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회. 행위로의 이행: ‘치정’이었는데 ‘정치’가 됐네

이러한 사정으로 사르트르는 1943~1965년까지 10여 편의 극작품을 무대에 올린 분주한 극작가였음에도 불구하고, 일관된 연극론이나 희곡론을 남기지는 못했다. 사르트르 연극에 관한 본격적인 비평서가 없는 것도, 어쩌면 사르트르 자신이 연극을 푸대접해서였는지도 모른다. 사르트르와 연극의 관계는 그의 자서전 『말』(1964)에 간간이 피력되어 있으나, 미셸 콩타와 미셸 라발카가 연극에 관한 사르트르의 글을 모으고 주석을 단 『상황극』(영남대학교출판부, 2008)에 더 인상 깊은 그의 발언이 있다. 사르트르는 『더러운 손』을 놓고 대담을 하는 중에 “극작품은, 예를 들어 소설보다는, 거의 작가의 것이 아니”며, 극작품은 “작가가 예상하지도 못했으며 원하지도 않았던 객관적인 현실성을 꽤 자주 만들어내지요”(p.437)라고 말한다. 소설이 그것을 구상한 사람의 것이라면, 확실히 연극은 그것을 수용하는 사람의 것에 훨씬 더 가깝다. 사르트르는 창작자가 관객 앞에서 사물이 되어야 하는 극작가의 소외 현상을 혐오하거나 두려워했던 것이다. 특히 정치 드라마였던 『더러운 손』은 당시의 정치 환경과 관객 각자의 정치적 입장이 작가의 작의(作意)보다 더욱 중요했다.

『더러운 손』(서문당,1996)은 두 차례(1951, 1978)에 걸쳐 영화화되기도 했던 만큼 대중적 흡인력이 상당한 작품이다. 또한 이 작품은 전 세계의 좌우 진영과 언론으로부터 ‘반공산주의 연극’으로 찬사와 비난을 동시에 받았다. 도저히 연극을 공연할 상황이 아니었던 1951년의 한국, 이 작품이 임시 수도 부산에서 공연된 이유도 거기에 있다. 이 민감한 정치극이 일으킨 소동과 비교할 수 있는 작품으로는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1945)이 유일한데, 두 작품의 작가는 ‘당신은 어느 편이냐?’라는 질문에 여러 차례 해명하지 않으면 안 되는 난처한 상황을 맞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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