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가을, 허희정

허희정 「실패한 여름휴가」 (『문학과사회』 2019년 가을호)

선정의 말

허희정의 「실패한 여름휴가」는 여름휴가에 관한 소설이지만, 동시에 ‘실패’에 관한 소설이다. 단속적인 리듬의 현재형 일인칭 문장들은 무언가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을 포기한 것처럼 보인다. 문장들은 “점도를 잘못 맞춘 반죽처럼 툭, 툭 끊어지는 나날”들을 향한다. “고통의 실체에 대해서 똑똑히 기록한 사람은 아무도 없어서 나는 아무것도 참고할 수가 없다.” 참고할 수 없기 때문에 고통에 관한 문장들은 ‘진공의 상태’에 있는 느낌을 자아낸다. “끝나지 않거나 없어지지 않을 것 같은 것이 그 자리에 분명히 있고, 나는 진공의 고통을 생각한다.” ‘분명히 있는’ 어떤 것들을 묘사하는 것은 가능하겠지만, ‘진공의 고통’ 속에서 감각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고통을 지우는 방식으로 기능하는 고통”만이 남는다.
휴가에 대해 말한다 해도 그럴 것이다. “있던 곳으로 되돌아갈 수 없는 휴가는 휴가가 아니지, 그런데 내가 휴가를 가고 싶기는 했던가”라는 질문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고 싶을 뿐이다. 개입하고 싶지 않다”라는 무력한 고백이 엇갈린다. 휴가에 관한 상념은 휴가의 환상과 휴가의 형식을 배반한다. 수영장에 갈 계획은 쇠락한 해변 마을에 와 있는 것으로 바뀌었고, “네가 고통스러웠으면 좋겠어”와 같은 사소한 적의의 말들은 “잘못 바른 접착제”처럼 계속 되풀이된다. “적의는 그 이름과 달리 뭉뚝하고 부드러우며 둥글게 덩어리져 있”는 감각의 세계이다. 사건과 관념의 세계는 감각의 세계로 대체되지만, 그 감각이 정확하다고 단언할 수 있는 글쓰기는 없다.
실패에는 몇 가지 층위가 있다. 수영장에 가고 싶었으나 쇠락한 해안 도시에 오게 된 실패가 있다면, 실패를 둘러싼 강렬하고도 모호한 갈망이 있다. “이미 한 번 실패한 여름휴가를 되돌려놓을 방법은 없다. 아니, 아직 우리는 실패하지 않았다.” 여름휴가는 어쩌면 실패했지만, 완벽한 단 하나의 실패는 아직 오지 않는다. “나는 열렬히, 그리고 적극적으로 배신자가 되고 싶다. 배신을 누적하고 싶다. 실망을, 실패를, 그것이 나를 압사 시킬 때까지 누적시키고 싶다,” 하지만 ‘나’는 동시에 “압사에 실패하고 싶다.” 일인칭 화자는 “스스로를 박탈하는 일의 즐거움”에 빠진 사람처럼 보인다. “내가 온전히 나였던 적조차 없”고 ‘기억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실패의 가장 아래 층위는 부정문과 가정법이 넘쳐흐르는 문장의 리듬이 보여주는 ‘실패의 글쓰기’에 자체에 위치한다. “오로지 오해들로만 설명”되는 텅 빈 감정과 감각의 세계가 있다. 스스로를 박탈하는 일인칭의 글쓰기. “뒤로 물러나 있는 장면들” “기록되지도 기억되지도 않는 순간들”에 관한, 기어이 실패하려는 어떤 미완의 글쓰기. _이광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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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희정 소설가

1989년 서울 출생.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및 같은 과 대학원 재학 중 자세히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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