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여름, 정지돈

「빛은 어디에서나 온다」(『창작과비평』 2018년 여름호)

선정의 말

어수선한 근대, 어수선한 대화

정지돈은 그동안 동서고금의 공간과 시간을 넘나들면서 정보의 박물지를 구성했다. 정보의 퍼즐 게임 같은 그의 서사는 특정한 시공간에서 빗겨나 있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작가는 다채로운 레퍼토리와 역동적인 스타일로 지금, 여기의 현실에 대한 모종의 환기력을 매설하려는 나름의 수고를 아끼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저간의 한국 서사에 익숙한 독자들에게는 낯선 (한국) 문학으로 받아들여졌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 독자들에게 「빛은 어디에서나 온다」는 한국의 어수선한 근대에 대한 서사적 탐문으로 받아들여지면서, 작가의 관심이 지금, 여기의 현실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와 있음을 느끼게 할 것으로 보인다.
소설은 1970년 오사카 만국박람회 전후의 이야기를 통해 한국의 근대가 얼마나 어수선하게 진행되었던가, 그 질서를 알기 어려운 혼돈의 반복에 대해 복합적인 방식으로 탐문한다. 만국박람회 전후에 서울의 풍경이 어떻게 변모되었는지, 그 공간의 변화에 시간은 어떤 인력으로 작용했는지, 그리고 그것은 어떤 미래를 반복했던 것인지, 하는 것들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흥미롭다. 인상적인 것 중의 하나는 무빙벨트를 “지루하고 사악한 반복의 하수인”으로 지목한 대목이다. “만국박람회의 핵심은 태양의 탑도 아니요, 인공위성도 아니요, 인류의 조화와 진보도 아닌 무빙벨트에 있다며 무빙벨트는 미래나 기술의 발전과 아무런 상관없는 눈속임, 끝없는 노동을 위한 전초기지, 지루하고 사악한 반복의 하수인”(『창작과비평』 2018년 여름호, p. 163)이라고 말하는 앙코 씨의 발화는 전근대의 자연적 순환과도 다르고, 역사적 이성이 소망했던 진보의 궤적과도 다른 인공적 반복을 주목한 것이어서 인상적이다. 그 무빙벨트의 반복 시스템 속에서 인간의 영혼은 물론 소망스러운 미래라는 시간마저 저당 잡힌 형국임을 성찰할 것이다. 앙코 씨의 발화를 전하는 초점자 태순의 다음과 같은 말로 소설이 마무리되는 것도 반복에 대한 작가의 관심이 결코 가볍지 않음을 시사한다. “저는 미래라는 말을 이해하는 데 평생을 다 쓴 것 같은데 지금도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없습니다, 미래가 반복된다면 그것을 미래라고 할 수 있나요”(p. 168). 어수선한 개발 과정에서 끊임없이 미래를 위해 현재를 유예하고 고통을 지불하기를 반복적으로 강요받았던 한국 근대의 심연에 대한 성찰적 대화의 시도에 값한다 하겠다.
근대에 대한 주제적 성찰 못지않게 서술 행위 과정에서도 대화적 성찰을 수행한다. 가령 다음과 같은 부분을 주목해보자.

①우리가 여의도를 방문했을 때는 신발 안에 강물이 찰박일 정도로 수위가 올라가 있었고 관제탑의 벽면에는 희미한 선이 그어져 있었는데 그것은 물이 머리끝까지 찼을 때의 경계입니다,라고 관제사말하며 파일럿과 자신은 가끔 잠수장비를 차고 비행장 안으로 들어가기도 하지요,라고 말했다고김원말했지요,라고 ③태순말했다. ④미쯔비시 미래관의 해저 개발기지를 보며 감흥을 받았던 것은 미래에는 모든 게 수륙양용이 되고, 우주와 상공, 해저와 지상의 구분이 사라지고 예술과 기술, 국경, 사유 재산이 사라지고 원시시대처럼 모든 게 순환하는 시기가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p. 164, 번호, 진한 강조 및 밑줄은 인용자에 의함)

