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해송문학상 1회 - 2005
유영소 / 겨울 해바라기
우리 창작 동화의 첫 길을 연 고(故) 마해송 선생(1905~1966)의 업적을 기리고 국내 아동 문학의 발전을 지원하기 위해 2004년 제정된 “마해송문학상” 공모를 2004년 11월 30일 마감하였습니다.
마해송문학상 운영위원회는 예심 위원 3인과 본심 위원 3인을 위촉하였습니다. 예심 위원들은 심사 요강에 따라 응모된 작품들을 검토하고, 12월 21일 오후 2시에 열린 예심 결심 회의를 통해 7편의 장편 동화를 예심 통과작으로 결정하였습니다. 예심 결과는 2005년 1월 4일 오후 12시에 열린 본심 1차 회의에서 본심 위원들에게 보고되었습니다.
본심 위원들은 개별 심사 기간을 거쳐, 1월 19일 오전 11시에 본심 결심 회의를 가졌습니다. 회의 결과 유영소의 『겨울 해바라기』가 입양아 문제, 청소년 성(性) 문제와 같이 시류에 민감한 소재를 통속적이지 않으면서도 감각적으로 풀어나가 실험 정신과 진지한 문제의식이 돋보이는 작품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하였습니다. 이에 본 위원회는 이 작품을 올해의 수상작으로 결정하였습니다.
예심을 거쳐 올라온 7편의 작품 중 집중적으로 논의의 대상이 된 것은 4편, 김현화의 「동시 쓰는 오일구씨」, 홍종의의 「수진이 날진이 해동청 보라매」, 이성숙의 「화성에서 온 미루」, 유영소의 「겨울 해바라기」였다. 4편이 각각 뚜렷하게 다른 소재와 문체를 보여주었고 장점과 단점들도 그만큼 개성적으로 드러나 있어서, 열띤 토론으로 이어진 치열한 심사였다.
「동시 쓰는 오일구씨」는 빵집을 하는 엄마와 딸 순미, 가벼운 정신지체인 삼촌 오일구씨와 단둘이 사는 조카 공래, 이 네 사람 사이의 갈등과 화해를 그리고 있다. 장애인인 오일구씨를 우리가 도와주어야 할 가엾고 딱한 처지의 사람이 아니라 조금 부족하지만 따뜻하고 반듯한 심성을 가진 독립적인 한 인간으로 생생하게 그려낸 것이 이 작품의 가장 훌륭한 미덕이었다. 오일구라는 캐릭터는 이 작가가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과 치밀한 관찰력을 갖고 있음을 보여주었고, 오일구씨가 일상에서 느낀 바를 재치 있게 풀어낸 동시들은 적재적소에서 이야기의 활력소 역할을 다부지게 하고 있었다. 이 작가는 원래 시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동시는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이런 장점들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이야기의 밀도가 떨어진다는 약점을 안고 있었다. 장편을 끌고 갈 만한 서사적 요소가 미약하다는 점 외에도 비슷한 에피소드들이 너무 상세하게 되풀이된다는 점이 이야기의 구조를 약화시키고 독자의 집중력을 흩뜨려놓았다. 순미와 공래의 시점을 번갈아 넘나드는 서술 태도는 혼란스러웠고, 티격태격하던 두 아이가 약간 가까워지는 것으로만 그치는 결말도 아쉬운 점이었다. 흔히 일컬어지는 두 ‘결손 가정’이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데, 결말에서 살짝 암시하고 있지만, 엄마 아빠 아이들로 이루어진 ‘온전한’ 가정만이 아니라 다른 형태로 사람들이 서로 돕고 사는 대체 가정도 얼마든 가능하지 않겠는가 하는 제안을 좀더 힘 있게 제시했으면 하는 바람을 갖게 한다.
