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가을, 오한기

「바게트 소년병」(『문학과사회』 2017년 가을호)

선정의 말

오한기의 「바케트 소년병」은 팬시하고 매혹적인 소설이다. 이 매력은 오한기의 전작들에서 보여준 엽기와 과잉과 난폭함이 다른 방식으로 전환되고 있는 그 지점에서 발생한다. 화자이며 작가인 ‘나’의 친구 수진은 시인 오상순의 후손이라는 것을 알게 된 우연 이후에 소설 쓰기에 사로잡힌다. 수진은 수영장에서 배영을 하는 샴쌍둥이의 엽기적인 살인 행각이 나오는 이상한 소설을 쓴다. 이 엽기적인 이야기는 수진이 공사 중인 수영장에서 마주한 기이한 장면과 연결된다. 탈의실의 캐비닛에 작은 체구의 남자아이가 웅크리고 바케트 빵을 겨눈다. 소년은 가족을 괴롭힌 남자에게 복수하러 간 누이를 기다린다. “네 손에 들린 건 총이 아니라 빵이야. 배는 채울 수 있지만 아무도 죽이지 못한다고. 수진은 진실이 때로 잔인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을 아꼈다”와 같은 말은 현실의 층위에서 가능한 것이지만, 소설은 독자들을 다른 층위의 환상적이고 특정한 감각으로 도약시킨다. 이 소설의 기이한 아름다움은 수영장에서 ‘바케트 소년병’의 복수가 결국 ‘실현’되는 이미지와 연관된다.

글쓰기란 무엇인가에 대한 익숙한 질문은 작가적 자의식의 노출이라는 방식이 아니라, ‘바케트 소년병’이라는 ‘팬시’한 이미지를 통해 구현된다. 우연한 기회에 오상순의 후손이 되어버린 수진의 글쓰기는 ‘소년병’과의 조우를 통해 다른 방식으로 ‘수행’된다. 이 조우 자체를 글쓰기라고 해도 될 것이다. “그 아이가 내 인생에 나타난 의미는 무엇일까”라는 의문은 어떤 대답도 필요 없는 글쓰기의 퍼포먼스가 되며, “허구를 상대할 수 있는 건 허구뿐”이다. ‘오상순’이라 부르게 된 길고양이가 “손을 할퀴고 쏜살같이 사라”지는 사건처럼. ‘나’도 결국 창고의 서랍장 속에서 ‘바케트 소년병’과 마주하게 되는 사건처럼. ‘무질서’의 대면, “예상하지 못한 변화”야말로 글쓰기의 수행성이다. 글쓰기란 자기를 대면하면서도 다른 무질서를 구성하는 우연한 행위일 테니까. “무질서는 우리를 다른 세계로 이끈다.” 그래서 이 소설은 팬시한 방식으로 만들어진 소설에 대한 소설이다. 이를테면 무질서의 원더랜드로 초대하는 ‘팬시 차일드fancy child’의 글쓰기. 이광호(문학평론가)

 

오한기, ‘도리어의 세계

“나는 강박적으로 이으려는 성향이 있다.” 4년 전, 문학평론가 이수형이 오한기와의 인터뷰에서, 오한기의 소설들은 뭔가를 이으려 한다고 평하자 작가 본인이 한 답이다. 잇자면, 오한기의 작품들을 읽을 때마다 과연 ‘한 편’의 단위로 끊을 수 있을까 생각해보곤 한다. 작가의 매너리즘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다. 오한기의 작품엔 ‘한상경들’이, ‘유리들’이, ‘피부병들’이, ‘햄버거들’이, ‘『홍학이 된 사나이』’들이, ‘찰스 부코스키들’이, ‘총들’이 각기 다른 제목의 이야기에 여러 모습으로 이어 나오기 때문이다. 잇자면, 이 복수(複數)의 양태 속에서 「바게트 소년병」은 ‘둘’ 자체에 관한 정교한 짜임새가 발견된다.

소설을 쓰다가 가구상이 된 화자&우연히 소설을 막 쓰기 시작한 친구 수진, 수진&그를 이해하지 못하는 아내 지안, 화자&그의 전 애인이었던 지안, 수진의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인 샴쌍둥이 L&D(LD), 수진&칠레에 머물며 궤변을 늘어놓는 고등학교 동창 미아(「의인법」에서 칠레에 머문 한상경 또한 미아처럼 궤변을 늘어놓는다), 미아&미아의 급작스런 죽음을 수진에게 알리는 쌍둥이 동생, 지안의 운세 앱을 통해 알게 된 수진의 조상 오상순 시인&오수진, 수진에게 중요했던 두 번의 점괘, 맞닥뜨린 일을 두고 수진이 직관으로 두 번 나열한 단어들(동굴. 늪지대. 사막. 악어. 낮달/조깅. 옻. 제습. 팔레스타인. 캠핑장), 그리고 바게트를 총으로 생각하며 수영장을 지키는 소년&그가 기다리는 누나까지.

