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회. 페터 형님의 질문

글쓴이: 최인석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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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작가는 이 소설을 거꾸로 써야 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처형장에서 시작하여 박물관에서 끝맺는 것이다. 아니, 작가가 이렇게 썼다 할지라도 독자는 거꾸로 읽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박물관에서 시작하여 처형장으로, 박물관의 그 모든 아름다운 보고를 만들어낸 인간들이 결국 처형당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처형장에서 시작하여 박물관으로, 결국 처형당하는 것이 인간의 운명이라 할지라도 끝은 그 지혜를 차곡차곡 쌓아 올린 박물관에서 맺는 것이 어쩌면 낫지 않겠는가. 그것이 조금이나마 위안이 될 것이다. 작가는 위안 따위는 집어치우라고 소리치겠으나, 위안 따위는 그의 목적이 아니었을 것이나, 어쩌랴, 독자에게는 독자의 고유한 몫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내가 이렇게 얘기하는 것은 잠시 여기, 이 나라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서다. 작가의 준열한 질문에 이어, 거기 기대어, 작은 질문을 하나만 보태는 것으로 이 글을 맺고자 한다.

 

전태일은 작은 노동조합 하나를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의 몸뚱이에 불을 질러 자살했다. 오늘날, 이 나라에는 민주노총이라는 거대한 조직이 있다. 게다가 진보정당도 있다. 좋은 일인지는 잘 모르지만, 그것도 몇 개씩이나 있다. 그것은 무수한 학생 ․ 노동자들이 흘린 피땀의 결실이었다.

그런데 왜, 도대체 왜 김진숙은, 이창근은, 저 여의도와 시청 앞, 굴뚝이나 철탑, 혹은 콘크리트 바닥에 쓰러진 수많은 농성자들은, 저 무수한 전태일들은 아직 이다지 외로운가? 아니다. 이것은 내 질문이 아니다. 페터 바이스의 질문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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