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회. ‘왕관’이 아니라 ‘머릿속’입니다 – 아서 밀러, 『세일즈맨의 죽음』

1949년에 초연된 『세일즈맨의 죽음』(민음사, 2009)은 ‘현대에 비극이 가능한가?’라는 되풀이 된 질문에 극작가 아서 밀러가 나름 대답을 하고자 했던 작품이다. 그는 왕성한 극작을 하면서, 자신은 물론이고 (미국) 연극에 관한 중요한 에세이를 썼는데, 「비극과 인간」(1949)과 「사회극이란 무엇인가」(1955)는 그의 작품이나 연극관을 검토할 때 늘 거론되고는 한다. 아서 밀러의 연극 에세이집 『연극론 12장』(문학사상사, 1978)에 두 글이 실려 있다.
많은 사람들이 ‘현대에는 비극이 가능하지 않다’고 믿거나, 가능하더라도 ‘시시한 비극일 뿐’이라고 여기는 가장 큰 이유는 현대인을 지배하고 있는 상대주의와 회의론 때문이다. 다시 말해 비극은 극단적인 확신의 산물이며, 확신 때문에 생겨난 오만과 투쟁이 비극을 부른다. 하므로 조금 과장해서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라는 상대주의나 실재에 대한 의심 속에서는 비극이 생겨날 리 없다. 현대에 비극이 가능하지 않는 다음의 이유는 현대는 너도 나도 평등한 민주주의 사회이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시학』은 비극을 왕이거나 왕에 비할 만한 사람처럼 대단히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에게만 어울리는 장르라고 선포했다.
밀러의 두 에세이는 현대의 비극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상대주의와 회의주의에 대해서는 논박하고 있지 않지만, 아리토텔레스가 만든 선입견에 대해서는 충분히 논박하고 있다. 그는 “평민도 왕과 마찬가지로 고도의 의미에서의 비극의 주인이 될 수 있다”(p.17)는 흥미로운 증빙으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꼽는다. 밀러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원래 왕족에 의해서 시작된 것이지만 현재에 와서는 그와 유사한 심리 상태면 누구에게나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p.18).
고대 비극에 나오는 왕족(영웅)이나 현대의 소시민이나 자신의 정체성과 존엄성을 지키고자 분투한다는 점에서는 모두 같다고 할 수 있으며, 누구나 “어느 지위에서 밀려날지 모른다는 잠재된 공포”(p.19)는 똑같다고 밀러는 말한다. 다시 말해 자신의 정체성 ․ 존엄성 ․ 지위 ․ 자유를 지키고자 분투하는 사람은 모두 비극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이 세상에서 자기의 정당한 가치를 확보하기 위한 싸움터에 자신을 자발적으로 던져 넣을 수 있느냐에 따라서 그는 비극적 능력을 차지할 수 있을 것이다.”(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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