하나 이 복수의 관계로 채워진 세계는 서로 보듬는 분위기를 쉬이 자아내지 않는다. “외톨이 곁에는 외톨이만 모인다” 할지라도, 소설 속 외톨이들은 각자의 사연을 나누고 공감을 얻는 데 실패한다. 외톨이는 외톨이의 이야기를 대체로 귀담아들어줄 용의가 없기 때문이다. “묘사를 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외로워서야”(『홍학이 된 사나이』)라는 글귀를 인용해 생각을 잇자면,「바게트 소년병」은 둘, 곁, 동반(同伴)의 헛헛함을 드러낸 기록이다. 둘은 서로 어긋나고 비껴 나간다.

이때 오한기는 고독을 진하게 내뱉으며 점점 고립되어가는 인물들의 자폐적 심정에 뻔히 치우치는 쪽을 택하지 않는다. 대신 오한기는 삶을 바라보는 특유의 시선 ‘도리어-’를 강조한다. 즉 한 사람이 애초에 해오던 일을 상대가 ‘도리어’ 맡게 되었을 때, 한 사람이 오랫동안 붙잡으며 풀리지 않던 일을 누군가가 ‘도리어’ 심혈을 기울여 천착할 때의 복잡 미묘한 순간을 작가는 흥미롭게 풀어낸다. 가령 아내가 운세 앱으로 알려준 조상 오상순 시인의 존재를 통해 글 쓸 팔자는 없다고 여겼던 수진은 ‘도리어’ 소설 쓰기에 빠진다. 아내 지안은 전 애인이었던 화자가 작가였기에 그렇지 않은 수진과 결혼했다고 생각한다. 한데 수진이 ‘도리어’ 작가가 되려고 하자 낙담한다. “작가를 피해서 당신과 결혼했더니 당신이 작가가 되려고 하네”라는 말과 함께. 수진이 두어 달 만에 쓴 글을 읽고 형편없다고 느낀 화자는 이를 ‘도리어’ 자신의 슬럼프에서 벗어날 기회로 받아들인다.

‘도리어’는 마치 바이러스처럼 인물들의 시간과 삶을 타고 다니며 이야기를 잇는다. 하지만 인물들은 ‘도리어’ 무엇을 하게 된 인물의 삶을 충실히 대할 마음이 없거나 그럴 여유가 없다. 그리고 화자가 수진에게 들었던 바게트 소년병의 존재가 ‘도리어’ 화자 자신에게 나타나는 후반부. 영상적 차원의 미감이 느껴지는 이 대목의 환상성은 짜릿함을 선사한다. 이 환상성은 작가의 다음 작품을 기다리게 하는 귀결점이다.

하나 소설은 끝나지 않은 것 같다. 미숙함을 거론하는 게 아니다. 서두의 언급을 잇자면, 오한기의 ‘한 편’은 완성되었다고 볼 수 있을까라는 질문. 다시 꺼내어본다. 그런 맥락에서 아마도 우리는 지금 세상에서 가장 긴 한 편을 쓰는 매력적인 작가를 목도하고 있는지도. 김신식(산문가)

인터뷰

조연정_ 장편 『홍학이 된 사나이』(문학동네, 2016)는 물론 각각의 단편들을 포함하여 오한기의 소설은 어떤 경향으로도 잘 묶이지 않고 어떤 말로도 잘 해명되지 않는 독특함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해요. 대체 불가한 오한기 스타일이라고 해야 할까요. 일단 문장들이 너무 신선하고 재미있어요. 어떤 통로를 통해 창작의 영감을 주로 얻는지, 소설을 쓸 때 가장 중시하는 게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오한기_  20대 때는 주로 소설과 영화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제가 경험할 수 있는 유일한 세상이었죠. 좋아하는 작가와 친구의 작품을 읽으면 소설이 쓰고 싶어서 견딜 수 없었습니다. 돌이켜보니 행복했던 것 같네요. 지금은 조금 달라졌습니다. 일상, 사건, 자연, 인물, 대화에서 영감을 얻습니다. 소설을 쓸 때 가장 중시하는 건 집중력과 휴식입니다.

 

조연정_ “바게트 소년병”이라는 단어의 조합도 흥미로워요. 공사 중인 수영장의 캐비닛, 압류딱지가 붙은 채로 버려진 서랍장 안에서 바게트를 총처럼 들고 있는 소년의 이미지는 어떻게 만들어진 건가요?

