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회. 부테스: 본래의 조건으로 되돌아가는 것은 죽는 것이다.

백은선 (시인)

자살하는 사람들은 죽음이 아니라 추락을 원한다. 그들은 창밖으로 혹은 심연 속으로 몸을 던진다. 아말피 만 남쪽 패스톰 박물관에 있는 석관의 뚜껑에 그려져 있는 다른 세계의 물 속으로 뛰어드는 투신자처럼. 『은밀한 생』(461쪽)

 

 

나는 얼마 전에 「1g의 영혼」이라는 시를 썼다. 『부테스』를 읽으면서 「1g의 영혼」에 적었던 한 장면이 떠올랐는데,

 

연주자들은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악기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아주 조금씩…… 흡수되는 것처럼 걸어 들어갔고 텅 빈 무대, 악기
여섯 대가 정적 속에 놓여 있었다 그것은 압도적으로 완벽한 음악
의 형태였다

나는 그 자리에서 죽어버렸으면 하고 바랐다 침묵과 함께
끝장나고 싶었다

우리가 목도한 것은 세계의 모든 문이 동시에 열리는 순간

 

이런 것이었다. 파스칼 키냐르의 영향이 있었을 것이다. 나는 『은밀한 생』을 아주 좋아하고 세 번 이상 읽었으니까. 이 연주자들의 ‘추락’이 물에 뛰어드는 ‘부테스’의 모습에 겹쳐 보였다. 그리고 그것은 내게 어떤 말로 할 수 없는 완성 같은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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돛대에 몸을 묶은 오디세우스, 키타라를 연주한 오르페우스, 바다로 뛰어드는 부테스.

오직 부테스만이, 바다로 뛰어들었다.

 

*

파스칼 키냐르는 『은밀한 생』에서 사랑에 빠진 연인들에 대해 썼다. 연인들의 반사회성, 사회 바깥으로 빠져나가는 것, 그들만의 세계를 만드는 것에 대해 썼다. 그들 또한 내게 다른 부테스들처럼 여겨진다.

그런 방식으로 아주 내밀하게 세계의 사물들에 점선긋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부테스들 모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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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욕망을 죽음 충동이나 자궁으로 회귀하려는 의지 같은 것으로 읽고 싶지 않다. 물론 파스칼 키냐르는 자궁에 대해 썼지만 나는 그것을 조금 더 거대한 상징처럼 읽었다. 돌아갈 수 없는 기원에 대한 절박, 혹은 자신의 원소를 바닥까지 파헤쳐 낱낱이 보고 싶은 열망, 세계에서 이탈해 본래적인 그 무엇으로 거듭나고자 하는. 그럼으로 흔적도 없이 소멸하려 하는.

모두 같은 말의 반복들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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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이자나기와 오르페우스의 ‘돌아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78쪽-80쪽) 그들은 되찾고자 했던 것, 사랑하는 사람을 ‘돌아보고 싶은 충동’ 때문에 잃게 된다. 어쩌면 『부테스』 또한 파스칼 키냐르의 ‘돌아봄’ 자체가 아닐까. 그는 이 ‘돌아봄’을 통해 ‘음악’이라는 되찾을 수 없는 것을 온전히 떠나보냄으로 완성하려 했던 것은 아닐까. 『부테스』라는 한 권의 책이 그 동작에 다름없다는 것. 그건 단지 나의 착각일까.=

파스칼 키냐르는 오르페우스의 죽음이 부테스의 죽음과 대칭된 장면임을 보여주고자 했다고 적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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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세이렌들.

세이렌들. 부테스를 일깨운 것은 세이렌들이다. 세이렌들이 없었다 해도 세이렌들의 노래를 듣지 않았어도 그는 물에 뛰어들었을까? 언젠가는 그렇게 했을까? 쉽게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지만. 나는 부테스를 읽으며 『빌라 아말리아』의 안이 생각났다. 다른 세계로 가고 싶어 했던 그녀의 모습. 바다에 뛰어들던 그녀의 모습. “용암의 상부 돌출부에 이를 때마다 매번, 강렬하고 임박한 어떤 것이 그녀를 맞이했다. 그것은 행복감을 주는 정체불명의 존재 같은 것이었다. 그 존재가 어떻게 알아보고, 안심시키고, 이해하고, 알아듣고, 인정하고, 편들고, 사랑하는지 그녀 자신도 알지 못했다.”『빌라 아말리아』(156쪽)의 안의 매혹은 마치 세이렌의 부름에 이끌리는 부테스의 추락과 유사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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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파스칼 키냐르의 소설을 번역해온 송의경 번역가의 옮긴이의 말을 읽고 난 후 이 소설에 대해 굳이 설명하는 것은 불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것보다 더 좋은 글을 『부테스』에 덧붙이는 것은 불가능할 거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내 나름의 아주 주관적인 감상문을 쓰고자 했고 그게 이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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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될 때 가장 처음 생겨나는 것은 팔도 다리도 머리도 아닌 심장이다. 어둠 속에서 오직 심장만이 두근거리는 것, 그게 우리 모두의 첫 장면이다. 그 기묘하고 시끄럽고 예상 외로 너무 커다란 소리. 온몸에 새겨진 잊을 수도 벗겨낼 수도 없는 기원의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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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좋았던 부분을 적고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물의 목소리, 아득하게 먼 목소리, 목소리조차 아닌 목소리, 희미한 빛에서 발원된 미처 분절되지 않은 노래에 합류하고자 물로 뛰어드는 자는 거의 없다. 아주 드물다.
몇몇 음악가.
가뜩이나 말이 없는 지면에서 다른 이들보다 훨씬 과묵한 몇몇 작가.
어머니의 어슴푸레한 기이한 빛. 인간의 경우에 암흑 자체에 선행하는 어둠이라는 점에서 기이한 빛이다.
부테스는 육체들의 완전히 비상호적인 음향의 오래된 자화磁化를 구현하는 화신이다. 최초의 날 이전에 들었던 노래가 무한히, 불한정不限定 과거 시제로 육체 안에 끌어들인 자화.
음향이 울리는 어슴푸레한 액체 한가운데 떠 있는 태아의 몸처럼 바다에서 죽어가는 아르고 원정대원 부테스의 육체도 바로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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