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여름, 정영수

「내일의 연인들」 (『자음과모음』 2019년 여름호)

선정의 말

침범

소설의 이해를 돕고자 영화로 빗대자면, 「내일의 연인들」은 미소(이솜)와 한솔(안재홍)이 소망하던 보금자리를 잠시나마 찾은 「소공녀」의 외전이자, 자신의 현 위치에서 벗어나고 싶은 기우(최우식)와 기정(박소담)이 다시 꿈꾸는 「기생충」의 외전이다.
그저 떠올림의 차원으로 소설과 영화를 맞대어보는 것이 아니라, 두 영화와 더불어 「내일의 연인들」을 통해 계속 곱씹게 되는 고민은 다음과 같다. 인간은 왜 자신에게 찾아든 행복감을 계속 누리는 데 거쳐야 할 선을 넘지 못하고, 외려 자신의 즐거운 생활을 의심하며 쾌락을 느끼는 자신을 벌주는 데 도가 트는가.
정영수는 어느 연인의 일상으로 우리를 초대해 행복을 실현시켜주리라 여긴 공간을 속 시원하게 ‘누비지’ 못하고, 원했던 삶 속 쾌감을 극도로 ‘누리지’ 못하는 현대인의 초상을 흥미로이 그려낸다. 특히 소설에서 정안이 사랑하는 사람인 지원과의 관계를 구원과 구조라는 단어로 복기해보는 대목은 사뭇 인상적이다. 정안은 지원과 원하는 연애를 해나가지만 그럴수록 사랑의 지속 가능성을 모색하는 대신, 자신의 계층과 형편에서 연유한 어둑한 속사정에 신경을 곤두세운다. 소설 속 연인은 ‘구원으로서의 사랑’이란 사랑의 정의를 좇기보단, “구원까지는 아니어도” 진저리 나는 가족의 품으로부터 잠시 서로를 ‘구조할 수 있는 연인 관계’라는 위치에 자족한다. 사랑하는 사이에서 구원과 구조는 감동적이지만, 정영수는 두 단어가 자아내는 뭉클함에 젖은 연인의 하루하루를 조망하지 않고 이제부터 어떻게 서로가 서로를 감당할 수 있을까라는 불안감의 기미에 초점을 맞춘다.
이때 선애 누나의 제안으로 마련된 빈집은 연인이 서로의 매력을 만끽하며 충분히 감동할 수 있는 애정의 형성·성장을 도모하는 공간에서 언제든 불화와 결별, 불행이 일어날지도 모르기에 자신의 행복을 단속하게 되는 공간으로 변모한다.
소설을 다 읽고 작품의 제목을 다시 쳐다보자. 정영수는 「내일의 연인」이 아니라, 「내일의 연인들」이라고 제목을 지었다. 이 작품에서 유일하게 선을 (은근히) 넘는 사람이 있다면 소설가 정영수일 것이다. 그는 소설에 갇힌 연인의 연애담을 안전하게 바라보는 우리가 있는 선을 침범한다. 그러면서 행복과 욕망의 선을 넘는 시도를 두려워하게 된 젊은 연인의 이야기가 과연 두 사람만의 것인가라고 묻는 듯하다. 이러한 침범이 자아내는 불안과 위안 사이에 문학의 묘미가 있다.
_감정사회학 연구자 김신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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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수 소설가

1983년 서울 출생. 2014년 창비신인소설상으로 등단. 자세히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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