오한기_ 학교에 다닐 때 동화 수업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 바게트 소년병을 처음 떠올렸습니다. 근미래. 전쟁으로 인해 폐허가 된 도시. 망루 위에 기거하는 고아 형제. 동생은 겁에 질려 있었고, 형은 동생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기 위해 바게트를 총이라고 속여서 들려줍니다. 며칠 전 메일을 뒤적이다가 그 동화를 찾았습니다. “비명을 지를 준비가 됐어요.” 이게 동화의 마지막 문장입니다.

 

조연정_ 이 소설에서는 “무질서”라는 단어가 반복적으로 말해집니다. 그 무질서는 “중곡동과 산티아고”를 넘나드는 「바게트 소년병」의 흥미로운 구성 방식을 환기하기도 합니다. 나아가 지안과 수진, 혹은 ‘나’의 경우처럼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삶, 혹은 미래를 예측하기 힘든 불안한 삶을 의미하는 듯도 합니다. 무질서에 집착하며 “난민이 된 것 같았다”고 느끼는 수진도, “겁쟁이! 파시스트! 공산주의자!”라며 소리를 꽥 질러보는 아이도, 모두 조금씩 겁에 질려 있는 인물들인 것 같아요. 이렇게 각자의 자리에서 “버둥대는” 인물들이 저는 좀 서글프게 읽혔는데요. (새해 초에 재미삼아 확인하게 되는 한 해 운세를 지안과 수진이 무심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장면도 저는 너무 슬펐고요.) 이 소설을 쓸 때 오한기 소설가는 주로 어떤 기분에 젖어 있었는지 문득 궁금해집니다.

오한기_ 저는 소설을 쓸 때 인물이나 상황에 감정 이입을 하지 않는 편입니다. 소설이 잘 써지는 날에는 기분이 좋고, 소설이 잘 써지지 않는 날에는 우울합니다. 「바게트 소년병」은 비교적 수월하게 쓴 작품이라서 괜찮은 기분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완성된 소설을 읽을 때는 매번 우울하더군요. 「바게트 소년병」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모든 인물들이 불안하고 슬퍼서 미친 것 같고. 왜 이렇게 우울한 이야기를 썼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우울함이 싫습니다!

 

조연정_ 기존의 오한기 소설이 여성 인물을 재현하는 방식에 대해 의문을 표하는 독자들도 있었다고 생각해요. 「바게트 소년병」의 소설가 ‘나’는 학부모의 항의로 고등학교에서의 특강이 취소되자 이런 생각을 합니다. “작품에 아무리 공을 들여도 돈이 되지 않았고, 현실을 폭력적으로 그려서 독자들에게 불쾌감을 불러일으키는 나 자신이 너무 싫었다”라고요. 이 지점에 대해, 그러니까 ‘재현’이라는 문제와 관련하여 허구와 현실의 관계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는지 궁금해요.

오한기_ 질문하신 부분에 대해서 논리적으로 설명할 능력은 제게 없는 것 같습니다. 대답이 될지 모르겠지만, 소설을 쓰면서 제가 가장 경계하는 건 현실을 그대로 옮기는 것입니다. 왜곡하고 전복하고 과장합니다.

 

 

조연정_ 오한기 소설가에게 어떤 질문을 할지 고민했더니, 한 동인이 이런 질문을 제안했어요. 오한기 소설가의 하루 일과는? 그리고 좋아하는 빵은? 저도 궁금해서 질문 드려요.

오한기_ 지난달부터 일을 시작했는데, 그 전까지는 대부분 집과 카페를 오가며 작업을 했습니다.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에는 와이프와 데이트를 하거나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좋아하는 빵은 태극당 슈크림빵과 소보루입니다. 동대입구에 가면 꼭 사 먹어요. 호두과자도 좋아합니다. 저도 다른 사람이 좋아하는 음식에 관심이 많아서 조연정 선생님이 어떤 빵을 좋아하는지 궁금하군요.

 

조연정_ 『홍학이 된 사나이』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문학에 의미가 있다면, 이 글은 문학이 아니다. 무의미를 기록하는 것도 문학이라면 이것은 문학이 아니다. 의미가 있지도 무의미하지도 않으니까.” 오한기 소설가에서 문학은 무엇인가요?

오한기_ 문학은 의미를 다루는 장르라고 생각합니다. 무의미라는 의미를 다루는 것도 문학이 되겠죠. 그렇지만 제가 생각하는 문학은 그 너머에 있는 것 같습니다. 낭만적인 생각이고, 이제 자신도 기대도 없습니다. 울리세스 리마처럼 샤워하면서 책을 읽으면 책이 젖을 뿐이죠. 그래도 가끔은 제가 그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럼 미친 듯이 소설이 쓰고 싶어져요.

관련 작가

오한기 소설가

1985년 경기 안양에서 태어나 동국대 문예창작과에서 공부했다. 2012년 『현대문학』 신인상에 단편소설 「파라솔이 접힌 오후」가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의인법』, 장편소설 『홍학이 된 사나이』가 있다. 2016년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자세히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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