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겨울, 백수린

「여름의 빌라」(『21세기문학』 2017년 겨울호)

선정의 말

백수린의 인물들은 이국으로 떠난다. 그들은 여행을 통해 삶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자기 내부의 더 날카로운 모순과 대면한다. 이방의 공기와 풍경들은 고통의 실재성을 사라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도드라지게 만든다. 떠남은 끝내 떠날 수 없는 시간을 다시 호출한다.

「여름의 빌라」는 부드러운 서간체의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간체는 고백적인 어조를 통해 발신자의 내면적 진정성을 담보하게 한다. 여행지에서 만난 독일 여성과 그 남편에게 향하는 이 문장들은 이방인과의 따뜻한 인연과 기억들을 상기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그 부부와의 추억에는 “아시아인 여자애”의 “태어나 처음으로 유럽 여행을 떠났던 스물한 살 여름”이 담겨 있다. 이국에서 만난 그들은 자신의 한 젊은 시기에 “세계 시민으로 거듭난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주었다. 친절하고 정치적으로 올바른 이 독일인 부부는 “독일이 저지른 역사적 비극”에 대해 말해줄 수 있고, 독일 정치사를 전공한 남편 때문에 학업을 포기한 ‘나’를 안타까워하며 “너에게는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 자유가 있단다”라고 말해줄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다. 몇 년 후 캄보디아 시엠레아프의 여름 빌라에서 그 독일 부부와 주인공 부부가 함께했을 때의 불편함은, 이방인 부부와의 우정이 갖는 한계를 대면하게 했다. 캄보디아 사원의 폐허를 아름답게 바라보고, 그곳의 사람들을 낙천적이고 경이롭다고 말하는 독일인 남편의 시선은, 시간강사로서 참담한 현실을 감내하고 있는 남편 지호의 예기치 못한 반발을 불러온다. 소설에서 ‘당신’으로 호명된 독일 여성은 알츠하이머에 걸려 기억이 사라지고 있으며, 여행 중에 상처를 준 것이 미안하다는 편지를 보내온다.

이 소설은 그 편지에 대한 답장이겠으나, 소설은 마지막으로 독일인의 소녀가 캄보디아 소년에게 보여주었던 순수하고 억압 없는 ‘환대’의 장면을 남겨놓는다. ‘세계 시민’의 우정이란, 폭력과 식민의 역사를 괄호 치고 가능한 것은 아닐 것이다. 이 소설의 섬세함과 사려 깊음은, 다정하고 윤리적인 독일인 부부의 자기기만을 폭로하는 데도, 그 우정이 결국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드러내는 데도 있지 않다. 혹은 캄보디아 소년에 대한 독일 소녀의 환대가 갖는 순수성의 이미지를 유일한 희망이라고 말하거나, 노년의 독일 여성과 젊은 한국 여성 사이의 폭력과 고통을 대한 ‘여성적인’ 연대를 말하는 데도 있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더 나지막한 질문들. 타자를 완전히 ‘환대’하는 것, 타자의 고통을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가혹한 진실 앞에서도, 삶은 어떻게 지속되고 기억되어야 하는지. _이광호(문학평론가)

 

