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회. 인간은 자유다

김기봉(경기대학교 사학과 교수)

우리는 인간이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여기서 인간이란 ‘자유인’을 뜻한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는 정말로 자유인인가?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자유롭지 못하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도,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도. 루소 말대로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지만 어디서나 쇠사슬에 묶여 있다.”
무엇이 우리를 쇠사슬로부터 해방시키는가? 예수님은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라고 설교했다. 하지만 진리는 종교, 문화, 이념에 따라 달라서 자유와 평화가 아닌 구속과 갈등을 낳는 게 현실이다. 과학 기술은 인간을 세상의 모든 것과 연결시키고 전 지구인들과 실시간으로 소통할 수 있게 해주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평생을 거의 마을 안에서만 살았던 시대의 사람들보다 자유로운가? 우리는 스마트폰과 소셜 미디어를 통해 자유를 누리기보다는 구속을 당하는 삶을 살고 있다. 그것들은 가상현실이라는 새로운 감옥을 창출했다.
자유를 꿈꾸는 인간이 상상해낸 최고 존재가 신이다. 하지만 인간이 신을 통해 자유를 향유하는 게 아니라 신의 노예로 살게 되는 역설이 발생했다. 이런 모순에서 벗어나 “인간은 자유다”를 삶으로 증명한 사람이 조르바다. 어떻게 그런 삶이 가능할까? 답은 카잔자키스의 묘비명에 있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아무것도 원하지 않을 수 있고, 두렵지 않을 수 있는 존재는 신이다. 그렇기에 인간은 신이 되지 않고 신을 섬기는 존재로 사는 한 자유로울 수 없다. 하지만 죽어야 할 운명을 가진 인간이 어떻게 신이 될 수 있는가? 결코 그럴 수 없기에 루터는 신의 은총만이 구원에 이르는 길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건 노예의 삶이다. 니체는 인간이 노예의 삶에서 해방되기 위해서는 신을 죽여야 한다고 선언했다.
인류 역사는 자유를 위한 투쟁 과정이었다. 하지만 근대에 인간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불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히틀러와 같은 독재자에게 자유를 저당 잡히는, 에리히 프롬이 말하는 ‘자유로부터의 도피’가 일어났다. 그렇다면 문제는 어떻게 하면 자유를 다시 인간의 존재의미를 실현하는 삶의 에너지로 전환시킬 수 있느냐다.
그리스인 조르바의 조상은 아킬레우스다. 영화 「트로이」(볼프강 페터젠 감독, 2004)에서 아킬레우스는 포로로 잡힌 사랑하는 여인 브리세이스에게 신들의 비밀을 발설한다. “신은 인간을 질투해. 인간은 다 죽거든, 늘 마지막 순간을 살지. 그래서 삶이 아름다운 거야. 지금의 너보다 더 아름다울 땐 없을 걸, 우리에게 이 순간은 다신 안 와.” 인간이 신보다 위대할 수 있는 이유는 매 순간마다 최선을 다하는, 카르페 디엠(carpe diem)의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카르페 디엠은 죽음이 준 선물이다. 스티브 잡스는 죽음을 삶이 발명한 최고의, 유일한 발명품이라 했다. 인간은 죽어 사라지는 존재이기 때문에 선물로 주어진 현재(present)를 마지막 순간처럼 사는 자유인이 될 수 있다.
조르바는 말했다. “난 지나간 일 따위는 생각하지 않아요. 미래의 일도 신경 쓰지 않습니다. 지금, 바로 이 순간, 바로 그것만 신경 씁니다.” 톨스토이도 같은 말을 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은 현재이고,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하는 일이고,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만나는 사람이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이런 삶이 자유라는 걸 가장 실감 나게 이야기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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