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겨울, 남현정

남현정 「부용에서」 (〈문장웹진〉 2021년 8월호)

선정의 말

남현정의 「부용에서」는 외삼촌을 만나기 위한 목적으로 ‘부용’이라는 낯선 장소에 도착한 1인칭 화자의 의식적 착란을 기록하고 있는 소설이다. 소설이 진행됨에 따라 화자는 ‘외삼촌을 만난다’라는 애초의 목적을 상실한 상태로 여행을 지속하는데, 이러한 목적 없는 여행의 지속은 망상적 부유로 묘사될 법한 어지럽고 무질서한 경로들을 무의미하게 생성할 뿐이다. 흥미로운 점은 목표를 잃은, 나아가서는 의미로부터 탈구된 화자의 언어가 평범하고 단조로운 부용의 풍경을 일순간 초현실적이고 섬뜩한 시공간으로 탈바꿈시키는 지점으로까지 나아간다는 사실이다.

특별한 사건도 메시지도 쉽게 드러나지 않는 이 관념적인 소설을 읽은 독자라면 화자가 방황하고 있는 부용이라는 낯선 장소의 의미에 관해 질문하고 싶을 것이다. 관련해서 우리가 제시해볼 수 있는 가설 하나는, 유의미한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는 부용이라는 장소가 언어의 쓰임새(用)에 대한 끈질긴 부정(不)이 이루어지는 시공간이라는 사실이다. 언어가 사용 목적에 철저히 종속되어버린다면, 글쓰기는 의미론적 용도에 부합하지 않는 요소들을 잔여적인 것으로 배제할 위험이 있다. 따라서 그 배제된 영역을 탐사하기 위해서는 의도적으로 목적을 부정하고 망각해야 한다. 그래서일까. 화자는 이렇게 스스로 되새기기도 한다. “어떤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걷는 데 꼭 목적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며 또 걷다 보면 목적이 생기는 경우도 있으니 지금 내가 이런 상태라고 해서 걷는 데 문제 될 것은 없어 보였다.”

하지만 언어의 기능과 목적에 대한 부정의 지점에 이 소설이 멈추지 않는다는 점 또한 중요해 보인다. 남현정의 자의식적인 고민과 탐구가 도달한, 혹은 도달해야 할 진정한 장소를 추측하기 위해서는 “힘겹게 고치를 짓고 그 속에 스스로 갇혀버리는 누에들의 마음을 나는 그만 이해”하는 자신을 새삼 낯설게 바라보는 화자의 비판적 시선 또한 염두에 두어야 한다. 부용은 ‘목적 없는 언어’들이 머물러 있는 ‘대피소’이지만, 세상으로부터 격리된 대피소는 “감옥이자 무덤”의 동의어이기도 하다. 그런 맥락에서 “나는 어느 때부터 여기에서 어떻게든 빠져나가야 한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는 화자의 고백은 결정적이다. 용부대피소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새로운 길과 경로를 모색해야 한다는 화자의 다짐은 언어의 불능을 확인하는 일이 직면할 수 있는 한계를 명료하게 드러내주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화자는 부용이라는 언어의 무덤으로부터 어떻게 탈출할 수 있을까? 그 출구가 분명하게 확인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부용은 이 작가의 목적지가 아니라 일종의 출발 지점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부용에서’ 시작될 언어에 대한, 소설에 대한, 글쓰기에 대한 이 작가의 새로운 여행은 분명 흥미로울 것이다. _강동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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