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겨울, 박민정

「나의 사촌 리사」(『창작과비평』 2018년 겨울호)

선정의 말

박민정, 나의 사촌 리사

「나의 사촌 리사」는 지난겨울 일주일간 도쿄에 사는 사촌을 방문한 ‘나’의 회상으로 이루어진 소설이다. 소설가인 ‘나’는 유년기 때부터 일본 아역배우 기획사에서 트레이닝을 받아 한때는 유명한 아이돌 그룹 멤버로 활동했지만, 벌써 십몇 년 전에 계약이 해지되어 아키하바라 전자상가의 축제나 노조의 춘투 현장 같은 데서 공연도 하다가 지금은 삼십대 중반의 프리터로 살아가는 사촌 리사의 이야기를 꼭 소설로 쓰고 싶다. 그러나 마음먹고 도쿄까지 와서도 여전히 망설이고 있다. “소녀들의 워너비였으나 짜릿한 실패를 맛보고 소시민으로 겨우 살아가는 리사”를 생각하고 왔는데 한물간 아이돌로 몰기엔 그녀가 너무나도 평범하게 잘 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단지 그 때문만이 아니기도 하다. 박민정 소설의 다른 주인공들이 그렇듯 리사 역시 복수의 정체성 표지들이 중첩되어, 예컨대 쇼 비즈니스 시스템, 민족 차별, 노동조합 운동, 성폭력, 성착취, 오타쿠 문화, 프리터 노동 등 한 손으로는 꼽을 수 없는 여러 겹의 옷을 입고 있다. 사촌에 대해 알아갈수록 ‘나’는 그녀에 대해 모르게 되거니와, 게다가 소설 속 인물에 대해 “언제나 ‘작가의 목소리’를 담지하고 있어 작위적”이라거나 “작가의 피씨한 주제의식에 맞게 움직이는 마리오네뜨, 괴뢰인형 같다”는 박한 평을 받곤 했던 것 때문에 더욱 망설이고 자신감을 잃는다(『창작과비평』 겨울호, p. 128. 인용 시 페이지만 표기).

마침내 도쿄를 떠나면서 ‘나’는 노트북을 꺼내 리사가 아이돌 그룹의 노래를 부르는 장면의 초고를 지우고 일본철도 노조의 한 아저씨가 리사에게 보내는 편지로부터 시작하는 새로운 초고를 쓴다. 이러한 수정은 무엇을 의미할까? 최종적인 교정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결정적인 권위를 지니는가? “실제의 리사를 빼닮은 모습이든 아니든, 나는 리사를 핍진하게 그려내고 싶었다. 그러나 그러려면 언제나 리사에게 미안해진다. 왜냐하면 내가 리사에 대해 쓰려고 할 때, 그렇게밖에 쓸 수 없다는 사실을 몹시 견디기 힘들기 때문이다”(p, 134)라는 소설의 결말이 암시하는 것은 무엇일까? 리사를 ‘나’의 의도대로만 그리기 때문에 미안하다는 뜻인가, 아니면 어떻게 그려도 그 선택은 본질적으로 무작위에 불과하기 때문에 미안하다는 뜻인가? 「나의 사촌 리사」는 던진 질문의 수에 비해 답한 것은 많지 않다. 앞으로 꼭 소설로 쓰고 싶은 것, 소설로 써야만 할 것이 그만큼 많다는 의미일 것이다. _이수형 (평론가)

관련 작가

박민정 소설가

1985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중앙대 문예창작학과와 동대학원 문화연구학과를 졸업했다. 2009년 『작가세계』 신인상에 단편소설 「생시몽 백작의 사생활」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소설집 『유령이 신체를 얻을 때』(민음사, 2014)로 제22회 김준성문학상을 수상했다.   자세히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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