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겨울, 정용준

「사라지는 것들」(『문학동네』 2018년 겨울호)

선정의 말

물어보지 못한, 물어봐주지 않은, 그 숨바꼭질

―정용준, 「사라지는 것들」

살면서 누군가에게 물어보지 못한 것들이 많다. 혹은 남이 물어봐주었으면 하는데 물어봐주지 않는 것들이 많다. 그래서 끝내 알지 못하는 것들, 소통되지 않고 잉여의 섬처럼 떠도는 것들이 많다. 떠돌다 시나브로 휘발되거나 사라지는 것들, 그렇게 사라지는 것들의 어떤 단면을 작가 정용준은 해부해 보인다. 「사라지는 것들」은 세상의 어머니들에게 물어보지 못했던 것들, 혹은 자식들이 좀 물어봐주었으면 하는데 그러지 않아 말 못 하고 내면에 상처처럼 끌어안고 있었던 어머니들의 속 깊은 사연들과 관련된 이야기다. 어쩌면 그 둘 사이의 숨바꼭질을 닮은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 “그만 살기로 했어”(『문학동네』 2018년 겨울호, p. 197. 인용 시 페이지만 표기). 어느 날 느닷없이 엄마는 아들에게 말한다. 가뜩이나 일이 안 풀려 스트레스가 많은 아들 입장에서는 짜증부터 앞선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냐는 항변에 엄마는 답한다. “너희들은 언제 나랑 뭘 상의한 적 있었니? 그리고 내가 그걸 말하면 너희들은 내 말을 들어주지 않을 거잖아. 상황을 바꿔줄 능력도 없고”(p. 199). 엄마의 상황은 실존적으로 매우 고립되어 있고 위축되어 있는 듯 보인다. “겨울 칩거/처에게도 자식에게도/ 숨바꼭질”(p. 210). 그녀가 지목한 하이쿠의 한 구절처럼 소통이 불가능한 숨바꼭질을 하고 있는 느낌이다. 그렇게 칩거하다 보니 모두가 모르는 얼굴이 된다. 엄마가 하이쿠처럼 흉내 낸 이런 대목처럼 말이다. “거리를 걷는 사람들/모두 모르는 얼굴/거울 속 내 얼굴도 모르겠네”(p. 203). 남은 물론 자기 스스로도 모르는 얼굴이 되었다는 이 낙담, 절망이 무척 안타깝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남편은 자기와의 싸움을 한다고 가족을 버린 채 살다가 바다에 빠져 죽었고, 세 살 어린 손녀는 너무나 허망하게 할머니가 보는 앞에서 교통사고로 죽는다. 특히 손녀의 죽음에 그녀는 무한 책임을 느낀다. 성격이 더 차분한 다섯 살 큰 아이의 손을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큰아이가 아니라 둘째 지인의 손을 잡고 있었더라면 그런 참척의 고통은 없었을 거라고, 그 일의 나비효과로 아들 내외가 이혼하는 일도 없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 이후 어떻게 되었나? 자식들이 아무도 물어봐주지 않았던 이야기를 엄마는 이렇게 풀어놓는다.

그리고 병이 생겼지. 난 그 병을 고쳐보겠다고 별 지랄을 다 했다. 그 병이 나으면 다른 병이 생겼고 그 병을 겨우 다스리니까 합병증이 생기더라. 몇 년 동안 뭘 제대로 속시원하게 먹어본 적이 없다. 이것도 안 되고 저것도 안 되고. 먹든 안 먹든 아픈 것은 똑같더라. 하루에도 수십 번씩 머리가 아프다. 누가 날카로운 걸로 왼쪽 머리를 후벼파는 것 같다. 심장에 문제가 생겨 두 번이나 응급시술을 받았다. 눈도 갑자기 흐려졌고 고혈압 약은 먹어도 먹어도 끝이 없다. 문에 살짝 부딪혔을 뿐인데 발가락이 썩고 다른 발가락들도 썩고. (p. 215)

아이를 보내고, 전처와 이혼하고, 직장에서 나와 스타트업 회사를 차리고, 뭔가 제대로 풀리지 않는 자기 삶 때문이었는지, 아들 입장에서 어머니를 보살피지 않고 헤아리지 않아 알 수 없었던 이야기들이다. 물어보지 않았던 이야기들이다. 물어보지 않은 결과, 물어봐주지 않은 결과는, 그렇게 엄마를 삶의 종착역으로 이끌었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 도대체 알 수 없고, 그러기에 존재의 이유를 알 수 없다고, 그저 피곤하다고 하는 엄마의 말에는 진한 페이소스가 느껴진다.

내 삶은 왜 이럴까. 이유를 생각해본 적도 있었어. 죄가 있었겠지. 운이 없었겠지. 실수를 했겠지. 나쁜 선택을 했겠지. 누가 나를 미워하는 거겠지. 하지만 모르겠더라. 극복해보려 애썼는데 뭘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 건지 몰라 아무것도 못했다. 그 후로 모른 게 다 치욕이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뻔뻔하게 사는 것도. 따뜻하지도 않고 차갑지도 않은 미지근한 분위기도. 화를 내지 않으려고 전력을 다해 노력하는 지인 엄마를 보는 것도. 이제 날 좀 내버려둬라. 그만. 그만하고 싶어. 피곤해. 너무 피곤해. (pp. 215~16)

연애 시절 아내가 좋아했던 노랫말에 “두려워하는 건 반드시 찾아와”가 있었는데, 주인공은 그다음 말이 떠오르지 않다가 겨우 알게 된다. “이제야 모든 걸 알겠냐고 묻곤 하지.” 찾아온 두려움을 경험하고야 비로소 알게 되는 사태들, 진실들. 주인공과 그의 엄마, 이 모자 공히 그랬던 것이다. 이번 소설 「사라지는 것들」은 정용준 소설의 새로운 지평을 예감케 한다. 훨씬 숙성된 상상력으로 성숙한 서사의 단계를 발견하면서 자신의 소설 세계를 혁신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이 삶에 대한 깊은 고뇌와 통찰에서 비롯된 것처럼 보여서 아프도록 미덥다. _ 우찬제 (평론가)

관련 작가

정용준 소설가

1981년 전남 광주에서 태어나 조선대학교 러시아어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를 수료했다. 2009년 『현대문학』에 단편 「굿나잇, 오블로」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단편 「떠떠떠, 떠」가 제2회 젊은작가상에, 단편「가나」가 제1회 웹진 문지문학상 자세히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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