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봄, 백수린

「아직 집에는 가지 않을래요」(『창작과비평』 2019년 봄호)

선정의 말

백수린, 아직 집에는 가지 않을래요

프로이트가, 꿈에 등장하는 집은 대체로 여성의 몸을 상징한다고 말할 때, 그 말이 임상 사례들에 대한 분석을 통해 귀납적으로 얻어진 결론인지 아니면 전통적인 성역할 이데올로기로부터 자명하게 연역된 결론인지는 모호하다. 그러나 백수린의 「아직 집에는 가지 않을래요」에 등장하는 “붉은 벽돌집”이 한국 중산층의 꿈 ‘홈 스위트 홈’인지, ‘여성(성)의 폐허’ 위에 세워진 상상적 유토피아인지는 명확하다. 남편은 잔디를 깎고, 아내는 바비큐를 굽고, 아이들은 그네를 타는 일요일은 안온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안온함이 여성의 ‘몸’과 욕망의 포기 위에 세워진 것이라면 그 집은 폐허다. 희주가 한 여름날, 뼈대만 남은 붉은 벽돌집 마당의 숨 막힐 듯한 적막 속에서 본 것이 그 몸의 폐허일 것이다. 물론 소설은 안온한 페허와 위험한 욕망 사이에서의 망설임, 그간 한국 여성소설에서 자주 등장하곤 했던 그 익숙한 양가적 상황을 경과한다. 그러나 이 단편의 결말은 그 망설임으로부터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그녀는 안다. 집은 곧 새로 지어질 것이라는 걸. 그러나 “그 집은 그녀가 알던 집과는 완전히 다를 것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프로이트는 집이 여성의 몸을 상징한다고 했다. 희주는 아마도 전혀 다른 주체가 되기로 작정한 듯하다. _ 문학평론가 김형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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