①은 관제사가 한 말인데 ②에서 그것을 김원이 태순에게 말했고, ③에서 태순은 그 겹의 말들을 서술자 ‘나’에게 말한다. ④는 태순의 말이다. ①~③에서 분명히 확인할 수 있듯이 동사 ‘말했다’가 계속 반복된다. 자칫 어수선해 보이기도 하고 덜 세련되어 보이기도 한다. 독자의 가독성에도 저해된다. 이 장면뿐만 아니라 소설 도처에 ‘말했다’가 반복된다. 이 반복은 무엇인가? 더 살펴보아야 하겠지만, 일단 나는 그것을 서술자의 중개성을 극히 억제하면서 서술의 순도(純度)를 제고하려는 전략이 아니었을까 짐작한다. 가능하면 허구 세계 속 인물들의 정황과 의식을 그들의 말을 그대로 재현함으로써 서술자의 중개 과정에서의 오류나 왜곡을 줄이려는 조심스러운 스타일이다. 그만큼 근대의 풍경이 어수선했기 때문일 터이다. 어수선한 말들의 대화를 통해 어수선한 근대의 반복을 어수선하게 형상화했다. 작가는 표제를 ‘빛은 어디에서나 온다’ 라고 했는데, 그것을 어떤 독자들은 ‘어수선함은 어디에서나 온다’로 번역할 수도 있겠다. 그 어수선함이 흥미롭다.

_우찬제(문학평론가)


「빛은 어디에서나 온다Light from Anywhere」는 1960년대 후반의 시점에 상상되던 ‘미래’에 대한 동아시아적 현실과 관련하여 역사적 성찰을 시도하는 흥미로운 소설이다. 아시아 최초로 개최된 1970년 오사카 만국박람회를 둘러싼 풍경을 담고 있는 이 텍스트는, 만박의 안내양 역할을 했던 정태순의 회고를 파편적으로 전달하는 흥미로운 형식의 증언록이기도 하다. 정지돈이 50여 년 전에 불었던 미래 열풍에 주목하는 것은 아마도 현재 시점에서 느낄 수 있는 기묘한 기시감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새로운 미래에 대해 열광했던 50년 전의 상황을 고려한다면 4차 산업 혁명, 인공 지능, 포스트휴먼, 트랜스 휴머니즘 등 신기술에 기반을 둔 미래 사회를 향한 전망들이 경쟁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지금의 상황이 일종의 반복이라는 서사 구조를 통해 인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 ‘미래’라는 단어는 아직 오지 않은 시간에 대한 유령 같은 허상이자, 내용이 비어 있는 텅 빈 단어에 불과하다. 그 텅 빈 단어가 자극하는 환상 속에서 우리는 발전과 진보, 그리고 번영을 누릴 수 있다고 착각하지만, 결국 그것이 파생시키면서 동시에 은폐시키는 것은 ‘미래’라는 이름으로 상상되는 주류 시간대와 어긋나 있는 동시대적 간극들이다.
물론, 정지돈이 미래를 부정하고, 그와 같은 허상에 감염되지 않은 순수하고도 진정한 상태를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그의 소설적 실천은 주류 시간대의 자장 안에 속해 있지만 사실상 은폐되어 있던 시간들, 미래라는 말에 밀려 충분히 밝혀지거나 인식되지 않았지만 여전히 현재에도 지속되고 있는 파편적 이야기들을 소설적으로 ‘복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맥락에서 정태순의 증언은 의미심장하다. 그녀의 증언은 과거의 제국이었던 선진국 일본에서 한국의 근대적 위상을 설파하는 데 동원됐던 존재들이 친절한 안내양들이었다는 불편한 진실을 ‘복원’시킨다. 그것은 국가주의적 근대 기획이 의존하고 있는 성적 대상화의 이데올로기를 드러냄으로써 21세기의 현실과 50여 년 전의 현실 사이의 저변을 관통하는 시대착오적 연속성을 가시화 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성적 대상화가 한국적 근대의 한 단면이라면, 그리고 미래라는 유령이 지금도 동일하게 활보하고 있다면, 반복되는 미래를 여전히 미래라고 부를 수 있을까? 과거의 ‘미래’를 통해 지금 우리의 ‘미래’를 되돌아보게 하는 정지돈의 이러한 물음은 ‘미래’라는 유령에 감염되지 않을 수 없는 근대 이후의 시간, 즉 근대성의 원리에 대한 근본적이고도 비판적인 물음을 제기하는 중이다. 나는 일전에 정지돈이 우리 세대의 가장 논쟁적인 소설의 역사철학자라고 말한 바 있는데, 그의 역사철학이 소설적으로 빛을 발하는 순간은 역시 이와 같은 과거, 즉 현재에도 살아 숨 쉬고 있는 과거를 고고학적으로 복원하는 순간일 것이다.

_강동호(『문학과사회』 편집동인)

관련 작가

정지돈 소설가

1983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 영화와 문예창작을 공부했다. 2013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했다. 2015년 젊은작가상 대상과 2016년 문지문학상을 수상했다. 소설집 『내가 싸우듯이』, 장편소설 『작은 겁쟁이 겁쟁이 새로운 파티』가 있다. 자세히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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