는 현실과 환상을 분방하게 넘나들며 사춘기 소년의 심리와 감정들을 유머러스하면서도 깊이 있게 그려냈다. 평범한 일상에 판타지가 들어가는 건 이즈음 동화의 대세라 어떤 면에서 오히려 식상해 보일 수도 있는데, 이 작품은 만화적이고 신선한 캐릭터, 현실적 실감이 나는 판타지와 상큼한 전개로 그 점을 거뜬히 극복했다. 지금 아이들의 눈높이에도 딱 맞는 작품이 아닐까 한다. 몸이 작아지고, 천사와 신이 등장하는 커다란 모험과 사건 때문에 정작 주인공 소년의 이성 친구에 대한 심리 변화라는 설정 자체가 독자들에게 잊힐 수 있다는 지적이 있긴 했으나 워낙 결이 다른 여러 요소들을 이만큼 능란하게 섞어내 멋진 작품으로 만들어 내는 능력은 흔한 것이 아니라고 여겨진다. 진지한 주제로 감동을 자아내는 대작은 아닐지라도, 현실적이고 다양한 요소를 기발한 상상력과 신선한 유머 감각으로 인상적인 장편을 만들어 낸 작가의 기량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어떤 글감을 잡더라도 멋지게 소화해 낼 능력을 갖춘 작가로 보여 당선작으로 미는 마음이 든든하다. 다른 강력한 유혹자들이 넘치는 세상에서, 어린 독자들이 책의 세계를 떠나지 않게 매력적인 작품을 많이 써 주기를 기대하며 축하를 보낸다._이경혜
점차 새로운 쓰기와 아이디어가 유입되는 경향이 있고, 판타지 방식의 작품이 여전히 많았다. 아동의 결핍 상황과 문제 현실 역시 단골 소재였는데, 교실이나 아동의 관계 현실을 피상적으로 설정한 작품들이 많아서 우려가 되었다. 동화가 반드시 교훈적일 필요는 없으나 아동이 주 독자인 만큼 미칠 영향을 무시할 수는 없다는 점에서 저작자는 상황 설정에 신중해야만 한다.
「투명 고양이 또또」는 친구가 반려동물을 자랑하는 게 부러워서 있지도 않은 고양이 얘기를 꺼낸 주인공이 어설픈 실마리를 근거로 진짜 고양이를 찾아다니는 특이한 작품이다. 허언에 대한 책임을 지는 태도일 수도 있고, 우연한 발언을 계기로 주변의 삶을 돌아보는 성장 과정으로 이해할 수도 있는 부분이 있다. 다만 구성이 다소 빈약하고 아동이 읽기에는 주제가 선명하지 않은 게 아쉬움이었다.
「마침내 해피엔딩」은 소재나 서사 전개 방식이 고답적이라 전형적인 인상이 강하다. 성실한 전개와 쌍둥이 할머니의 개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는데, 주인공 소율이의 입장을 보여주기 위해 설정된 친구들의 행위가 과하다는 언급 또한 있었다. 여자아이들 관계를 보여주는 데 집단으로 가해를 하는 장면이 필수적이어야 하는지 고려해 봐야 한다. 다양한 가족 형태를 보여준 점도 긍정적이다. 그러나 주인공이 스스로 시설에 가기를 결정하는 사실에 개연성이 더 필요해 보이고, 오타가 자주 보이는 점, 전체적으로 진부하다는 점이 공론이었다.
「고타 선생과 우주」는 소재가 돋보이고 서사 전개가 만화 장면처럼 연상되는 게 장점인 작품이다. 강아지를 좋아하는 남자아이와 고지식한 성인 남성을 연결한 점이나 축구공에 얻어맞은 고타 선생을 강아지로 변신시킨 발상이 참신하고 가독성이 있다. 이야기가 너무 성급하게 끝나는 인상이라 보완이 필요하고, 고타 선생이 강아지로 바뀌었다가 원래 모습을 찾는 원인이 제시되지 않아 의문이 남는다.
