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회. ‘박근형’의 희곡 ㅡ 두 가지 특징에 대하여

첫날부터 부자가 싸우는 꼴을 보고 그것을 말리던 여자는 간질을 일으키며, 바지에 똥을 싼 채 쓰러진다. 그제서야 부자는 싸움을 멈추고, 화해 아닌 화해를 한다.

「쥐」의 첫머리엔 “무대는 허름한 라디오 방송국 안./ 그곳에는 사람이 사는 듯 간단한 가재도구가 놓여 있다./ 낡은 방송 시스템 일부와 난로와 침대가 놓여 있다./ 벽에는 멈춰 있는 시계와 2000년을 표시한 달력이 걸려 있다”라는 지문이 나와 있지만, 여기 나오는 시·공간은 전혀 현실적이지 않은 동화나 민담의 세계다. 큰아들은 집에서 방송을 하고 어머니와 임신한 며느리는 집안일을 한다. 저녁 무렵이 되자 사냥을 나갔던 작은아들과 여동생이 낯선 소년을 데리고 돌아온다. 허탕을 치고 돌아오는 길에, 빈사 상태에 빠진 길 잃은 어린 소년을 발견한 것이다.

 

작은아들 근데 조금 빠삭한 게 맛이 없어 보이죠?
어머니 빠삭하기는? 내가 보기엔 제법 실하다.
그리고 맛이란 건 먹어보기 전에는 모르는 법이다.

 

집 안에 무수히 널려 있는 주인 없는 신발로 짐작컨대, 이들은 인육을 먹는 일을 버릇해왔고, 아마 그게 이 가족의 생존 수단이었을 것이다. 비록 인육을 먹지는 않지만 김지운 감독의 「조용한 가족」에 나오는 산장이나 이강백의 『황색여관』에 나오는 허허벌판 위에 세워진 황색여관은 모두 「헨젤과 그레텔」에 나오는 ‘숲 속의 집’과 동류이다. 동화나 민담에 자주 나오는, 깊은 숲 속이나 외딴 들판에 위치한 ‘숲 속의 집’은 모두 ‘죽음의 집’이다. ‘라디오 파라다이스’라는 어울리지 않는 이름을 가진 「쥐」의 허름한 라디오 방송국이 그런 집이다.

가족들이 저녁 식사를 마치자, “여기가 방송국 맞나요?”라며 초췌한 방문객이 찾아온다. 집 나간 아이를 찾기 위해 방송을 부탁하러 온 소년의 어머니다. ‘죽음의 집’의 식구들은 허기진 소년의 어머니에게 천연덕스레 자신들이 먹고 남은 국을 주고, 소년의 어머니는 연방 “고소하네요”라며 자식의 살로 만든 음식을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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