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여름, 강화길

강화길 「가원( 佳園)」(『자음과모음』 2020년 봄)

선정의 말

친밀한 이방인의 역설

강화길의 「가원(佳園)」은 여성의 호(號)로 쓰이는 이름을 택호(宅號)한 집과 그 집 사람들 이야기다. ‘아름다운 정원’이란 택호의 주인은 저명한 서예가였는데, 그 아들이었던 박윤보와 외손녀 ‘나’의 관계와 관련한 ‘다 지난’ 이야기가 그 집 언저리에서 펼쳐진다. 이 소설의 말미에서 주인공은 이런 질문을 던진다. “왜, 어째서, 그 무책임한 남자를 미워하는 것이, 이 미련한 여자를 사랑하는 것보다 힘든 것일까. 왜 나는 항상 이 여자 때문에 미칠 것 같은가.” 그렇다면 왜 이런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을까, 주인공의 질문에 대한 독자의 질문을 던지고 푸는 것이 곧 이 소설을 읽는 것이 된다.
박윤보는 아버지와 달리 컨트리음악에 심취한 음악가로 살고 싶지만 끝내 실패하고 만다. 제대로 밥값을 한 적이 없었던 그는, 선친의 집인 ‘가원’을 판 돈마저 주식 투자를 하다 폭삭 망해 집안을 어렵게 만든다. 심지어 외손녀인 주인공의 학원비를 가방에서 몰래 야바위꾼처럼 훔치기도 한다. 그토록 무책임한 존재였지만, 주인공에게는 애착의 대상이었다. 부모가 이혼한 후 다섯 살 때 ‘가원’으로 온 주인공에게 유일하게 따스한 웃음으로 대해 주고 놀아준 이가 바로 외조부였기 때문이다. 그의 존재는 어린 동심을 채워 준 일종의 판타지였다.
반면 박윤보의 아내, 그러니까 주인공의 외조모는 도무지 애호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무책임한 남편 탓으로 젊은 시절부터 화장품 방문 판매를 하며 가사를 책임져야 했던 사정 때문이었을까. 그녀는 매사에 밥값을 강조하고,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를 요구한다. 이혼한 딸과 함께 들어온 어린 외손녀에게 그토록 매정하게 밥값과 경쟁을 강조했기에 주인공은 일말의 애착도 없이 두렵기만 하다. 때로는 어린 주인공에게 괴물과도 같은 그로테스크한 존재로 비치기도 하고, 때때로 미련한 존재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외조모의 밥값 강조 덕분에 주인공은 치과의사가 되어 밥값을 하는 존재가 되었다. 그럼에도 주인공은 왜 그녀를 사랑할 수 없는 것일까. 이미 치매에 걸린 상태임에도 그녀는 결코 연민의 대상으로 다가오지도 않는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서사적 현재 시점에서 주인공네 가정은 외조모-모-나, 이렇게 여성 삼대로 구성되어 있다. 아버지는 다섯 살 때 어머니와 이혼한 후 가정 밖으로 나갔고, 외조부는 열일곱 살 때 교통사고로 떠났다. 이 가정의 가족 그 누구도 택호인 ‘가원’처럼 아름다운 정원을 누리며 살지 못한다. 무책임한 외조부도, 미련한 외조모도 그러지 못했다.
주인공은 외조모의 계보에서 밥값을 하며 사는 존재라는 점에서, 무책임한 외조부는 이 가정의 이방인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방인이 괴물처럼 비치기보다 친밀하게 받아들여지고, 오히려 공동체 안의 존재인 외조모가 괴물처럼 받아들여지는 어긋난 사태, 바로 이 지점에 이 소설의 문제성이 있다. 아마도 애착의 대상이었던 외조부로부터 배신을 당하기 훨씬 전부터 외조모로부터 상처받은 아이였다는 점, 그 상처를 치유하고 관계를 개선할 적절한 기회를 가지지 못했다는 것, 그리고 자신 또한 그런 외조모와 그리 다른 존재가 아니라는 점 등이 ‘미련한 여자’상을 조성한 것으로 생각된다. 아울러 끊임없이 강요되는 경쟁 사회의 밀림에서 밀리지 않으려고 버둥거리며 살아오면서 주인공이 놓쳐버린 어떤 정서나 가지 않은 길을, 외조부가 심취했던 컨트리음악의 어떤 음조나 무책임하지만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살았던 외조부의 초상에서 발견하게 되기에, 이방인이지만 여전히 친밀한 이방인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따지고 보면 괴물 같은 가족이나 친밀한 이방인이나 할 것 없이 주체와 전혀 다른 존재가 아니었다. 타자성의 영역으로 밀어낼 수만은 없는 주체의 위상과 함수관계에 있는 어떤 것이었다. 주인공 안에 모순처럼 복합적으로 존재하는 삶에 대한 혼돈스러운 태도와 가치, 그런 것을 ‘무책임한 남자’와 ‘미련한 여자’는 각각 표상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강화길의 아름다운 정원 안에는 아름답게 살기를 욕망하지만 아름다울 수 없는 삶의 곡절을 상처처럼 겪으며, 때로는 무책임한 남자처럼, 때로는 미련한 여자처럼 사는 처지와 풍경들이 빛바랜 흑백사진처럼 펼쳐진다. 「가원」은 결코 아름다운 정원의 이야기가 아니지만, 소설로서는 아름다운 가작(佳作)이다. – 우찬제(문학평론가)

관련 작가

강화길 소설가

1986년 전주 출생. 201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소설집 『괜찮은 사람』 『화이트 호스』, 장편소설 『다른 사람』이 있음. 자세히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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