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여름, 허희정

「Stained」(『문예중앙』 2017년 여름호)

선정의 말

둥근 초조와 세모 불안의 얼룩들

―허희정의 「Stained」

 

허희정의 「Stained」(『문예중앙』 2017년 여름호)는 독자들의 편안한 접근을 용인하지 않으려는 텍스트로 보인다. 애매하고 모호한 약호들과 연결될 것 같지 않은 시니피앙의 실험적 연속으로 인해 그 약호들을 풀기가 쉽지 않다. 좀처럼 풀리지 않는 약호들, 질서를 교란하는 플롯으로 인해 독자들은 거듭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그러나, 혹은 그러하기 때문에, 독자들은 또한 그 약호들을 풀어내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다지는 역설을 체험한다. 하여 이 텍스트를 읽는 행위는 저자에 의한 약호 매설과 독자가 수행하는 약호 풀기 사이의 역동적인 게임으로 진행될 수도 있겠다.

이 소설에서 공연장 무대 장치 일을 하는 주인물은, 공연장 사람들과의 소통도 쉽지 않고, 남편 P와도 소통도 어려운 처지다. 직장에서의 불통은 특채가 원인의 하나였다. 대화의 결론을 남편이 늘 정해두고 있기 것도 문제다. 사소한 기미들이 지우기 힘든 얼룩처럼 그녀의 내면에 히스테리 같은 오점을 남긴다. 그 얼룩 투성이 상처로 인해 그녀는 불면증에 시달리지만, 남편은 그것을 전혀 눈치 채지도 이해하지도 못한다. “죄책감도 의무감도 없이, 악몽도 길몽도 없이 본분처럼 잠들고 싶”은 소망은 늘 미끄러진다. 그런 가운데 공과 삼각형 사이의 기하학적 혼돈에 빠지게 된다.

 

먼저 빨간 공의 에피소드는 악몽의 서사다. 꿈속에서 예쁜 빨간 공은 주워 바람을 넣고 튕기는 놀이를 한다. 처음에는 마치 포트-다fort-da 놀이처럼 해피엔딩을 위한 쾌락원칙의 승화를 예감하는 듯했지만, 이내 공은 자꾸만 부풀어 올라, 무한대로 커지고, 나와 벽 사이의 왕복운동의 회로를 벗어난다. 하늘을 가릴 듯이 무한대로 커진 공은 이제 그녀의 욕동과는 거리가 먼 대상이 되었고, 그럴수록 억압은 농밀하게 축적된다. 삼각형 이야기 역시 악몽의 서사이기는 마찬가지다. 하늘에서 삼각형이 떨어진다. 무게도 충격도 없는 삼각형이지만 “붉거나 푸른색의, 성인 남자 몸집의 두 배는 족히 되는 삼각형이 하늘에서 수직으로 내리꽂히는 장면을 그 자체로도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실제적인 위협은 없다 하더라도 그 삼각형들로 인해 도시 전체가 색유리 파편이 박힌 스테인드글라스에 둘러싸인 것처럼 보였다고 얘기된다.

 

일상적인 감각으로는 뾰족한 삼각형이 날선 가학성의 상징이라면 둥근 공은 넉넉한 포용성의 상징으로 다가오지만, 이 소설에서 둘 다 가학적으로 수용된다. 그러기에 주인물의 억압과 상처는 더 깊어진다. 연극 공연이 끝나고 조명을 철거하다가 연출과 불화를 빚던 조명 오퍼레이터의 머리 위로 뾰족한 조명 기기가 떨어져 삼각형처럼 내리 꽂히는 장면은 주인물의 신경증이 극화되는 지점에 상관물처럼 보인다. 가학적이지 않은 것처럼 여겨지는 가학성들이 어느 순간 폭력적으로 인간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음을, 그로 인해 사람들은 지우기 힘든 얼룩들을 지니고 그 상처를 붙안고 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환기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소설에서 문제적인 ‘삼각형’ 현상에 대한 “사소한 규약들”에 대해 서술자는 이렇게 적은 바 있다. “삼각형에 가까이 다가가지 말 것, 규명할 수 없는 현상을 섣불리 규명하려 하지 말 것.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그저 이해할 수 없는 채로 둘 것.” 이 규약은 비슷하게 되풀이된다.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은 이해할 수 없는 채로 둘 것. 다가가지도, 건드리지도 말 것.” 이 반복이 섬세한 아이러니였을까. 이해할 수도 없고, 다가가거나 건드리고 싶지 않지만, 그럼에도 엄연히 없는 듯 있는 어떤 사태들, “어디에나 있으면서 어디에도 없는 것” 같은 진실들, 그런 것들 때문에 인간은 늘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그 둥근 초조와 세모 불안의 얼룩들을 신예작가 허희정은 자신만의 서사 감각으로 형상화했다.  우찬제(문학비평가)

인터뷰

삼각형의 세계

 

“사람들은 곧 삼각형을 곁에 두고 사는 일에 익숙해졌다.