「나 혼자 사춘기」는 첫 장면부터 군더더기가 없고 이야기가 깔끔하게 진행되는 작품이다. 부모를 두고 잘못된 거래를 했다가 취소하는 과정에서 키가 줄어든 주인공이 겪는 여러 에피소드는 내용이 재미있고, 작아진 아들을 이해하고 도와주려는 부모의 캐릭터가 만화적이면서도 생생하여 저작자의 내공에 기대를 걸고 싶어졌다. 주인공을 작게 만들어 버린 장본인들이 학습이 부족한 천사들인 점도, 천사도 잘못하면 징계를 받는다는 점도 유쾌하다. 허나, 주인공 현우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신이 답을 준다는 식의 설정은 너무 쉽게 결론을 내린 게 아닌가 싶다. 그럼에도 전체적으로 안정적인 구성에 인물을 입체화하는 감각이 살아 있는 작품이라 당선작으로 결정하였다._황선미
가끔 궁금하다. 시간이 더 많이 흘러서 우리의 손발을 묶었던 지난 2년을 사람들은 어떻게 평가하게 될까? 물론 지금도 코로나 시국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어떤 사람들은 지옥 같았다고 할지도 모르고 또 어떤 사람들은 세상 조용해서 좋았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공평하게 주어진 시간이었지만 세상 사람들 모두 같은 모습으로 살지는 않았을 것이다. 받아들이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너무나 당연하게 여겼던 학교에 가지 못하고, 마스크로 가린 친구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고, 하루 종일 같이 있고 싶은 친구가 없다는 게 좋지 않은 일이라는 것은, 학교에서 친구들과 어울렸던 경험을 누린 사람들의 판단일 뿐이다. 그 상황에 놓인 아이들은, 그들이 있는 자리에서 누구도 겪어 보지 못했던 경험을 새롭게 꾸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새로운 경험의 파장은 소리 없이 퍼져나가고 있다. 그것을 확인하고 소통의 물꼬를 트는 것 역시 작가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특별했던 지난 두 해에 비해 SF나 역사 이야기의 편수가 눈에 띄게 줄었고 판타지와 생활동화가 거의 대부분이었다. 안타깝게도 판타지는 기존 이야기의 변주처럼 느껴지거나 의도의 모호함과 개연성이 부재한 작품들이 많았다.
아이들의 현실을 그린 이야기도 다르지 않았다. 여자 친구들 사이에서 당연한 듯 그려진 왕따 문제가, 여자아이가 주인공으로 나온 작품에는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데 마치 기정사실화하는 것처럼 그려져 불편했다. 왕따 문제가 있다면 독자가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어야 할 것이고, 관념이 아닌 현실적으로 그려졌어야 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지금 교실에서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 작가의 머릿속에서 나온, 쉬운 갈등의 매개체로 사용한 것 같아 응모작 몇 편에서 비슷한 사건을 확인할 때마다 씁쓸함을 감추기 힘들었다. 이야기를 구성하고 흐름을 통제해야 하는 작가의 의도가 넘칠 때 벌어질 수 있는 일이기에 더욱 경계해야 할 부분이라 생각한다.
「투명 고양이 또또」는 주인공 우주네 마당에서 사료만 먹고 사라지는 고양이의 정체를 밝히려는 이야기다. 친구들 사이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일을 무리하지 않고 건강하게 표현한 점이 돋보였고, 투명 고양이의 정체가 마지막까지 밝혀지지 않은 점도 흥미로웠다. 그러나 고양이 흔적을 쫓는 이야기가 특별하게 새롭지 않을뿐더러 인물의 캐릭터 역시 평이하다. 예를 들어 아빠보다 힘센 엄마는 동화에서 이미 흔하게 활용된다. 서사의 구체적인 동기를 갖지 않고 설정으로만 활용된 타이틀은 이야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마침내 해피엔딩」은 문장력이 돋보이고 여타의 작품에서 볼 수 없는 그룹홈이라는 설정이 등장한 점도 특이했다. 개성 넘치는 쌍둥이 할머니의 캐릭터와 생전 장례식 과정도 좋았으나, 학교에서 왕따 당하는 것에 굴하지 않는 소율이 이야기와 할머니와의 관계에서 유독 감상적으로 그려진 이야기가 따로 노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룹홈이라는 특이한 환경 또한 작가가 제대로 활용하지 못해 아쉬웠다. 전반적으로 현재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 점 또한 작가가 고민할 문제다. 특히 엄마가 찾아오는 마지막 설정에서는 생각이 많아진다. 작가가 의도한 ‘마침내 해피엔딩’이 소율이가 그룹홈에서 씩씩하게 잘 지내는 것인지, 결국 기대하지 않았던 엄마가 찾아와야 비로소 완성되는 것인지.