「수진이 날진이 해동청 보라매」는 7백 년의 시공간을 넘나드는 장쾌한 판타지이다. 동물 병원을 운영하면서 야생 동물 보호에 힘쓰는 아버지와 아들 나래가 부상당한 매 한 마리를 발견하고, 나래가 그 매에 이끌려 고려 시대에 갔다 오는 이야기인 전반부는 상당한 속도감과 긴장감 속에서 흥미롭게 읽힌다. 소심하고 겁 많은 나래가 매의 도움으로 자기를 괴롭히는 친구에게 복수하는 에피소드도 통쾌한 재미를 준다. 후반부로 들어가 7백 년 전 고려 시대에 원나라 황제에게 가장 귀한 공물로 바쳤다는 해동청 보라매인 붕이가 활약하는 대목은 이 작가가 매에 대해서 철저히 조사하고 공부했음을 보여주는데, 그러나 바로 그 점이 이야기의 발목을 붙잡는 약점으로 작용한다. 시공간을 뛰어넘는 판타지적 장치나, 나래가 겪는 모든 사건들이 매에 대한 설명에 압도당해 희미해지는 것이다. 나래는 왜 거기까지 갔다 와야 했고, 붕이의 아빠 매는 왜 자기 목숨을 던지면서까지 갓난아기였던 나래를 구해야 했을까? 현실과 환상에서 벌어지는 이 일련의 사건들 사이에는 장력이 없다. 스케일 있는 서사 판타지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은 닫혀버린 채 시공간 이동과 매 사냥 묘사에만 무게 중심이 쏠린 점이 안타깝다. 나래가 시치미에 대한 설명을 듣는 장면이나 환상 세계로 들어가는 과정에서 도무지 이해할 수 없고, 어리둥절하고, 놀라웠다고 되풀이 강조하는 서술 태도도 독자의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화성에서 온 미루」는 경쾌하고 발랄한 상상력을 보여주는 판타지이다. 지구에 불시착한 미루가 인간을 관찰하기 위해 한 가족의 삶 속으로 파고들어간다는 설정은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지만, 미루로 인해 폭로되는 그 가족의 치부, 나아가 일류만을 고집하는 아버지에 의해 이끌어지던 가족 질서의 붕괴 과정은 한국 동화에서는 보기 드문 블랙 코미디적 면모를 보여준다. 미루가 자신의 상관과 결탁해 자신을 직장에서 쫓아내려 한다고 믿으면서 그 음모를 파헤치기 위해 미루를 다그치는 아버지와 미루의 우주선으로 일확천금을 손에 넣으려는 삼촌은 그 비극적인 우스꽝스러움으로 깊은 인상을 남긴다. 그러나 그렇게 돌출된 두 캐릭터가 다른 캐릭터들이나 이야기의 다른 요소와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는 점이 아쉽다.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미루와 작은아들 근대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위축되어 보인다는 점도 역시 그렇다.
결국 「겨울 해바라기」가 당선작으로 결정되었다. 이 작품의 주요 소재가 되고 있는 입양아 문제는 근래 한국 동화계의 유행이다시피 한, 그다지 새로울 것 없는 이야깃거리이고, 청소년의 성문제는 영화와 만화 등의 여타 매체에서 자주 다루는, 시류에 민감한 것이다. 자칫하면 상투성 혹은 상업성이라는 함정에 빠져들 수도 있는 이 두 소재를, 그러나 이 작가는 통속에 빠지지 않으면서도 감각적으로 끌고 가는 능력을 보여준다. 주인공이면서 관찰자인 동준이의 일인칭 시점 서술, 요즘 아이들의 입말 습관을 과감히 차용한 구어체 문장은 독자를 화자의 섬세한 심리 속으로 깊숙이 안내한다. 노르웨이로 입양된 한국 아이 철현이가 자신을 낳은 부모를 찾아 동준이의 집에 와 있는 동안 동준이의 우상이던 고등학생 사촌형이 여자 친구에게 임신을 시키고 가출하는 사건이 벌어진다는 설정은 작위적으로 비칠 수 있지만, 입양 문제 뒤에 도사리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인 성문제를 함께 다루기 위한 장치로서 적절해 보인다. 무엇보다도 철현이가 친부모를 만난다든지 사촌형의 문제가 어른들의 선처로 해결된다든지 하는 감동의 결말로 끌고 가지 않은 점이 이 작품의 새로움이다. 세상의 알 수 없는 일들에 대해 고민하고, 질문하고, 혼란스러워하고, 이해하려 애쓰는 동준이의 마음의 결을 치밀하게 따라가는 과정 자체가 우리가 그런 문제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아이들과 함께해야 하지 않는가 하는 시사를 안겨주며, 계몽적이고 따뜻한 해결에 익숙해져 있는 우리의 동화 독서법을 긴장시킨다. 몇 군데에서 드러나는 불안정한 문장, 관념성, 작위성이라는 약점에도 불구하고, 그 도전 정신과 실험 정신, 진지한 문제의식은 이 작품을 당선작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당선자에게 축하를, 모든 응모자에게 감사를 드린다.
