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봄, 장희원

「우리의 환대」(『Axt』 2019년 3/4월호)

선정의 말

두근두근, 환대의 역설

 

“너무 좋아서 가슴이 두근거려, 아빠.” 아들이 좋아하는 축구의 본향인 영국에서 프리미어리그 경기를 보러 갔을 때, 어린 아들은 그렇게 말했었다. 축구는 아이에게 가장 큰 선물이었고, 프리미어리그 경기를 직접 관람하게 된 것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선사한 기꺼운 환대였다. 그런데 그 이후 아버지는, 그리고 어머니도, 아들이 그렇게 가슴 두근거리는 축복의 경험을 누리는 것을 보지 못한다. 시간이 흐르고, 서사적 현재 시간에 아들은 호주 남서부 끝에 위치한 퍼스에 거주하고 있다. 3년 만에 재현 부부는 아들을 만나러 호주로 간다. 아내는 아들에게 필요할 것이라며 이것저것 상자에 챙겨 직접 들고 비행기에 탑승할 정도로, 아들과의 재회에 거는 기대가 크다.

그런데 현지에 도착한 부부가 마주친 풍경은 그들이 상상하고 기대했던 그런 것이 아니었다. 단지 택시기사인 줄 알았던 흑인 노인과 어린 여자애 민영과 아들이 함께 지내는 집은 축사(畜舍)처럼 너저분했다. 그럼에도 그 ‘우리[畜舍]’ 안에서 아들과 흑인 노인과 민영은 거리낌없는 ‘우리’가 되어 ‘잘’ 살고 있었다. 나름대로 동숙인의 부모를 환대하기 위해 노인과 민영은 이런저런 준비까지 한 상태였다. 하지만 환대는 소통의 지평을 형성하지 못한다. 그들이 애써 준비한 음식을 재현 부부가 제대로 삼키지 못하고 뱉어내는 장면이 거부된 환대의 그로테스크한 풍경이다. 결과적으로 어렵게 준비해 가져온 어머니의 상자는 아들에게 전달되지 못한다. 아들의 환대와 어머니의 상자가 교환되지 않았다는 것, 이 문제적인 지점을 이 소설은 파고든다.

평균적인 한국인 중년이 지닌 상식적인 기대와 그 좌절의 서사는 거꾸로 그런 기대의 허구성을 추문화한다. 건너편 반듯한 주거지역의 주택이 아닌 공간, 한국인 남성 동료가 아닌 흑인 노인과 문신까지 있는 어린 여자애라는 동숙인의 성격에 대한 이 부부의 실망은 그 자체로 상식적인 기대가 얼마나 세속적이며, 또 타자적인 것들을 억압하기 쉬운 마음 무늬들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마치 아들이 고등학생 때 포르노를 본다고 사정없이 폭력을 가해, 아들로 하여금 더할 나위 없이 트라우마에 젖어들게 했던 것처럼, ‘우리[畜舍]’ 안의 ‘우리’의 환대를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들의 어설픈 촌극으로 밀어낸 것은 아닌지 성찰하게 한다. 부모 세대와는 달리 아들 세대는 자신들의 자리에서 새로운 길을 기꺼이 자유롭게 내려 하는 모습을 보인다. 체면이나 의식적인 조건들을 중시했던 이전 세대들과는 달리, 자기가 좋아서 두근두근 기쁘게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활달하게 탈주하는 새로운 세대들의 새로운 환대의 방정식을, 신예 장희원은 활달하게 그려냈다. _ 문학평론가 우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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