두께도, 부피도, 무게도, 질량도 없는 것은 아무것도 망가뜨릴 수 없었기에 사람들은 쉽게 안심했다.

아무도 그것의 정체를 더 이상 알고 싶어 하지 않았다.”

 

김신식_  작품에서 삼각형을 다루는 지점이 재미있었습니다(특히 삼각형을 통과하는 일을 묘사한 대목). 예로부터 삼각형을 빌fu 종말을 대하는 정신을 강조했던 화가 칸딘스키나 이상의 시 「신경질적으로비만한삼각형」처럼 ‘▽’를 내세워 한 사람을 그려내는 시도도 있었지만, 허희정 작가의 소설을 읽으면 한 편의 애니메이션을 본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았습니다. 이번 작품을 읽으며 신카이 마코토의 애니메이션 캐릭터들이 지면에서 살아 움직인 채 삼각형의 물체와 더불어 살아가는 장면을 상상해보기도 했습니다. 지금까지 발표해온 작품 속에서 군데군데 ‘애니메이션적 세계관’이라는 분위기를 느껴보곤 했는데, 작가 본인에게 애니메이션의 정서가 어느 정도 양분으로 작용했는지 한번 묻고 싶었습니다다.

아울러 꼭 그렇지 않다면 본인이 소설을 쓰는 데 에너지로 활용되는 문화적 취향엔 무엇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허희정_ 저는 89년생이고,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사랑의 천사 웨딩피치」가 공중파에서 한창 방영 중이었습니다. 그리고 초등학교에 다니는 내내 「천사소녀 네티」 「달의 요정 세일러문」 「간호천사 리리카 SOS」 「카드캡터 체리」 「꼬마마녀 도레미」 등의 일본 변신소녀물 애니메이션이 연달아 방영되었고,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었을 무렵에는 케이블 방송에 투니버스 채널이 생겨서 「카우보이 비밥」 같은 작품을 지나치듯 본 기억이 있습니다. 또, 초등학교 입학 전에는 「인어공주」 「알라딘」 「백설공주」 같은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비디오로 몇 번씩 돌려보곤 했었구요. 그러니 제가 가진 렌즈의 곡률과 굴절률을 결정하는 데 애니메이션이 끼친 영향이 적지는 않을 것 같다고 생각하기는 합니다. 하지만 신카이 마코토 애니메이션은 「별의 목소리」 외에는 본 작품이 없고, 대체로 애니메이션보다는 만화책을 선호하는 편입니다. 영화도 드라마도 별로 좋아하지 않고, 한때는 아이돌 뮤직비디오를 많이 봤는데 요즘은 관심이 식었구요. 그나마 꾸준히 좋아하는 건 J-POP이긴 한데, 그렇다고 해서 저의 이런저런 취향들이 소설을 쓰는 데 에너지로 활용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떠남에 대하여

김신식_ 「파운드케이크」에선 모래가 떠나고 난 동안의 일을, 「인컴플리트 피치」에선 해체를 앞둔 밴드의 해산 콘서트를 보러 떠난 일을, 본 작 「Stained」에선 화자가 P와 함께 개를 받으러 떠난 일이 나옵니다. 지금까지 발표해온 작품에선 분명한 행선지의 특색과 해프닝으로서의 여행도, 삶을 뒤돌아보는 성찰의 여정도 아닌, 그저 ‘떠남’이 주는 몽롱함. 그것을 지속적으로 발산하는 문장의 기운이 매력으로 다가왔습니다. 자신의 소설에서 혹은 삶에서 ‘떠남’은 어떤 의미를 차지하는지 묻고 싶습니다.