이번 제1회 ‘마해송문학상’ 응모작들의 수준은 대체로 높은 편이었다. 특히 다양한 소재를 개발하고 개성적인 인물을 창조하려는 노력이 돋보였다. 문장도 탄탄하고 기본적인 형상력도 좋은 편이었다. 우리 동화 문학이 발전의 궤도에 올라서 있음을 느낄 수 있는 기회였다.
하지만 동화 문학의 본질과 특성에 대한 이해가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유로는 이야기성의 부족과, 성인 소설과 동화의 경계가 모호한 점이 지적되었다. 동화는 기본적으로 이야기 문학이며, 그 주 독자는 아동임을 새삼 짚어볼 필요가 있겠다.
이런 조건을 통과한, 준척은 족히 될 법한 작품들이 줄줄이 눈에 띄어 심사가 즐거웠다.
「수진이 날진이 해동청 보라매」는 전통적 소재를 현대적 판타지 기법으로 시종 흥미진진하게 다루어 주목을 끌었다. 「화성에서 온 미루」도 독특한 소재와 주제를 뛰어난 입담으로 끌고 가는 게 눈에 띄었다. 「동시 쓰는 오일구씨」는 그 캐릭터의 특이함과 이야기의 순수함이 흥미로웠다. 「겨울 해바라기」는 다양한 개성과 소재, 상투성을 벗어난 이야기 전개, 등장인물의 개성을 살려 자연스럽게 엮어가는 솜씨가 만만치 않았다. 「짜오를 찾아서」는 참신한 상상력으로 현실과 판타지의 결합을 시도하는 점을 높이 살 만했다.
이들은 모두 발굴한 소재를 깊이 있게 연구하거나 인물을 생생하게 조각해내어 일정한 성취가 있어 본심에서 경합하게 하였다.
비록 본심에는 올리지 않았으나 그 역량이 만만치 않은 예비 작가들도 꽤 있었다. 「천사 게임」 「홍의장군 오시는 날」 「아버지와 국화」 「하늘 땅 별 땅」 등과 같은 작품이 바로 그러한데, 앞에서 지적한 점들을 극복해낸다면 그 앞날을 기대할 만했다.
모두에게 해당되는 사항으로 제목에 관한 문제점들이 거론되었다. 제목이 내용의 핵을 꿰차지 못하거나, 장편의 무게감을 지탱하지 못하고, 더러는 너무 식상했다. 제목은 기성 작가나 출판사에서도 마지막까지 고민하는 문제이긴 하지만, 신인들도 보다 신중한 고민을 당부하고 싶다. 작품이 신생아라면 제목은 그 이름인데, 함부로 지어서도 가벼이 여겨서도 안 될 것이다.
지난 시대 카프 작단의 활약 이후 줄곧 우리의 동화 문학은 현실적 경향에 지나치게 경도되어 동화 본연의 상상력과 창의력을 만개시키지 못한 감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마해송문학상’의 제정은 우리 동화 문학의 균형적 발전을 위한 계기가 되리라 생각한다. 그것을 반갑고 기쁘게 바라보며, 본 문학상이 아동 문학사에 빛나는 등대로 자리매김해주었으면 하는 소망이 예심 위원의 공통된 바람이었다.
