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회. 누구를 위한 세대 게임인가?

최서윤(『월간 잉여』 편집장)

 

“요즘에는 ‘워라밸’이다, 뭐다 난리야. 열심히 할 생각들은 안 하고…… 한강의 기적 몰라, 한강의 기적? 이래서 나라꼴이 어떻게 되겠어!”

내 동년배 친구들을 몹시 분노하게 만든 칼럼이 있었다. 그 글의 논조를 요약하면 저런 ‘대사’가 된다. 한국 사회에 살면서 이런 말을 지겹도록 들어왔다. 요즘 애들은 게으르다는 말, 원래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하는 거라는 말, 회사와 국가를 위해 희생하라는 말, 이기적이어서 결혼과 출산을 하지 않는다는 말, 그놈의 말말말…… ‘어르신’들은 나보다 많이 살았답시고 비난과 억압의 말을 쉽게도 툭툭 내뱉는다. 다른 삶의 방식은 존중하지 않고.

역사적 경험과 기억의 차이 때문일 것이다. 『세대 게임』의 저자 전상진 교수는 예기치 못한 역사의 굴곡에 따라 갑자기 교육 기회가 늘거나 불현듯 취업 기회가 줄어 그 이전과 이후가 확연히 다른 사회적 기회나 제약에 노출돼 고유한 사유・감정・행동의 방법과 양식을 갖게 될 때, ‘우리 의식’을 지닌 세대가 된다고 설명한다. 한국전쟁, 새마을 운동, 민주화 투쟁, 구제금융 도입 등 ‘예기치 못한 역사의 굴곡’이 잦았던 우리 사회에서는 세대 갈등을 마주하기 더욱 쉬울 테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는 세대 갈등을 완화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을까?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이해해보려는 태도를 취할 때 갈등 해소의 첫 단추가 꿰어진다. 그리고 우리는 일상에서 의식하고 노력해야 가까스로 이런 태도를 유지하고 실천할 수 있다. 집단 간의 차이를 강조하고 편견과 혐오, 적대를 부추겨서 정치적 이익을 얻는 세력이 득세하는 현실 때문이다.

저자가 ‘세대 플레이어’라고 부르는 이들은 사회문제의 책임을 특정 세대에게 돌린다. 그리고 그 세대에게 벌을 가하거나 그들 몫을 거둬들여 손해를 입은 다른 세대에게 보상해야 한다는 논리를 퍼뜨린다. 이것이 ‘비난의 세대 게임’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거의 프로 게이머였다. 그는 2015년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해 “기성세대가 고통을 분담하고 기득권을 양보해야 한다”고 말했고, 우익 성향 청년단체는 이에 손뼉을 마주쳤다. 민주노총 앞에서 “형님들이 독점하고 있는 일자리, 조금만 나누어주십시오”라면서 시위를 벌이며 임금피크제 도입을 지지한 것이다.

그러나 청년 취업난의 주요 원인이 정말 ‘양보하지 않는 기성세대’일까? 저자는 “사회문제의 책임을 자본가나 권력자와 같은 전통적인 기득권자에게 묻지 않고, 고임금을 받는 정규직 기성세대라는 ‘새로운’ 기득권자에게 전가하는” 현실을 걱정한다. 그들이 청년 실업의 근본 원인이었다면 박근혜 정권이 은근슬쩍 임금피크제를 비롯한 ‘노동 개혁’을 밀어붙였음에도 청년들의 현실은 변함없는, 아니 오히려 더 팍팍해진 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노동 개혁’은 부의 재분배를 이루기보다 전통적인 기득권자인 기업의 이익 증대에 기여하는 것으로 귀결될 뿐이었다.

비난의 세대 게임이 어떤 세대를 욕받이로 만들어 특정 정책 수립과 집행에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기 위함이라면 ‘지지자 세대 게임’은 특정 세대의 지지를 끌어내려는 정치적 동원 전략이다. 저자는 19대 대선 국면에서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들이 “선거 연령 18세 하향”과 “공직자 연령 제한의 제도화” 주장을 제기한 것을 청년층을 동원하려는 정치 전략의 예로 든다. 보수 세력은 ‘시간 고향’의 향수를 자극하며 장・노년층을 자극한다. 박근혜로 표상되는 시간 고향의 붕괴, 그 인지부조화를 참지 못한 노인들은 ‘맞불 집회’의 주역이 됐다.

이 같은 세대 게임이 정치인들에게 특히 유용한 이유는 세대를 여기 갖다 붙이고, 저기 갖다 붙일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정치의 언어는 언제나 매우 다양한 요구들을 동시에 만족시켜야만 한다. 그로써 정치 언어는 과학의 언어와 구분된다”는 말을 인용하며 정치인이 ‘세대 정의’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외칠 때, 젊은이나 노인 들은 모두 자신들을 위한 정의라고 생각할 수 있음을 지적했다. 이토록 모호하게 구호를 외치면 나중에 책임질 일도 슬쩍 피할 수 있다. 사회문제를 진지하게 해결하려는 태도라고 보기 어렵다.

그렇다고 저자가 ‘세대’가 가진 일상생활에 필요한 분석적 도구로서의 힘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가속화된 사회에서 시간 정체성 표현으로서의 세대가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 예상한다. 이것은 나와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나도 ‘어르신’들이 폭력적으로 굴 때 그들의 삶의 배경과 시간 고향을 고려하며 이해해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다만 내가 노력하는 것만큼 다른 세대도 우리 세대의 경험에 대해 인지하며 세대적 차이를 존중하고 좀 덜 폭력적으로 굴어줬으면……

즉, 세대라는 개념은 대상의 ‘이해’를 위해 쓰여야지, 편견과 혐오를 부추기는 데 동원되는 일은 경계돼야 한다는 것. 우리 사회의 문제를 진정으로 해결하는 데 훼방 놓기 때문이다. 이는 새로운 사회에 대한 상상을 가로막기도 한다. 예컨대 나는 막대한 자본소득을 얻는 이들에 대한 조세를 확대하고 이들의 부를 적극적으로 재분배해 ‘좋은 일자리’를 얻지 않아도 최소한의 삶의 질을 누릴 수 있게끔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세대 간 대결할 필요 없이 모든 구성원들이 주거・교육・의료 부문에서 최소한의 복지는 누릴 수 있는 사회를 상상하는 것이다. ‘비난의 세대 게임’은 이런 상상으로 향하는 발목을 잡아챈다.

『세대 게임』은 한국 사회의 개선을 바라는 사회학자의 절박함이 느껴지는 책이다. 그 때문일 것이다. 저자는 두루뭉술하게 현상을 진단하며 점잔 빼지 않고 구체적이고 신랄하게 세대 플레이어들을 비판하며 세대전쟁론의 논리적 허점을 날카롭게 격파한다. 세대 갈등을 현명하게 다루기 위해 꼭 읽어봐야 할 책이다.

7 + 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