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가을, 구소현

구소현 「시트론 호러」 (『문학들』 2021년 여름호)

선정의 말

구소현의 「시트론 호러」는 “10년 차 유령”으로 살아가고(?) 있는 공선의 시선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소설이다. 제법 경력이 쌓인 유령이지만, 호러 영화나 드라마에 등장하는 귀신들과 달리 공선은 삶에 전혀 관여하지 못한 채 단지 “응시밖에 할 수 없는 유령”으로 사람들 주변을 맴돌고 있다. 공선이 즐길 수 있는 유일한 소일거리가 있다면 그것은 타인이 읽는 책을 옆에서 함께 감상하는 일뿐이다.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천천히, 빈 부분 없이 다 읽는” 일종의 “독서 메이트를 까다롭게 찾아” 배회해야만 하는 귀신의 삶은 귀엽고 동화적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슬프고 쓸쓸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아마도 그것은 공선이 누리고 있는 사후의 삶이나, 생전의 삶이 특별하게 다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존재하고 있지만 살아 있지는 않다는 것을 실감”하면서 사람들로부터 “자연스럽게 소외”되는 것이 귀신의 삶일 수밖에 없다면, 공선이 암시하는 자신의 가난하고 빈곤했던 과거 역시 비가시적인 방식으로 존재하는 현재 귀신의 삶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그래서일까. 공선은 소설의 또 다른 등장인물인 ‘효주’의 소외된 삶과 그녀의 ‘습작 소설’에 모종의 공감과 애정을 지속적으로 피력한다. 아울러 효주의 소설에서 그려지는 불필요한 에피소드가 산만하게 느껴진다는 ‘태오’와 ‘지민’의 감상평에 공선이 (들리지는 않지만) 다른 의견을 피력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이른바 중심과 주변, 내부와 외부, 삶과 죽음이라는 구분 속에서 형성되는 위계를 당연시할 때 그로부터 소외된 존재들의 삶이 파생되는 것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이 들리지도, 보이지도, 인식되지도 않는 작은 존재들을 감각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일이다. 「시트론 호러」의 예상치 못한 (이 소설의 중심 스토리와는 아무런 맥락을 형성하지 못한) 마지막 장면이 흥미롭게 다가오는 이유는 그래서이다. 이른바 수면 위로 떠오른 시체의 형상이 일종의 정치적 알레고리라고까지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예기치 못한 이미지의 출현으로 인해 일시적으로 일으켜진 일상의 혼란이야말로 소외된 삶이 출몰하고 있음을 알리는 감각적 징후일 것이기 때문이다. _강동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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