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봄, 김봉곤

「시절과 기분」(『21세기문학』 2018년 봄호)

선정의 말

기분의 대화

“그대들은 어떤 기분이신가요/그대들은 어떤 기분이신가요/제 노래를 듣고 있는 당신들의/오늘 하루는 어땠고 지금은 또 어떤 기분이신가요.” 래퍼 빈첸은 「그대들은 어떤 기분이신가요」에서 그렇게 질문한다. 상대적으로 열등한 정황에 처한 자기 기분을 드러내면서, 그 저쪽 편에 있는 이들의 기분을 궁금해한다. 기본적으로 대조적 정황을 조성하면서 그 안에서 화자의 불안과 우울을 조율하는 리듬으로 이루어져 있다. 자기 기분을 드러내면서 상대의 기분을 묻는 것, 혹은 상대의 기분을 물으면서 자기 기분을 드러내는 것, 이 기분의 대화가 정황과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하이데거를 참조하자면 세계-내-존재인 인간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어떤 정황성Befindlichkeit에 처해지게 마련이다. 처한 상황 내지 정황성은 구체적이고 다채로운 기분으로 경험되는데, 그런 경험과 기분에 의해 다른 존재와의 관계가 형성된다. 기분을 뜻하는 독일어 Stimmung의 동사형 stimmen이 ‘조율하다’ 혹은 ‘리듬을 맞추다’와 같은 의미를 함축한다는 사실은 관심에 값한다. 빈첸이 처한 정황성도 그렇다. 양극분해로 인해 불균등이 심화된 불안하고 우울한 정황은 세계와 존재 양자에게 불안과 우울이라는 기분으로 조율하도록 이끈다.
하이데거의 기분론이 기본적으로 시간성의 구조를 지니는 것이었듯이, 김봉곤의 「시절과 기분」은 이미 그 표제부터 그와 같은 기분론을 떠올리게 한다. 소설은 “혜인으로부터 사진과 문자가 전송되어 왔을 때”, 바로 그 시간에, 서술자가 “애매하고 찝찌름한 기분”(p. 53)을 느낀다고 말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왜 이 정황에서 그런 기분으로 조율하는가? 왜 그럴 수밖에 없을까? 하는 수사학적 질문에 답해가는 과정이 이 소설의 요체다. 게이인 주인공이 “정체화 과정” 이전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귄 여자” 혜인을 오랜만에 다시 만났다가 헤어지는 여정에서 기분의 문제를 촘촘하게 탐문한 데서 이 소설의 핵심적 특성을 찾아볼 수 있다. 독특한 감수성으로 퀴어서사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온 김봉곤이 기분의 상상력을 통해 자기 서사의 겹을 두텁게 한 결과라 할 것이다. 그러니까 혜인과 사귀었던 시절을 반추하는 현재의 기분이 복합심리를 형성한다. 정체화 과정 이전과 이후라는 시간의 대화와 더불어, 그 시절의 여성 혜인과의 기분과 현재 사귀는 남성 해준과의 기분, 그 기분들의 복합 무늬를 몸의 감각과 더불어 대화적으로 형상화했다. 한국 소설이 또 다른 길을 만들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_우찬제(문학평론가)

 

