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봄, 장류진

장류진 「펀펀 페스티벌」(『문학동네』 2019년 겨울호)

선정의 말

장류진의 「펀펀 페스티벌」은 이른바 밀레니얼 세대의 풍속과 곤혹을 매우 실감 있게 점묘한 작품이다. 배타적 무한 경쟁보다는 협력하면서 경쟁하는 컬래버레이션이 중시되고, 소유보다는 접속이나 공유가 변화하는 흐름인 상황에서 어떻게 나의 개성과 진실을 지키면서도 사회에서 도태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런 고뇌의 소산이다. ‘나’를 중시했던 X세대의 ‘Me코노미’와 달리 ‘우리’가 강조되는 밀레니얼 ‘We코노미’ 세대의 애환과 곤혹의 풍경이 인상적이다.
소설은 5년 전 어떤 그룹 합숙 면접 때 있었던 ‘펀펀 페스티벌’ 이야기를, 송년회 자리에서 회상하는 것으로 진행된다. “이번에 합격하지 못할 경우 또다시 주어진 테마에 맞게 삼천 자 이내로 자기를 소개해야 하는, 인생에서 가장 지리멸렬하고 굴욕적인 글쓰기를 반복해야” 하기에 “아무래도 내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에서” 주인공 지원은 “정말이지” “간절”하게 이 면접을 준비한다(『문학동네』 2019년 겨울호, p. 329). 물론 “그렇게 스펙을 쌓아놨더니 이제 와서 끼와 개성, 창의성을 펼치라니”(p. 339)라며 억울해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오로지 끝까지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한다. 결과만이 아니라 그것을 준비하는 과정을 진실함을 평가하지 않을까 기대하는 지원과는 달리, 대형기획사 연습생 출신 이찬휘는 결과적으로 자신이 살아남기 위한 성취 그 자체의 과실을 탐하는 인물이다. 주인공이 협력을 더 중시한다면 이찬휘는 협력의 과실을 자기화하는 데 특기를 보인다. 마지막 연습에서 지원에게 “이상한 쪼”가 있다고 조소하는 바람에 주인공은 기조를 잃고 자기 끼와 개성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다. 결과적으로 지원은 떨어졌고, 이찬휘는 합격했다. 5년 후 송년회에서도 그런 이찬휘의 기질은 반복적으로 재현된다.
5년이 지나면서 주인공도 “사회생활이라는 게 늘 합당한 근거나 논리적인 이해관계에 의거해 이루어지는 것만은 아니며 능력이나 역량의 객관적 판단 같은 건 허상에 불과하다는 것쯤은 아는 나이가”(p. 342) 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이찬휘의 처신은 그 경계를 넘어서는 어떤 것이 있다. 그렇다보니 지원은 “어떻게 저렇게 뻔뻔할 수 있지? 대체 무엇이 저 아이를 저렇게 만든 걸까?”(p. 344), 혹은 “어떤 사람은 전부 알아도 쉽게 나서지 못하는데 왜 어떤 사람은 조금만 알아도 다 아는 것처럼 나설 수 있는 걸까”(p. 345) 같은 비판적인 질문을 던지게 된다. 5년 전에도 그에게 느꼈던 불편한 감정이었다. 그런데 그런 얄미운 이찬휘에게 “일말의 감정도 남아 있지 않았다”(p. 346)고 말하는 대목은 예사롭지 않다. 이찬휘가 잘 생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껍데기일 뿐이지만 이런 껍데기는 귀하다고”와 같은 솔직한 이끌림, 그러면서도 “난 정말 쓰레기야. 난 육신의 노예야. 제발 누가 날 좀 말려”(p. 346)처럼 반성적 성찰을 보이기도 하는 복합성이 지원의 캐릭터를 넉넉하게 한다. 그런 과정을 거쳐 지원은 어렵사리 “내 ‘쪼’”(p. 347)를 찾아나간다.
이렇게 경쟁과 협력 사이의 가치와 실천의 문제, 육체와 외모의 문제, 틀에 박힌 요구된 삶과 자신만의 개성적 삶의 문제 등을 복합적으로 궁리하면서, 밀레니얼 세대의 역동적 좌표를 탐문하려 한 소설이 바로 「펀펀 페스티벌」이다. 재미 넘치는 ‘펀펀 페스티벌’처럼 삶이 이어지기를 바라지만 그런 페스티벌은 거듭 미루어지기만 하는 상황에서, 청년들은 과연 어떻게 자기 삶을 견디며 희망을 견인할 수 있을 것인가, 작가 장류진의 질문은 결코 예사롭지 않다._우찬제(문학평론가)

관련 작가

장류진 소설가

2018년 창비신인소설상으로 등단. 소설집 『일의 기쁨과 슬픔』이 있다. 자세히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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