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회. 당신은 어떤 사람이고 싶습니까?

권김현영(여성학자)

“새로운 매체에는 새로운 언어가 필요하다. 그것이 이 특수한 매체 환경에서 생존하는 방식, 우리에게 요청되는 새로운 문해력이다”(「바비의 분위기」). 주인공 유미가 논문에 간절하게 쓰길 원한 문장이다. 이렇게나 야심만만한 문장이 석사학위청구논문에서 허용될 리 없지만, 중요한 것은 학위가 아니라 이 문장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일 것. 이 소설집에서 여성들은 ‘높은 확률’로 폭력의 피해자가 된다.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만연하다는 것쯤은 모두 알고 있다. 여성에 대한 폭력은 그 자체로 사회문화적 ‘구조’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것이 박민정 작가가 동시대 여성들이 겪는 문제를 조망할 수 있는 문해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이에 대해 새로운 언어로 말하고 싶어 한 이유일 것이다.

작가는 이 구조에 대해 말할 방법을 찾아내고자 한다. 새로운 매체의 등장은 인간 주체성의 형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어놓았고, 디지털 기술은 여성에 대한 착취를 이제 인격 기반이 아니라 이미지 기반으로 가능하게 했다. 기술 매개 시대 이미지 기반 성착취 문제는 여자를 인간으로 대하지 않아도 되는 가해자의 자기정당화 서사를 완성시킨다. 이쯤 되면 인간의 종말을 이야기해도 이상하지 않다. 다만 이 소설집에는 인간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린 경험 이후 다시는 그전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된 여자들이 나온다. 시체공시소 사진의 유래를 설명하는 교수는 이 사진의 배경을 알게 된 일이 ‘자신의 삶의 질을 다섯 배쯤 떨어뜨렸다’고 말하는 사람이다(「모르그 디오라마」). ‘어떤 종류의 기억은 사람을 때로 망가뜨리지만’(「신세이다이 가옥」), 후유증으로 약을 챙겨 먹는다고 해서 사람이 망가지는 건 아니다. 어떤 인간들은 전혀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어떤 것들은 영원히 인간을 변화시킨다.

나는 이 소설집을 읽고 이 두 문장을 모순 없이 이어주는 ‘어떤’이라는 관형사의 가능성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작가가 묻고자 하는 것은 이것이 아니었을까. 당신은 어떤 사람이고 싶습니까? 이 세계의 폭력에 연루된 자로서의 책임을 잊지 않기 위해서, 당신은 어떤 것이 당신을 영원히 변화시키는 것에 기꺼이 자신을 던지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그 모든 것을 어쩔 수 없음으로 변명하는 사람입니까?라고.


『바비의 분위기』 도서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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