이 소설은 여러 겹으로 촘촘히 접은 한 통의 편지이다. 대개의 편지가 그렇듯 이 편지도 심상한 인사말로 시작하지만, 한 겹 한 겹 펼쳐질 때마다 감춰왔던 중대한 전언을 드러낸다. 그러니까 “새벽의 기차역 풍경을 알고 있지요?”라는 다소 평이한 첫 마디는 편지의 발신자 ‘나’가 어떻게 자신보다 서른 살 가까이 많은 독일 중년 부부, 즉 ‘당신’과 ‘당신 남편’과 10년 넘게 세계 시민적인 우정을 맺게 되었는지 기억의 포문을 열더니, 다소 낭만적인 이 우정이 어떻게 서구중심주의와 오리엔탈리즘, 그리고 살아간다는 것의 피로와 고통으로 말미암아 상처 입게 되었는지에 대한 가슴 아픈 회고로 이어진다. 그리고 편지가 다 펼쳐지면 서구 백인 중산층 부부의 오리엔탈리즘적인 캄보디아 관광이 실은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테러로 외동딸을 잃은 아픔을 달래기 위한 것이었고, 이 편지의 수신자 ‘당신’이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았다는 묵직한 비밀이 밝혀진다. 그렇기에 여기에서 편지는 자신의 임무를 배반한다. 이 편지는 수신자의 부재와 죽음을 뒤늦게 장면화함으로써 모든 편지의 핵심이 되는 점, 즉 수신자와의 단절을 극복한다는 편지의 목표를 아득하게 만든다. 하지만 본래 편지란 발신자와 수신자 간의 단절을 극복할 수 없는 글쓰기가 아니던가? 그런 점에서 오히려 이 편지는 많은 경우에 그렇듯 자신의 역설적 본성에 충실하다. 편지는 결국 고독한 글쓰기인 것이다. 하지만 나와 ‘당신’을 갈라놓고 단절시킨, 이 세계에 엄존하는 겹겹의 불평등하고 구조적인 모순들을 뚫고, 이 자기고백적이고 고해성사적인 편지는 영원히 도달될 수 없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때가 되면 우리는 “영원히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풍화된 것들은 바람에 흩어져 없어지”겠지만, 편지를 쓰고 싶은 욕망은 미룰 수 없는 것이다. ‘당신’이 ‘나’에게 도스토옙스키의 『가난한 사람들』로 편지 쓰기를 시작한 것처럼. ‘당신’의 마지막 편지, “결국 세계를 지속하게 하는 것은 폭력과 증오가 아니라 삶에 가까운 것일지도 모른다”는 말처럼. _이경진(문학평론가)

인터뷰

황예인_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나요. 한동안 다른 언어로 논문을 쓰느라 무척 고된 시간을 보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논문인지 궁금한데요, 이제 마무리는 다 하셨나요? 근황을 좀 들려주세요.

백수린_ 안녕하세요. 말씀하신 것처럼 학위 논문을 쓰느라 피폐한 날들을 보냈어요. 인터뷰에 답을 하는 오늘을 기점으로 사흘 전에 최종본을 제출했으니 그것 말고는 근황이라고 달리 들려드릴 것이 전혀 없네요. 논문의 완성도를 떠나서 끝이 났다는 사실만으로 무척 행복해하다가 어제 밤부터는 몸살을 앓기 시작해 지금 약 기운에 조금 취해 답을 하고 있어요.^^

 

황예인_ 「여름의 빌라」는 한국인인 “주아”가 독일인인 “베레나”에게 보내는 한 통의 편지로 이루어진 소설입니다. 이 안에는 스물한 살에 처음으로 떠난 배낭여행에서 시작된 주아와 베레나의 만남, 주아가 남편의 유학 때문에 다시 찾은 베를린에서 이루어진 재회, 그리고 지난여름 주아 부부가 베레나 부부와 그들의 손녀 레오니와 함께 시엠레아프에서 보낸 시간 등 10여 년 넘게 이어져온 두 사람의 인연이 담겨 있습니다. 먼저, 이러한 이야기를 편지라는 형식을 통해 쓴 이유가 궁금한데요.

백수린_ 이 소설을 구상해놓고 형식적인 부분에 대한 고민이 많이 있었습니다. 처음부터 서한체 소설을 생각하며 이야기를 짰던 것은 아닌데요. 인물들의 진심이랄까, 혹은 어떤 진실이랄까 하는 것들은 언제나 뒤늦게 전해진다는 것, 그리고 상대에게는 너무 늦게 전해질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마음은 ‘지금’ 전할 수밖에 없다는 것, 그런 것들을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일이 이 소설을 쓰는 제게는 중요했어요. 이런 점들을 고려하다보니 이를 위해서는 편지 형식―그것도 이메일이 아니라 항공우편을 통한 편지 형식―의 이야기로 전하는 것이 가장 적합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황예인_ 주아는 처음 베레나 부부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작은 반도 출신”인 자신이 “세계 시민”으로 거듭난 듯한 기분을 느낍니다. 그리고 10여 년 후에는 베레나 부부와 함께 시엠레아프를 여행하면서 결코 동등한 세계 시민이 아님을 깨달은 듯 불편한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갈등은 한스와 지호의 대화를 통해 폭발적으로 드러나는데 “사람들에게는 각자의 거리가 있고, 각자의 역할이 있어. 거기에 만족하고 살면 그곳이 천국이야”라고 말하는 한스에게 지호는 “프랑스가 아니니까 미국이 아니니까 독일은 상관없다 이거야? 폭력에 대해 비판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것은 폭력 이외의 수단을 갖지 못한 자들뿐이라고”라고 답합니다. 지호의 말에 무게가 실리는 듯하지만, 베레나와 한스 부부 역시 또 다른 폭력의 피해자임이 드러나면서 저 말을 다시 헤아리게 되고 그렇게 모든 말들은 판단의 영역에서 멀찌감치 물러나게 됩니다. 폭력의 경중과 위계를 따지고 싶은 욕망을 지그시 누르는 듯한 이 장면들에 대해 좀더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습니다.