수상자: 유영소
작품: 겨울 해바라기
수상 소감:
내게 노란색은 불온하다. 그것이 해바라기 노랑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내가 여기 있노라고 말하는 해바라기는 언제나 숨을 몰아쉰다. 폭포처럼 쏟아지는 ‘살아 있음’의 노란 폭력. 작년 여름, 뜨겁던 한강변 해바라기 밭에서 나는 잠깐 길을 잃었더랬다.
전화 저편으로 수상 소식을 들었을 때도 순간 아득해진 마음에 말을 놓쳐 전해주신 분을 당황케 했다. 아직은 이리 큰 상을 받을 준비가 안 되었음이 분명하고, 무엇보다 ‘마해송문학상’의 첫 싹으로 서둘러짐이 마해송 선생님께 누가 되지는 않을지 염려되었는데, 그러다 마음을 고쳐먹은 것이, 이 상은 내게 주시는 것이 아니라 동화를 향한 모든 작가들의 해바라기 마음에 주시는 것이라 생각하면서부터이다.
그래서 감히 말씀드리기를 함께 경합한 작품을 쓰신 여러 작가들은 물론이고, 마해송 선생님 이후 우리 아동 문학을 일궈오신 존경하는 작가 선생님들 그리고 아직은 이름을 내지 못한 동화 작가 지망생들까지도 이 상을 나와 함께 받는다고 믿는다.
『겨울 해바라기』는 나의 첫 장편으로, 석사 논문을 마치고 나서 구상했던 것을 가을께야 쓰기 시작한 작품이다. 아동 문학에서 어린이를 보는 눈은 어린이 문학을 문학이게 하는 발판이자, 현실과 시대를 다층적으로 읽어내는 시선이 된다. 이 작품에서 나는 미래를 준비하는 시간을 살아가거나 어른 자신의 내면을 투영하는 거울로서의 어린이가 아니라 그 자체로 존재하고 스스로 말할 수 있는 어린이, 자라고 있음으로 살아 있음을 증거하고 그 불안하고 위태로운 성장이 지니는 건강함으로 구체화되는 어린이를 바라보고 싶었다.
그러나 아마도 나의 승한 욕심이나 의도가 작품을 튼실히 여물게 하지는 못한 듯하고, 다만 해바라기의 에너지를 품은 아이들의 쉼 없는 움직임만큼은 거칠게나마 쳐다본 게 아닐까 싶다. 그러므로 나의 바라보기는 계속될 것이다. 바라보기가 좀더 깊어지고 그리하여 보이지 않는 것까지 읽게 되고 마침내 저희들끼리 조응하는 언어로 빛이 나는 동화를 쓸 때까지 계속 노력하겠다. 그 약속에 믿음을 실어주신 심사 위원 선생님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린다.
존경하는 부모님과 사랑하는 가족들, 친구들, 함께 동화를 쓰고 공부하는 글동무들 그리고 그동안 내게 가르침 주신 여러 선생님들께도 특별한 인사를 드린다. 무엇보다 내게 목마르지 않는 사랑의 비밀을 알게 하실 주님께 영광을 돌린다.
작가 소개:
세상을 구하는 슈퍼히어로는 될 수 없지만 친구는 될 수 있다고, 어느 누군가에게는 좋은 친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특히 어린이들에게 더 좋은 친구가 되고 싶어 날마다 동화를 쓴다. 꼬부랑 할머니가 되어서도 그러고 싶다. 『겨울 해바라기』로 제1회 마해송문학상을, 『꼬부랑 할머니는 어디로 갔을까?』로 제4회 정채봉문학상을 받았다. 그 외에 『단짝이 아니어도 좋아』 『불가사리를 기억해』 『곰의 딸 달이』 『알파벳 벌레가 스멀스멀』 『행복빌라 미녀 4총사』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