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겨울, 이미상

이미상 「이중 작가 초롱」 (『에픽』 2021년 7/8/9월호)

선정의 말

불법 촬영 피해자의 이야기를 다룬 「테라바이트 안에서」라는 소설로 등단하여 이후 명망 있는 문학상까지 받은 작가 김초롱은 습작 시절에 썼던 작품 「이모님의 불탄 진주 스웨터」가 「강건너적-소설: 김초롱 작가의 이중성」이란 제목과 함께 유포되면서 곤란을 겪게 된다. 두 작품 모두 불법 촬영 피해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습작품으로 썼던 작품이 “피해자의 괴로움을 남의 일로 보는 사람, ‘강 건너’에 있는 사람이 쓴 소설”로 읽히면서 작가로서의 김초롱은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된 것이다. ‘초롱조롱파인드닷컴’이라는 사이트마저 생겨 그곳에는 초롱을 조롱하듯 초롱이라는 필명으로 씌어진 다양한 글들이 쌓이게 된다. “글과 글쓴이의 심장이 하나인지에 대해 집착”하며 초롱을 비난했던 사람들은, 더럽혀진 이름인 ‘초롱’을 빌려 글쓴이의 심장으로부터 절대적으로 해방된 글쓰기의 자유를 누리게 된다. 이미상 특유의 다소 유머러스한 문장들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이중 작가 초롱」은 자신의 습작품을 무단으로 유포한 범인을 찾아 습작 시절을 함께 했던 지인들을 방문하고 있는 초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소설에는 글쓰기에 관한 다양한 논점들이 겹겹이 쌓여 있다. ‘피해자의 이야기는 어떤 방식으로 재현되어야 하는가.’ ‘작품의 윤리와 작가의 윤리는 구분이 가능한가.’ ‘습작과 등단 사이, 작가가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등등, 특히 2010년대 후반 이후의 한국 문학장에서 진지하게 고민됐던 주제들이 이 소설에도 담겨 있다. 이러한 논점들이 고민되는 사이 자신을 미투 가해자로 거짓 고발한 한 남성의 이야기, J. M. 쿳시의 「추락」에 대한 서평, 초롱이 쓴 작품의 내용 등이 소개되면서, 「이중 작가 초롱」의 가장 핵심적인 질문 혹은 정서는 이른바 ‘억울함’에 관한 것으로 좁혀지기는 한다. 이 소설은 ‘억울함을 떠맡은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로 조심스레 읽히기도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소설의 첫머리에 무심히 놓인 다음과 같은 문장들은 굉장히 의미심장해진다.

초롱이 그렇게 된 데에는 초롱 자신뿐 아니라 혁명에도 얼마간 책임이 있었다. 양식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엇비슷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 양식 있는 이들, 과오를 역사 속에서 볼 줄 아는 이들은 초롱의 일에 침묵했다. 정신이 다른 데 팔려 있었기 때문이다. 혁명 전에 자신이 행한 잘못-그때는 잘못인 줄 몰랐으나 이제 알게 된, 그러나 여전히 사소한 잘못-을 반성하기 바빠 초롱을 깜빡 잊고 만 것이다. 그래서 이제 초롱이 그렇게 된 것은 전적으로 초롱의 탓이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누군가의 과오를 역사 속에서 볼 줄 아는 유연함’일까, 아니면 자신의 사소한 잘못도 온전히 자신의 탓으로 반성할 수 있는 철저함일까. 이러한 질문 자체가 어쩌면 한가로운 것으로 들릴 수도 있는 (작가의 표현을 따르자면) ‘혁명’의 시대에, 이미상은 문학이 감당할 수 있는 질문들은 더 다양하고 더 위험하다는 사실을 용기있게 제시해본다. 그 용기에 주목하자면, 이 작품이 이처럼 무거운 질문들을 감당하면서도 문장 속의 유머를 포기하지 않는 것도 가볍게 넘길 수만은 없는 태도라고 생각된다._조연정(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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