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회. ‘박근형’의 희곡 ㅡ 두 가지 특징에 대하여

가족이면서 가족이 아닌 가족, 가족이 아니면서 가족인 박근형의 의사 가족적 세계가 가장 신랄하게 드러난 작품이 「대대손손」이다. 자유자재로 시·공간을 이동하면서 삼대에 걸친 함경남도 청진 출신의 조씨 집안 내력을 이야기하고 있는 이 작품에서, ‘빛나는 족보’는 그야말로 ‘비굴과 불륜’의 기록이다. 아버지(삼대)와 고모(삼순)는 할아버지(사대) 할머니(사처)의 자식이 아니라 식민지 조선에 거류했던 일본 사업가 이케다의 자식이고, 일본에 돈 벌러 갔다가 일본 창녀 마이꼬와 결혼했던 아버지(삼대)는 누가 뿌린 씨앗인지도 모르는 아들(이대)를 친아들로 여긴다. 서로 닮지도 않고 피가 섞이지도 않은 가족들이 제사를 올리며 막을 내리는 이 반어적 세계의 기막힘이란!

「대대손손」을 역사의식 부재나 식민 경험이 낳은 비극으로 설명하고, 박근형의 작품 전체에 나타나는 부권의 상실을 역사의식 부재와 식민 경험의 결과인 양 해석하고픈 유혹도 아주 없지는 않다. 「청춘 예찬」에서 해일을 편애하던 세계사 선생이 사표를 내고 뉴질랜드로 떠난다면서 “나는 이 나라 포기다. 역사는 힘이 없어. 원래는 그게 아닌데”라고 말할 때, 의식되지 못한 역사가 꺼꾸러뜨린 것은 또 한명의 ‘사회적 아버지’인 선생이었다.

의사 가족성과 함께 박근형 희곡을 특별나게 만드는 또 다른 특징은, 연극에 대한 자의식이다. 「청춘예찬」에서 아버지와 해일의 싸움을 말리려던 여자가 간질을 일으키며 쓰러진 사실은 앞서 얘기했다. 그런 직후, 학교에서 단체 관람으로 「벚꽃동산」을 보고 왔던 용필이 “관객이 원하는데 씨발 써비스 정신이 하나도 없어! 프로야구나 청춘의 덫이 백배 낫다 씹새끼들!”이라고 욕하는 대사가 뜬금없이 덧대어진다. 이 대사는 아버지와 아들이 개처럼 싸워대고 그것을 말리는 새 며느리가 바지에 똥을 싸며 발작하는, 향기롭지 못한 바로 그 장면 혹은 이 연극에 대한 시의적절한 관객평이다. 영화처럼 호쾌한 볼거리도, 신경숙 소설처럼 연약하고 지친 자들의 감성을 위무해주지도 못하는 이따위 연극!

「대대손손」의 주인공인 일대와 그의 애인은 가난한 연극배우며, 이 작품의 서두는 두 사람의 연극으로 시작한다. 그것을 몰래 관람한 일대의 아버지 이대는 “무슨 연극이 그러냐, 도대체 무슨 얘긴지 하나도 모르겠다. 요즘 다들 죽네 사네 하는 마당에 참 한심하구나”라면서 “난 또 예술 한답시고 나가길래 무슨 쉬리 비슷한 영화나 만드는 줄 알았지”라고 지청구한다. 이 대목에 작가의 연극에 대한 자의식과 자괴감이 확연하다.

몇몇 대목을 모아 짐작건대, 박근형은 오늘의 한국 연극이 볼거리로 무장한 영화와 달싹지근한 멜로드라마의 틈바구니에서 질식해가는 중이라고 보는 듯하며, 본 희곡집에는 어떻게 영화적 볼거리에 응전하고 멜로드라마적 관습을 돌파할 것인지에 대한 작가의 고심이 담겨 있다. 인용해 놓은「삽 아니면 도끼」의 두 장면이 잘 보여주듯이 박근형은 ‘이런 게 당신들이 보고 싶은 거지? 달싹 지근한 거짓화해로 봉합되는 이런 멜로드라마를!’하며, 한껏 우리를 조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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