「고타 선생과 우주」는 강아지 사육사가 꿈인 우주와 깐깐하기로 소문난 고타 선생 사이에서 벌어지는 문제를 재치 있게 그려냈다. 일단 등장인물의 캐릭터가 탁월하다. 자기 욕망이 분명한 우주, 사람이었을 때나 강아지가 되었을 때나 한결같은 고타 선생, 자기 방식대로 아들을 사랑하는 부모의 캐릭터가 자칫 뻔해질 수 있는 이야기에서 예상치 못한 재미를 발현한다. 고타 선생의 집안에서만 벌어지는 사건인데도 지루할 틈 없이 몰아가는 구성력 또한 뛰어나다. 하지만 고타 선생이 사람으로 되돌아오는 과정에서 보인 우주의 행동과 그 의미가 모호해서 이해하기 어려웠다. 장면 구성력이나 눈에 보이는 것처럼 선명하게 그려낸 작가의 필력에 높은 점수가 주어졌으나, 한 권의 이야기로 가능한 분량인가의 문제가 가장 큰 쟁점이 되었다.
「나 혼자 사춘기」는 경쾌하고 발랄한 현우의 성장담이다. 1인칭 시점의 현우 생각이 기발하고 재미있으며 겪는 일들도 유쾌하다. 특히 코로나 시국에 줌으로 수업하는 아이들의 일상을 잘 그려냈다. 천사들의 실수로 갑자기 15센티미터로 작아진 현우의 일상을 받아들이는 엄마 아빠의 역할 또한 인상적이다. 사춘기를 겪는 천사나 인간이 할 수 있는 도움만 줄 수 있는 신 등 전복적인 사고의 인물들이 이야기를 다채롭게 만든 것은 사실이나 정하나의 편지, 천사, 신, 고호수 등 일관성 없이 등장한 개체들로 인해 이야기가 산만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야기의 처음과 끝을 관통하는 정하나의 손편지 또한 중간에 끼어든 에피소드들로 존재감이 고르지 않다 보니 편지의 의미가 잘 살지 않는다. 자칫 가볍게 소비될 수 있는 다양한 설정을 유쾌함과 진중함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 속도감을 적절하게 유지함으로 서사의 밀도를 일관성 있게 밀어붙였다. 다양한 관점으로 오랜 토론 끝에 「나 혼자 사춘기」를 당선작으로 정했다. 작가의 필력과 창의력이 더해진 유쾌하고 건강함이 심사평을 쓰는 내내 오롯이 남아 즐거웠다. 당선자에게는 축하의 말과 더불어 또 다른 시작이라는 문학적 부담도 함께 건넨다. 또한 이번에 선정되지 못한 작가들에게도 위로와 응원을 전한다. 지치지 말고 다시 한 번 정진하시길, 그래서 작품으로 기억되는 좋은 작가로 만날 수 있기를._최나미
수상자: 오늘
장르: 마해송문학상
작품: 나 혼자 사춘기
수상 소감:
친구에게
친구야, 너는 알지?
올해 가을에 내가 우체국 갈 때 조심스럽게 걸었다는 걸
마음 담은 이야기를 부치러 가는 길이었으니까
친구야, 너도 알지?
오늘은 더 이상 가을이 아니라는 걸
그런데 이건 모를 거야
오늘 아침에 나는 꿈꾸던 전화를 받았어
나는 만만하지 않은 어른이 되고 싶은데 앞으로도 비틀거리겠지
그래도 친구 너에게 꾸준히 편지 쓰면서 따뜻한 곳으로 걸어가 볼게
친구야, 내가 작아져도 너만은 내 친구로 옆에 있어 줘
작가 소개:
2021년 장편 동화 『두근두근 첫 비밀친구』로 제3회 목일신아동문학상을, 2022년 『나 혼자 사춘기』로 제19회 마해송문학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