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회. ‘보는 신’으로부터의 자유 – 피터 셰퍼, 『에쿠우스』

연극 용어 중에 ‘잘 만들어진 극well-made play’이라는 용어가 있다. 정해진 주제(목표)와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발단→전개→갈등→절정(전환)→해결을 향해, 극(이야기)이 쉬지 않고 달려가는 플롯에 ‘잘 만들어진 극’이라는 평가가 따르지만, 실은 그 말은 칭찬이기보다 약간 조롱 섞인 말이다. 그 평가엔 ‘상업적인’, ‘대중의 요구에 부응하는’, ‘모범적인’이라는 비난의 뜻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비난을 ‘대박’ 난 작품을 질투하는 동료들의 흠집잡기로만 보아 넘길 수 없는 이유들이 있다. 실제로 ‘잘 만들어진 극’의 대부분은 선과 악의 극한 대결, 강한 욕망에 맞서는 강력한 방해자(장애물), 분명한 원인과 동기, 의혹과 음모가 밝혀지는 과정이 이끌어내는 단계적인 흥분(점층되는 긴장), 일점 의혹 없는 해결 등을 반복한다. 이처럼 ‘잘 만들어진 극’의 공식과 대중의 주목을 받는 흥행 공식은 서로 합치한다. 피터 셰퍼는 숱한 화제작과 흥행작을 가지고 있지만, 연극사에서는 크게 이름이 올라 있지 않다. 그는 아주 전형적인 well-made play를 만든 사람으로, 흥행에 필요한 상업적인 공식을 누구보다 잘 이용하는 사람이었다.

그의 이름을 널리 알린 『에쿠우스』(범우사,1997 2판)는 이 분야에 하나의 공식을 세운 작품으로 기록된다. 먼저 엽기적인 사건이 있고 – 호기심을 부추김 – 거기에 탐정이 아닌 정신분석의가 투입되어 인물과 사건을 분석하는, 요즘 와서 되풀이되는 전형을 제시한 작품이다. 죤 필미어의 『신의 아그네스』가 그와 같다. 『에쿠우스』의 알런이 말발굽파개로 여섯 마리의 말의 눈을 찌르고 정신과 의사 다이사트에게 인도되는 것이나, 『신의 아그네스』에서 사생아를 낳은 뒤 태아를 죽여 쓰레기통에 방치한 아그네스 수녀가 정신과 의사 리빙스턴에게 인도되는 것은 동일하다. 또 법의 대리인 혹은 합리주의의 화신인 두 명의 의사가, 정신병자를 돌보면서 자신의 역할에 혼란을 느끼게 되고 급기야는 자기 정체성과 인생관을 되돌아본다는 것도 그렇다.
두 작품의 흥행 요소를 좀더 간추려 보면, 앞서 말한 것과 같은 ① 엽기적 사건에 ② 섹스와 ③독신(瀆神)을 함께 버무리는 것이다.『에쿠우스』에 나타나는 예수의 성상(聖像)은 가학적인 사디스트의 모습으로 윤색되어 있으며, 그의 도래는 인류를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마치 한 소년에게 에로티시즘의 빛을 던지고자 하강한 것처럼 느껴진다.『신의 아그네스』 역시 마리아의 처녀수태를 아그네스라는 평범한 수녀가 되풀이해 보여주는 것으로, 예수와 예수 탄생의 기적을 우스꽝스럽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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