백수린_ 이 작품의 구상 단계에서 가장 먼저 정해져 있던 것은 계층의 차원, 세대의 차원, 인종의 차원에서 서로 다른 위치에 놓인 인물들을 제3의 공간으로 보낸다는 설정이었어요. 「여름의 빌라」를 쓰고 지인에게 읽어달라고 부탁하면서 제가 집요하게 확인했던 부분이 처음 소설을 읽기 시작했을 때와 마지막을 읽고 난 이후 인물들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는가 하는 점이었습니다. 그렇게 읽히는 소설이 쓰고 싶었거든요. 다 읽고 나면 누가 가해자고 피해자인지, 무엇이 폭력이고 폭력이 아닌지 그런 것들에 대한 판단을 조금 망설이게 되는 소설이요. 쓰는 사람으로서 저는 누가 나쁜 사람이고 누가 좋은 사람인가, 누가 더 가해자이고 누가 더 피해자인가보다는, 저 사람은 왜 저렇고 이 사람은 왜 이런가, 우리는 왜 누군가를 아프게 하고 또 우리는 왜 누군가로 인해 이토록 아픈가, 이런 것들에 더 많은 관심이 가요.

 

황예인_ 개인적으로 백수린이라는 작가를 생각하면 자전소설로 발표했던 「국경의 밤」을 항상 함께 떠올리게 됩니다. 너무도 겁쟁이인지라 열 살이 훌쩍 넘도록 엄마의 배 속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 아이가 화자로 나오는 소설인데요. 국경이라고는 휴전선밖에 알지 못해, 그 너머에는 적군(敵軍)이 있다는 것만을 아는 부모와 함께 여행을 하다 이 아이는 어떤 국경 부근에서 드디어 세상 밖으로 나올 결심을 하게 됩니다. 저에겐 작가가 자신을 어떤 사람으로 생각하는지, 또 무엇을 쓸 수 있고 쓰고자 하는지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소설이었습니다. 수린 씨에게 국경을 넘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나요?

백수린_언젠가 다른 인터뷰에서도 말한 적이 있는 것 같지만 소설을 발표하면서 저는 제가 가지고 있는 국경에 대한 인식에 많은 한국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과는 조금 다른 지점이 있는가 하는 의문을 처음으로 갖기 시작했어요. 소설 속의 외국인들이나 외국 배경이 종종 등장하는 것이 저는 문제적(?)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소설을 발표한 이후 이것에 대한 질문을 아주 많이 받았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저는 이런 질문을 반복적으로 주고받는 것은 한국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우리’라는 개념이 매우 협소하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요. 줌파 라히리의 소설 속 주인공들은 미국인이지만 영국에서 살기도 하잖아요. 베른하르트 슐링크는 독일인 작가지만 미국인이 등장하거나 미국이 배경인 소설들을 쓰기도 하고요. 하지만 그때마다 우리가 그 소설들의 ‘이국성’이라든지, ‘국경’이라든지 하는 것들에 대해 많은 의미 부여를 하지는 않아요. 왜냐하면 그들의 세계에는 그런 것들이 섞여 있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한국 소설에는 한국인이 외국에 나가 있거나, 한국에 외국인이 와 있으면 여전히 이질적이라고 느끼거나 이국적인 것의 지향으로 여겨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최근에 하게 되었어요. 저는 해외여행이 자유로워진 이후의 대한민국에서 성장한 세대예요. 게다가 저는 제 세대의 사람들에 비해서도 매우 이른 나이에 국경을 넘고 이방인이 되는 경험을 했어요. 아마도 그로 인해 제가 조금 다른 세계관을 갖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고요. 물론 국경은 여전히 존재하고, 인종차별도 존재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난 일이 여기의 사람들에게 즉각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시대를, 돈만 있다면 주말을 이용해 오로지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 외국의 어느 도시에 2박 3일 동안 가 있을 수도 있는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어요. 이런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우리’란 뭘까요. 제가 소설을 통해 하고 싶은 작업은 ‘우리’의 외연을 확장하는 일인 것도 같습니다. 제게 중요한 것은 세계 속의 ‘개개인’들로 이루어진 매우 느슨한 ‘우리’들인지도 모르겠어요.

