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봄, 김멜라

김멜라 「나뭇잎이 마르고」 (『문학동네』 2020년 겨울호)

선정의 말

‘체’이자 ‘도라지’이자 ‘공주’로 불리기도 하는 ‘한나’는 아름다운 외모를 지녔다. 조화롭게 자신을 꾸밀 줄 알고 ‘예술과 신, 그 두 가지에 관해 끝없이 이야기’ 나누기를 좋아하며 ‘사람에게 다가가 마음을 주는 일을 멈추지 않았’던 그녀에게는, 한글 자음을 발음하지 못하는 꼿꼿한 혀와 한쪽으로 휘어진 짧은 왼쪽 다리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 듯 보일 정도였다. 사람들은 모두 그런 ‘체’를 좋아했다. 같은 대학 동아리 후배였던 ‘앙헬’에게도 그녀는 “자신이 다 헤아릴 수 없는 크고 높은 면이 있”는 상대로 여겨졌다. 김멜라의 「나뭇잎이 마르고」는 후배 ‘앙헬’의 눈에 비친 ‘퀴어/장애/여성’ ‘체’에 대한 회고담이자, 나아가 그녀들의 사랑이 왜 실패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회상하는 이야기라 할 수 있다. “합당한 이유”는 없다는 것이 ‘앙헬’의 결론이지만,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 ‘힘의 우열’ 속에서 ‘앙헬’이 혼란스러웠던 것도, 또 그래서 불편했던 것도 사실이다.
우리는 이 소설을 읽으며 ‘퀴어/장애/여성’이 그려지는 방식에 대해 길고 긴 토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토록 아름답고 선한, 결국 성스럽게 느껴지는 타자의 형상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 소설의 앞부분에 등장하는, 결국 자신이 ‘매달려 죽게 되리라는 것을 알았던’ 박해자의 이미지처럼, 「나뭇잎이 마르고」에서는 모든 것을 알면서도 자신의 ‘사랑’을 포기하지 않았던 ‘체’의 선한 의지가 가장 도드라진다. 사회적 약자로부터 세상을 향한 ‘원한’의 특권마저 박탈하는 소설이라고 읽힐 수도 있지만, 메마른 그녀들에게 오히려 ‘시혜’의 권리를 되돌려주는 소설, 달리 말해, 그것이 무엇이든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스스로의 의지대로 할 수 있는 자유를 그녀들에게 돌려주는 소설에 가깝다고 생각된다.
“부당한 이유로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는 존재”들이 사랑을 실천하게 되기까지, 결국 그 사랑의 실천이 “자기를 위해서도 좋은 일”이라고 “느긋하면서도 단단해 보”이는 표정으로 말하게 되기까지, 그녀들은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얼마나 복잡한 제 마음속 무늬를 들여다보아야 했을까.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며 알 수 없는 그 마음의 무늬에 대해 생각하려고 했다. 김멜라 작가는 자신의 소설이 ‘알 수 없음’으로부터 시작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작가의 ‘알 수 없음’과 인물의 ‘알고 있음’ 사이에서 독자를 고민하게 만드는 것이 이 소설의 가장 큰 미덕이 아닐까 생각한다. 조연정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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