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봄, 임솔아

임솔아 「희고 둥근 부분」 (『자음과모음』 2020년 봄)

선정의 말

임솔아의 「희고 둥근 부분」은 문자 그대로 우리의 망막에 존재하는 ‘희고 둥근 부분’에 대한 이야기다. ‘맹점’이 그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맹점은 시신경 다발이 가장 많이 밀집되어 있는 곳이지만, 바로 그 이유로 가시성 바깥의 영역에 놓인다. 눈은 그 맹점을 볼 수 없다. 존재하고 또 우리를 볼 수 있도록 하는 기능을 하지만 정작 그 자체로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가시/비가시의 ‘경계’, 그것이 맹점이다. 작중 로희가 찾아나서는 것도 그런 의미에서라면 맹점의 일종이다. 지도에는 분명 그려져 있지만 실물로서는 확인되지 않는 경계…… 그러나 이 소설에서 맹점 찾기 모티브는 로희의 작업에 그치지 않는다. 진영에게도 맹점은 있다. 신체적 원인을 발견할 수 없는 ‘미주신경성 실신’도 맹점이겠고(원인이 부재하는 결과이므로), 자신이 가르치던 제자 민채의 고통도 진영에게는 맹점(고통의 표현은 있지만 그 깊이는 가늠되지 않으므로)이다. 로희에겐 어린 시절 산 채로 묻어버렸을 (수도 있는) 비둘기가 맹점이고, 이모에게는 친구 인숙의 죽음이 맹점이다. 민채에게도 맹점은 있는데 교통사고 당시 자신의 몸 아래에 깔려 죽어가던 이의 기억이 바로 그것이다. 이렇듯 이 소설에서 맹점은 (내가 초래한, 혹은 외면한) 타인의 고통에 대한 기억의 은유가 되는데, 그 기억이야말로 망막으로 치자면 희고 둥근 부분에 해당한다. 왜냐하면 기억의 쾌락원칙에 따라 삭제되고 억압되고 은폐된 지점, 그래서 우리가 영영 들여다볼 수 없게 되어버린 지점이 바로 거기일 것이기 때문이다. 타인의 고통에 대해 우리의 기억은 항상 맹점을 포함하고 있게 마련이다. 그럴 때, 작중 진영이 로희에게 던지는 다음과 같은 질문은 이 소설의 주제를 그대로 압축한다. “안 보이는 것을 어떤 방식으로 보여줄 수 있어?” 맹점에게는 몫이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비가시성의 장으로 밀려나 버린 기억들이 복합체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에 어떻게 몫을 돌려줄 수 있을까? 그것에 어떻게 합당한 몫의 말들을 부여해줄 수 있을까? 지극히 윤리적인 이 질문은 결국 문학의 본질을 향해 있기도 하다. 작가 임솔아가 지금 어떤 고민 속에서 힙겹게 한 발 한 발 타인들의 고통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지 얼추 짐작이 간다. 김형중(문학평론가)

관련 작가

임솔아 소설가, 시인

1987년 대전 출생했다. 2013년 중앙신인문학상에 시로, 2015년 문학동네 대학소설상을 수상하며 소설로 등단했다. 장편소설 『최선의 삶』과 시집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이 있다. 자세히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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