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겨울, 김멜라

김멜라 「저녁놀」 (『문학과사회』 2021년 가을호)

선정의 말

인공 남근(딜도)를 화자로 한 알레고리 소설을 구상했을 때, 그리고 풍자와 유머를 글쓰기의 주된 장치로 삼았을 때, 작가의 의도는 명확했던 것으로 보인다. 남성성에 대한 조롱이 그것이다. 딜도 화자가, 곧 버려질 잡동사니 틈바구니에 끼어 동서양의 고전들을 읽으면서 깨닫게 되기도 하는바, 인류의 역사 곳곳에 남근은 상징처럼 숨겨져 있다(“그들의 책에는 모두 내가 상징처럼 숨겨져 있었다”). 세계사는 데리다의 말마따나 ‘남근로고스중심주의’의 역사였으니까…… 그러나 아무짝에도 쓸모없어진 딜도가 무엇인가의 ‘중심’이 될 수 있을까? 이를테면 세계사나 철학사나 정신분석 같은 것들의 중심 말이다. 안쓰러운 정신승리법에도 불구하고 딜도 ‘모모’(무쓸모의 쓸모의 준말이다)는 끝내 ‘남근’이 되지 못한다. 정확히는 남근 구실을 못한다. 첫째로 그것을 사용해야 할 여성 동성애 커플이 도무지 남근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둘째로 소설이 진행되는 내내 공들여 묘사되는바 인물들의 생활고가 그들에게 사랑을 나눌 여유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헤겔의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 딜도 버전인가? 인정받지도 소용에 닿지도 않는 딜도는 더이상 주인이 아니다. 결국 딜도는 알록달록한 색깔을 묻힌 오브제가 되거니와, 그 용도 변경의 주인은 동성애 여성 커플이다. 주인과 노예의 관계는 역전된다. 소설의 처음부터 끝까지, 독자는 인공 남근의 끈질긴 과대망상에 웃음을 멈추기 힘들지만, 정작 그 웃음이 파괴하고 있는 것은 수천 년 된 세계사의 허황된 중심 바로 그것이다. _김형중(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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