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가을, 우다영

우다영 「태초의 선함에 따르면」(『문학과사회』 2020년 여름호)

선정의 말

특정할 수 없는 어느 시기, ‘각성’이라 불리는 (명백히 ‘감염’을 연상시키는) 현상이 발생한다. 그 현상은 ‘아즈깔’이라는 식물에서 유래한 것인데, 이른바 ‘각성한’ 사람들은 현생을 포함해 인류가 겪어온 모든 생을, 심지어 아직 겪어 본 적이 없는 미래의 생까지도 낱낱이 기억해낼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우다영의 「태초의 선함에 따르면」은 SF 소설인가? 그렇게 읽을 수는 없을 듯하다. 차라리 이 소설은 존재론적이거나 윤리학적인 소설에 가깝다. 저 각성 현상의 효과를 극한까지 밀어붙일 때, 우리가 마주하게 되는 질문이 ‘나를 타자와 구별되는 나이게 하는 것의 경계는 무엇인가?’, 그리고 ‘타인의 삶을 완전히 내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을 때 세계는 어떻게 변하는가?’이기 때문이다. ‘타자 윤리’는 얼마 전까지 한국문학의 정언명령이었고, 그것의 변주이자 반성으로서의 ‘자기 윤리’(혹은 ‘정치적 올바름’)는 작금의 가장 중요한 문학적 화두다. 우다영의 「태초의 선함에 따르면」은 바로 그 윤리가 실현되었을 때, 우리가 맞이하게 될 세계를 우화적으로 미리 보여준다. 나와 너의 차이와 경계가 사라진 그 동질적 세계는 얼마간 쓸쓸하고 허무하지만 (왜냐하면 모든 일들이 이미 일어났거나 일어날 일이므로), 그러나 말할 수 없는 관용과 평정의 세계이기도 하다(왜냐하면 ‘나’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사람들의 숫자만큼의 ‘입장들’을 모두 이해할 수 있으므로). 말하자면 우다영의 「태초의 선함에 따르면」은 우리가 맞이하려고 노력해야 할 세계의 미리보기다. 김형중(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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