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회. ‘아름다운 5월’에 파괴된 파리를 상상하다 : 크리스 마커와 기억의 투쟁

백종관(영상작가크리스 마커 연구자)

 

 

 

 

 

크리스 마커(Chris Marker)는 동료 피에르 롬(Pierre L’Homme)과 <아름다운 5월(Le Joli Mai)>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1963년 5월, 대중들에게 공개했다. 상영시간이 2시간을 훌쩍 넘는 이 다큐멘터리에는 1962년 5월 파리(Paris)의 다양한 모습이 파리 시민들의 인터뷰와 함께 담겨 있다. 마커가 영화 <환송대>를 만들었던 시기가 바로 이 ‘아름다운 5월’이었다. 그는 <아름다운 5월>에서 이 시기를 “평화의 첫번째 봄(le premier printemps de la paix)”이라는 인용구로 지칭한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 불이 붙은 ‘식민지’ 알제리의 프랑스에 대한 저항은 알제리 전쟁으로 이어졌고, 이 전쟁에 종지부를 찍은 에비앙 협정이 맺어진 것이 1962년 3월이었다. 이미 프랑스 경제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던 시기였기에, 더욱 희망에 찬 전망이 가능해 보였다.
그러나 마커는 마냥 낙관적이지 않고 조심스러웠다. 제목은 ‘아름다운 5월’이지만, 다큐멘터리에 담아낸 목소리와 풍경들은 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아름답지만은 않은 다른 형태의 전쟁이 지속되고 있음을 은연히 드러내고 있었다. 평화와 번영의 수사가 감추는 문제들을 마커는 예민하게 추적하고 있었고, 그 어느 때보다 “아름다운” 파리에서 만들어진 <환송대>가 제3차 세계대전으로 완전히 파괴된 파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것은 매우 상징적인 설정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핀란드(<올랭피아 52>, 1952)와 중국(<베이징에서의 일요일>, 1956), 소련(<시베리아에서 온 편지>, 1958), 이스라엘(<어떤 투쟁의 기록>, 1960), 쿠바(<그래, 쿠바>, 1961) 등 세계 각지에서 작품 활동을 이어가며 이념과 체제에 대해 고민해왔던 마커에게, 1962년 파리의 봄은 의심스러워 보였다.
1921년생인 크리스 마커는 전쟁이라는 국가적 폭력과 제도의 모순을 온몸으로 통과한 인물이었다. 1940년, 파리가 독일군에 함락된 후 마커는 다양한 방식으로 투쟁과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 1943년에는 리옹 지역의 레지스탕스 단체 ‘콩바(Combat)’에서 활동하다 스위스로 몸을 옮겼는데 머지않아 스위스 경찰에 체포되어 코소네(Cossonay)라는 지역의 난민 수용소에 구금된다. 당시의 수용자 명단이 제네바 문서 보관소에 남아 있는데, 마커는 그의 본명인 크리스티앙 프랑수아 부쉬-빌뇌브(Christian François Bouche-Villeneuve)로 등록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크리스 마커’라는 예명은 1945년부터 사용된다). 부쉬-빌뇌브의 기록 바로 다음 페이지에는 보-아니쉬(Davos Bou-Hanich)라는 수용자의 기록이 이어지는데, 그는 수용소에서 마커의 친구가 되었고(이후 이름을 다보 아니쉬Davos Hanich로 바꾸게 된다) 20여 년의 시간이 흐른 뒤에 <환송대>의 주인공 역할을 맡게 된다.

 

 

 

 

 

 

 

 

부쉬-빌뇌브의 기록 바로 다음 페이지에는 보-아니쉬라는 수용자의 기록이 이어지는데, 그는 수용소에서 마커의 친구가 되었고 20여 년의 시간이 흐른 뒤에 <환송대>의 주인공 역할을 맡게 된다.

난민 수용소에서 인연을 맺은 마커와 아니쉬의 협업은 <환송대>가 처음은 아니었다. 1944년 1월, 마커는 코소네에서 석방된 후 오트-사부아(Haute-Savoie)의 산악지대에서 레지스탕스 활동을 재개했으나 상황이 악화되어 얼마 가지 않아 다시 스위스로 잠입했다. 크리스 마요르(Chris Mayor)라는 의사의 도움으로 겨우 거처를 마련한 스물세 살의 마커는, 활동비를 벌기 위해 기사를 꾸며내 언론에 판매하려는 계획을 세운다. 그와 동년배였던 마요르의 아들, 그리고 수용소 동지 아니쉬를 섭외하여 9장의 연출 사진을 촬영한 마커는 그 사진들을 활용하여 “마키(Marquis, 산악지대에서 활동하던 레지스탕스를 부르던 표현)의 처형”이라는 제목의 스토리를 만들었다. 사진과 약간의 텍스트로 구성된, <환송대>를 연상시키는 이 당돌한 프로토타입의 포토-로망(photo-roman)에서 다보스 아니쉬는 레지스탕스 리더로 분한 크리스 마커에 의해 처형당하는 포로 역할을 맡았다.
<환송대>에서 반복되는 죽음의 운명, 그 ‘불가능한 기억’ 속의 장면은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몇 년 전”의 사건으로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제2차 세계대전이 아직 진행 중이던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많은 사람이 죽었다. 어떤 사람들은 스스로 승자라고 믿었다. 다른 사람들은 포로가 되었다”라는 <환송대>의 내레이션은 마커가 전황 속에서 직접 목격했던 장면의 기술이자, 승자의 경솔한 믿음을 나지막이 경고하는 목소리였다. <환송대>가 촬영되기 불과 몇 개월 전인 1961년 10월 17일, 파리 중심가에서는 알제리 독립과 차별 철폐를 주장하는 시위가 벌어졌고 프랑스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수백 명의 시위대가 목숨을 잃었다. 레지스탕스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이들은 알제리해방전선의 투쟁에 공감했고, 프랑스 경찰의 폭력에 경악했다. <아름다운 5월>에는 1962년 2월 8일, ‘파시즘 반대’와 ‘알제리의 평화’를 내세웠던 또 다른 시위에서 경찰에게 목숨을 잃은 노동자들의 장례식 장면이 나온다. 모습을 바꿔가며 잠재해 있는 파시즘과 폭력에 저항하기 위해, 마커는 이렇듯 ‘아름다운 5월’에 아름답지 않은 ‘현재’를 폭로함과 동시에 파괴된 파리를 배경으로 한 <환송대>를 만들어 “시간 속으로 밀사를 보내”야만 했다.

 

* “크리스 마커”는 종종 “크리스 마르케”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마커”라는 이름의 유래를 백종관 감독의 짧은 에세이 <마커 혹은 마르케>에서 확인해보시길 바랍니다.
http://jongkwanpaik.com/about__marker

 

 

 

 

 

 

 

 

 

 

 

 

도서 안내 -> http://moonji.com/book/17850/

7 + 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