 

황예인_ 주아가 이 편지를 쓰는 진짜 목적은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은 베레나에게 마지막으로 남았을 슬프고도 충격적인 장면을 뒤로 넘기고 다른 장면을 선물하기 위함인 것 같습니다. 이것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반전(反轉)과 연결돼 있어서, 마지막 장에 이르면 다시 어떤 대목으로 돌아가 누군가의 생사(生死)를 확인하게 됩니다. “딸이 멀리 장기 출장을 간 사이에” 레오니를 돌봐주게 되었다는 말이 실은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는 것이지요. 2016년 12월에 일어난 “그 사건”은 물론, 이로 인해 베레나의 딸이 사망했다는 사실을 이 소설은 부러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있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이 사건이 수린 씨에게 어떤 충격을 주었다는 짐작을 하게 되는데요, 이 일에 대해 소설에 쓰지 못한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나요?

백수린_ 사실 처음 이 소설은 독일인들이 아니라 프랑스인들이 등장하는 소설로 구상이 되어 있었습니다. 2016년 12월 베를린에서의 사건이 아니라 2015년 11월 파리에서 일어난 일을 다루려고 했었고요. 제가 예전에 『문학동네』에 실었던 짧은 에세이에도 썼지만 그 사건이 일어날 당시 저는 프랑스에 있었고, 제 친구의 직장동료가 그 일로 사망했습니다. 어떤 친구는 사건 장소 근처에 살아서 시체들을 보기도 했고요. 그래서 그 일이 제게는 먼 곳에서 익명의 사람들에게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아주 가까운 일처럼 느껴져요. 그 일을 겪고 얼마 후 파리의 레퓌블리크 광장에서 추모하던 사람들 곁을 지나며 언젠가는 이 사건에 대해서 소설을 쓰고 싶다고 생각을 했어요. 항상 마음에 빚처럼 남아 있는 이야기였기 때문에 2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이후 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이 소설을 구상했는데요. 하지만 막상 작업을 시작하니 제가 그 사건과 아직도 충분히 거리두기가 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설정을 독일에서 일어난 일로 바꾸었고 그러다 보니 인물들의 국적과 사소한 에피소드들도 모두 바뀔 수밖에 없었죠.

 

황예인_ “남편이 유학 가면 아내가 학업이나 일을 포기하는 것이 한국에서는 평범한 일이에요”라고 말하는 주아에게 베레나는 “주아, 너에게는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 자유가 있단다”라는 말을 들려줍니다. 주아는 이후 선택의 순간에 이 말을 늘 떠올리고 한국에 돌아와 포기했던 학업을 이어가지요. 수린 씨에게 이와 유사한 작용을 하는, 누군가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있나요?

백수린_ “망쳐도 된다.”

 

황예인_ 이번 소설에는 정말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어서 작가에게 더 넓은 공간이 필요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요. 그런 의미에서 아직 발표한 적이 없는 첫 장편을 기대하게 되었습니다. 더불어 진행 중인 번역 작업도 궁금합니다. 2018년의 계획을 들려주세요.

백수린_ 지난 1~2년 가까이의 시간 동안 논문을 쓰느라고 소설에 전념할 수가 없었어요. 그러다 보니 2018년으로 미뤄둔 원고들이 많이 있어서 올해는 많은 글들을 쓰게 될 듯해요. 바로 장편으로 넘어가지는 못하겠지만 단편보다는 조금 더 긴 호흡의 글을 과도기적으로 선보이게 될 것 같고요. 그러고 나면 장편 쪽으로 조금씩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계획대로라면 짧은 번역서도 한 권 출간할 것 같은데요. 소설 작업에 방해가 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좋은 문학 작품 번역해 소개하는 일도 재미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겁 없이 맡은 일인데, 어떻게 될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무엇이 되었든 무리하지 말고, 즐겁게, 차근차근 해나가자고 스스로 다짐하고 또 다짐하는 날들입니다. 감사합니다.

관련 작가

백수린 소설가

백수린은 1982년 인천에서 태어나 연세대 불문과를 졸업했다. 2011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단편 「거짓말 연습」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소설집 『폴링 인 폴』 『참담한 빛』이 있다. 2015년 문학동네 젊은작가상, 2018년 문지문학상을 수상했다. 자세히 보기

7 + 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