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봄, 나일선

나일선 「from the clouds to the resistance」 (『자음과모음』 2020년 겨울호)

선정의 말

나일선의 「from the clouds to the resistance」를 읽고 한 달쯤 시간이 흐른 지금, 그의 소설에 관해 내가 기억하는 것은 거의 없다. 그나마 어렴풋하게 남아 있는 것은, 일종의 파편적인 형식의 이미지-형상들뿐이다. 일기 형식으로 분할된 글들, 그 위에 적혀 있는 서로 다른 시간대의 날짜들, 영화 또는 소설에 관한 몇몇 고유명, 그리고 글쓰기에 관해 말하고 있는 작은 단위의 문장들…… 해당 이미지들을 구성하는 내용이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한 달 전의 나는 이런 생각에 도달했던 것 같기는 하다. “나일선의 텍스트에서 구축되는 모호한 정서적 관계를 지시하기 위한 적합한 단어는 ‘대화’ 아닐까?”
물론 현재의 나는 과거의 내가 품었던 생각과 판단이 정당한지 확신하지 못한다. 그의 소설을 다시 읽지 않는 한, 나는 나일선의 소설을 기억하는 데 끝내 실패할 것이고, 점차 이 소설을 잊게 될 것이며, 결과적으로는 소설을 읽었던 과거의 나를 잃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왜 다시 그의 소설을 읽지 않는가. 나일선의 글쓰기가 구축하는 대화가 기억, 더 정확히 말하면 기억의 소멸에 토대를 두고 있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소설 읽기를 재개하며 과거를 복구하는 시간은 곧 이 소설이 상상하는 대화의 중단을 의미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다행스럽게도(?) 한 달 전의 나는 나일선의 소설을 읽으며 인상적이라고 생각되는 문장들을 일기에 기록해 두었는데, 그 중 일부를 여기에 재인용해 본다.

더는 잃어버리고 싶지 않아서 썼는데 그게 오히려 날 잃게 만드는 걸까. 나는 내가 쓴 글들을 따라가고 싶어서 일기를 썼던 걸까.(125쪽)

미안 기억이 지워지고 부재가 성장하고 있어, JS는 말하고 오른손을 펴 내 눈을 가렸다. 많이 볼수록 우린 좁아지는 거야.(126쪽)

이미지가 도처에 있다. 죽음이 가능한 얼굴로 형태를 본다면 망각되는 것은 결핍의 가능성이다. 이미지와 시간의 충돌. 그것을 담는 거라고. 보이는 것으로부터 가능한 한 멀리, 저는 멀리서 보는 것을 좋아합니다.(128쪽)

누군가가 있으면 있다고 없을 때보다도 더 실체가 없는 마음이 있다고. 본 적도 없는 말들이 누구보다도 선명하다고, 내가 언제 기억해두었는지 모를 삶 속에서, 해본 적 없는 질문 속에서, 아무도 내게 말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다 잊어버린 것 같아. 난 항상 불확실한 미래에 중독되어 있었고 미래에도 그럴 것만 같은 느낌이야. 그리울 거 같은 느낌이야. 그런 건 느낌이고 느낌은 언제나 진짜야.(132쪽)

그리고 훗날 나는 그것이 일종의 대화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135쪽)

지금 내가 희미하게나마 기억할 수 있는 것, 아니 현재의 내가 연결될 수 있는 대상은 나일선의 소설이 아니라, 나일선의 소설을 읽었던 과거의 나에 한정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인용한 글들 밑에 과거의 나는 다음과 같은 문장을 적어 놓았다.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글쓰기 사이에서 발생하고 있는 간극, 그것을 시간 안에서 소멸되지 않도록 하는 일. 오히려, 혹은 그것을 위해 이 간극을 글쓰기의 공간으로 전환시키는 작업을 나일선의 소설이 수행하고 있는 걸까. 만약 그렇다면 관건은 기억나지 않는 과거와 경험하지 않은 미래 사이에서 오가는 대화이고, 우리는 그것을 엿들을 수 있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역시 기억의 복원이 아니다. 과거를 복원할 수 있다는 믿음 속에서, 우리는 과거를 탄압하고, 다른 가능성들을 배제해버리기 마련이다. 과거에 대한 탄압과 망각의 폭력에 저항하기 위해, 우리는 비교적 가까운 거리의 과거를 멀리서 보는 법을 익혀야 한다. 그러한 시선 속에서 개진되는 글쓰기를 통해 자유와 저항이 상상될 수, 아니 기억될 수 있다. 나일선 소설의 픽션성은 기억과 상상의 일치에 있으며, 이 일치를 통해 글쓰기-저항 사이의 연결이 가능해진다. 그리고……“훗날 나는 그것이 일종의 대화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강동호 (문학평론가)

9 + 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