동성애 소설을 읽을 때마다 대면하게 되는 질문이 있다. ‘특수한 사랑’으로의 동성애에 좀더 집중할 것인가, 반대로 ‘보편적 사랑’으로서의 그것에 주목할 것인가가 그것이다. 전자의 경우에는 그로부터 유의미한 정치·사회적 담론들을 이끌어낼 수는 있겠으나 동성애를 ‘특수’한 것으로서 ‘대상화’할 위험 이 존재하며, 후자의 경우에는 그 보편적 사랑의 재현 방식에서 독특함이 발견되지 못할 때 해당 작품이 특색 없는 것으로 폄하될 또 다른 위험이 존재한다. 박상영의 소설을 경유하여 김형중 비평가가 지적한 것이 바로 이 같은 딜레마이다(<이 계절의 소설> 선정평). 퀴어서사가 정치적 올바름의 ‘비장함’을 거둬내면서도 “주인공이 게이라는 것 말고는 아무런 특색도 가치도 없는 그런”(박상영,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 작품으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그려야 할 것일까. 그 해답(?)의 한 사례를 김봉곤 소설에서 찾는다면 어떨까.
김봉곤은 개인의 ‘취향’과 ‘기분’에 집중해보자고 말하는 듯하다. 전작 「여름, 스피드」가 “섹스할 사람은 많지만 친구할 사람은 없다”는 ‘영우’와, 정확히 그 반대인 ‘나’ 사이의 어긋남을 결국 개인 간 ‘취향’을 차이로 말할 때, 그 사태에서 동성애의 보편적 측면과 특수한 측면은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다. ‘취향’의 문제로 관계가 어긋나는 것은 사랑의 보편적 현상이다. 그러나 동성을 사랑하는 것에서부터 그와 관련된 세세한 성적 취향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취향을 드러내는 일이 온전히 자발적 선택의 영역이 될 수 없다면, 김봉곤이 그리는 개인의 ‘취향’ 간 만남의 문제는 동성애의 특수한 사정을 환기하는 것과 결코 무관할 수 없게 된다.
「시절과 기분」에서는 이러한 사정이 훨씬 더 분명해진다. 이 소설에서는 소설가가 된 ‘내’가 자신을 게이로 정체화하기 이전 잠시 연애 감정을 느꼈던 상대인 대학 동기 ‘혜인’을 7년 만에 만나는 장면들을 그리고 있다. ‘나’는 혜인과 함께 했던 시절 속의 ‘나’를 전부 버렸다. 고향을 떠났고 당시의 촌스러운 옷들과 말투를 버렸고 심지어 옛 친구들도 버렸다. “내가 선명해지는 동시에 내가 사라지는 기분은 아주 근사했다”고 느끼는 ‘나’에게 이후로도 결코 선명해지지 않는 것은 바로 혜진에 대한 감정이다. 그것을 일단 ‘부끄러움’이라고 말해보긴 하지만 ‘나’ 역시 그것이 “나를 정체화하는 과정에서 소환된 기억이자 대개 취사선택된 감정”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당시에는 사랑이라고 확신했으나 사후적으로 그것을 온전히 인정할 수만은 없는 만큼, 혜인을 둘러싼 ‘나’의 감정들은 “심장이 펑, 펑 뛰고 기분이 찢어지게 좋았”던 것, “격렬하게 요동치는 가슴” “저릿한 감각” 등으로 표현된다. “조금은 서글픈 기분”으로 환기되는 그 분명한 감각들이 ‘사랑’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다는 사실을 ‘나’ 역시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내’가 느낀 감각의 실체들과 그 미묘한 기분들이 여운처럼 남는 이 소설은 사랑이라는 이름 안에 묶일 수 있는 감정의 경계를 무한히 확장하는 소설처럼 읽히기도 한다. 더 정확히 말해 이 소설은 ‘이룰 수 없었던 사랑’에 대한 부끄러움, 회한, 슬픔 등의 감정을 섬세하게 그리는 소설로 읽힌다. 실패한 사랑을 떠올리는 개인의 마음의 서사가 대개 과거의 감정을 부정하는 방향으로 진행된다면, 이 소설의 ‘나’는 명백한 실패를 전제로 과거의 그 마음을 사랑으로 인정하고자 오히려 애쓴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시절과 기분」의 이 같은 섬세함이 ‘게이로서의 정체화 과정’이라는 특수한 사정으로 인해 더욱 강화된다는 점은 분명하다. 「시절과 기분」은 보편과 특수 사이에서 진동하는 세련된 사랑의 서사로 오래 기억될 만하다.

_조연정(문학평론가)

인터뷰

– 이번 계절부터 <이 계절의 소설> 선정작의 인터뷰는 웹페이지에 실리지 않습니다. 대신 2018년 8월 출간 예정인 『이 계절의 소설(가제)』 단행본에서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관련 작가

김봉곤 소설가

소설가, 한국 문학 편집자. 201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자세히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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