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회. 인간이 사라진 자리의 연극

카뮈의 『시지프의 신화』는 부조리(absurd: ① 말도 안 되는 ② 터무니없는 ③ 황당한) 를 논할 때 가장 많이 인용되는 책이다. 그 책에서 카뮈는 아무런 희망도 없이 다시 아래로 굴러떨어질 바위를 산꼭대기로 끊임없이 끌어 올려야만 하는 시지프의 형벌을 부조리라는 용어로 설명했다. 시지프의 형벌에는 원인도 결말(구원)도 없다. 사르트르의『존재와 무』 역시 “실존은 이유도 원인도 필연성도 없는 부조리한 것이다”라고 선언했다. 두 사람은 인간은 목적 없는 존재며, 자신을 둘러싼 환경과 늘 부조화할 수밖에 없는 데다가, 누구와도 관계를 맺을 수 없는 단독자라는 인식을 함께했다. 삶의 동기를 찾는 일의 어려움, 환경과의 부조화, 타인과의 소통 불가능성은 역설적으로 무한한 자유를 가진 ‘나에 대한 실감實感’을 부추긴다. 사르트르의 유명한 명제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바로 그런 세계 인식에서 나왔다.
부조리라는 현대적 개념을 창안한 카뮈나, 세계 속에 내팽개쳐진 ‘본질 없는 실존’을 발견한 사르트르는 서로 경쟁의식을 갖고 몇 편씩의 희곡을 썼다. 그들의 작품에는 부조리한 상황과 실존적인 자유 속에서 무력함을 느끼는 동시에, 그 속에서 실존을 확보하려는 영웅적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두 사람은 부조리 인식을 바탕으로 작품을 썼지만, 자신들이 발견한 의식에 걸맞은 연극 형식을 만들지는 못했다.

삶의 무의미성, 모든 이상의 끊임없는 가치 저하, 의지의 원초적인 순수성에 필연적으로 소외당하는 것 등의 비슷한 감정은 장 지로두, 아누이, 살라크루, 사르트르, 카뮈 같은 극 작가들의 작품에도 많이 나타난다. 그러나 이런 작가들과 부조리극 작가들은 근본적인 관 점에서 차이가 있다. 즉 이런 작가들은 인간 존재의 불합리함에 대한 느낌을 매우 명확하 고 논리적으로 구성된 논증의 형태로 표현한다. 이와는 달리 부조리극에서는 인간존재의 무의미성, 이성적 직관형식의 불충분함에 대한 의식을 합리적 근거나 논증적 사고를 의식 적으로 포기하면서 표현하려는 노력이 눈에 띈다. 사르트르나 카뮈는 옛 형식으로 새로운 내용을 표현하고 있으나 부조리극 작가들은 한 발자국 더 나아간다. 그들은 전하려는 근 본경험과 표현형식을 조화시키려고 한다. (철학적 관점이 아니라) 예술적 관점에서 볼 때 사르트르와 카뮈의 철학적 인식들은 그들이 쓴 드라마에서보다 부조리극에서 더 타당하게 표현되고 있다.(마틴 에슬린, 『부조리극』, 김미혜 옮김, 한길사, 2005, 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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