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가을, 천희란

천희란 「우리에게 다시 사랑이」 (『현대문학』 2019년 7월)

선정의 말

천희란의 「우리에게 다시 사랑이」는 아니 에르노의 이런 문장을 제사로 삼아 시작한다. “지난 5개월간 벌어진 세계적인 뉴스들 가운데 하나를 한 페이지 정도로 자세히 써내라고 한다면, 나는 할 수 없었다”…… 실은 한 페이지가 아니라 수백 페이지로도 써낼 수 없는 이야기들이 있는 법이다. 굳이 세계적인 뉴스가 아니라도, 삶의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들에 대해 쓰는 일은 대체로 다 그렇다. 그러나 다행히 문학이 있다. 문학의 언어는 법의 언어와 달라서, 가령 사랑과 폭력 사이에 ‘무죄/유죄’의 법적 이분법으로는 결코 이해될 수 없는 얼마나 다양한 정념들의 스펙트럼이 존재하는지를 보여준다. 애증과 학대와 광적인 열망과 분리불안, 유치한 자기기만과 절망벽, 그리고 이어지는 후회와 그것을 다시 뒤집는 후회……, 법의 언어를 초과하는 그런 정념들이 동시에 뒤얽히고 병존하는 비식별역 속에서, 우리는 상처를 주거나 받고, 죄를 짓거나 모면한다. 법적으로 무죄인 자가 문학적으로는 유죄일 수 있고, 법적으로 실패한 소송이 문학적으로는 성공한 소송이 되기도 하는 사례가 세계 문학사에 즐비한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천희란의 (굳이 이름 붙이자면) ‘포스트미투소설’이 기록하고자 하는 바가 바로 그 비식별역인 듯하다. 작가는 단순하게 단죄하지 않고, 단순하게 면죄하지 않는다. 그러나 당찬 결기 속에서 단숨에 써 내려간 듯한 문장들의 온도로부터 견디기 버거울 만큼 뜨거운 통증이 전해져 온다. 소설은 다시 에르노를 인용하며 마무리된다. “그 사람은 이것을 읽지 않을 것이며, 또 그 사람이 읽으라고 이 글을 쓴 것도 아니다.” 이 문장의 이면에서 ‘문학장의 미투’가 아니라 ‘문학적 미투’에 대한 작가의 선언을 읽는다면 과장일까? _김형중(문학평론가)

관련 작가

천희란 소설가

1984년 경기도 성남 출생. 2015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소설집 『영의 기원』이 있음. 자세히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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