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겨울, 전하영

전하영 「그녀는 조명등 아래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문학동네』 2020년 가을호)

선정의 말

전하영의 중편 「그녀는 조명등 아래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의 화자가 회상하고 있는 에피소드는 최근 한국 소설의 주류에 속하는 (특히 여성 작가들의) 작품에서 즐겨 다루어지는 에피소드들에 견줄 때 별반 새로울 것이 없다.

사회 전반적으로 젠더 감수성이 지금에 턱없이 미치지 못하던 시절, 대학생이던 여성이 겪은 위계에 의한 연애담이 이제 와서 낯설 리가…… 구성도 마찬가지인데, 알다시피 이 작품이 차용한 플래시백과 액자 구조는 아마도 단편소설의 역사를 통틀어 가장 자주 사용되어 온 구성법일 것이다.

말하자면 전혀 낯설지 않은 소재를 전혀 낯설지 않은 구성에 따라 쓴 작품이 「그녀는 조명등 아래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이유로 이 작품을 유행에 편승한 고만고만한 작품쯤으로 대접해서는 곤란하다. 드물지도 낯설지도 않은 작품들은 많다. 그러나 제아무리 낯익은 관습에 따라 쓰인 작품일지라도 도드라지게 눈에 띄는 작품이 있는 법이다. 유려하고도 정확한 문체, 섬세한 심리 묘사, 치밀한 세부, 그리하여 낯익은 소설적 관습들의 정수에 도달한 작품들이 그렇다. 그럴 때 우리는 그런 작품들을 두고 ‘고전적’인 풍미가 느껴진다고 말하곤 한다. 오해 없기를……

여기서 ‘고전적’이란 말은 ‘고리타분하다’란 의미가 전혀 아니다. 클리언스 브룩스의 의도와 달리, 시만 아니라 소설 작품에 대해서도 이런 말을 쓸 수 있다면, 전하영의 「그녀는 조명등 아래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는 ‘잘 빚어진 항아리’다. 김형중(문학평론가)

1 + 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