허희정_ 사실 어디로든 떠나는 것에 별 관심이 없는 편입니다. 어쩌다 보니 세 편 연속 떠나는 사람이 나오는 소설을 발표하긴 했는데, 세 편 모두 다른 시기에 씌어진 소설들인 것을 생각하면 우연의 일치라고 보는 쪽이 더 합리적일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인컴플리트 피치」는 올해 초에 가족 여행으로 홍콩에 갔다가, 항공사 과실로 인해 공항에서 조금 오래 대기해야 하는 일이 있었는데 그때 공항 라운지에서 쓰기 시작한 소설입니다. 「파운드케이크」는 등단하기 전에 학교를 다니면서 썼던 소설이고, 「Stained」는 휴학계를 내고 나서 쓴 소설이구요. 앞으로도 떠나는 사람이 나오는 소설을 계속 쓰게 될지는 모르겠는데, 그렇게 되면 ‘떠남’의 의미에 대해서 한 번 더 생각을 해보게 될 것 같습니다.

 

 

허희정의 동작학

김신식_ 작가에게 타인의 동작을 세심히 관찰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직업증’일 수도 있겠으나 작품에서 화자가 빨간 공을 튀기며 이를 받는 반복적인 동작, 이것과 연관된 화자의 감정이 눈에 계속 머물렀습니다. 「인컴플리트 피치」에서도 손가락으로 스마트폰 속 글을 무심하게 읽어내려가며 타인과 동떨어지는 대목이 중요하게 나왔지만, 이처럼 작가 본인이 ‘이미지화’하고 싶은 특유의 동작들이 있으면 작품 구상을 위해 이를 모아두는 편인지요? 또한 ‘이건 참, 내가 봐도 어처구니가 없군’ 하면서도 그래서 정이 든 본인만의 동작이나 습관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허희정_ 동작보다는 사람의 신체 부위가 만드는 조형적 요소를 관찰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이를테면 어떤 사람이 컵을 쥐고 있을 때, 손가락이 펼쳐지는 모양이나 각도, 손가락 관절이 튀어나오면서 그리는 곡선 같은 것들이요. 그렇다고 딱히 의식적으로 순간들을 수집하는 것은 아니고, 평소에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다 보니까 그런 순간들에 주의를 기울이게 되고, 결과적으로 소설에 영향을 끼친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에 대하여

김신식_ 「파운드케이크」에선 파티시에 ‘눈’이 키우는 ‘악어’라는 이름의 개가 나왔고, 소설 말미에 개의 안타까운 죽음이 중요하게 그려집니다. 「Stained」에서 개와의 이야기를 비중 있게 다룬 이유는 「파운드케이크」에서 미처 못다 한 이야기를 한 번 더 이어가고 싶은 의도가 있었던 것인지요.

허희정_ 「Stained」의 모태가 된, 소설이 채 되지 못한 메모가 있습니다. 그 메모는 「파운드케이크」에 나왔던 눈과 눈의 연인의 대한 이야기이고, 그 이야기에도 유기견이 나오는데, 결국 그 이야기를 쓰지는 못했습니다. 쓴 사람으로써는 두 개의 이야기가 완전히 별개의 소설이라고 생각하지만, 「Stained」에서 「파운드케이크」의 잔상 같은 것이 느껴진다면 아마 출발점이 같았기 때문일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수집품들

김신식_ 본인을 비롯 최영건, 양선형, 민병훈 작가와 함께 ‘수집품들’이라는 모임을 갖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동인과의 교류 그리고 모임의 특색이 작품의 색깔과 빛깔을 만들어나가는 데 영향을 발휘하고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허희정 작가와 함께 모임을 꾸리는 세 작가의 작품을 볼 때 쉬이 접점이 그려지면서도, 외려 그러한 섣부른 판단을 비껴나가는 지점이 있지 않을까 듣고 싶어서, 질문을 꺼내어보았습니다.

허희정_ 이 질문을 받고 ‘수집품들’ 단체 카톡방에 다들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았습니다. 민병훈은 우리 모임은 ‘춘장’ 같은 것이라고 말했고 (‘춘장’은 민병훈이 시골에서 만난 강아지의 이름이라고 합니다), 최영건은 최대한 긍정적으로 수줍게 답변을 작성하라고 대답했습니다. 양선형은 카톡을 읽지 않았습니다. 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영향이 없지는 않겠지만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모양인지는 잘 보이지 않아요. 그리고 그 영향이 어떤 것이든 어차피 제 눈엔 보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미지에 대한 이미지

김신식_ 지금까지 발표해온 작품을 읽으면, 소설 속 인물들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이미지들에 잡아먹히지 않을까라는 두려움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번 작품에서 원형과 삼각형으로 대변되는 기하학적 이미지와 사람의 공존, 그것을 에워싼 고요와 불안의 혼합된 기운을 주목한 이유도 그 때문이기도 했고. 작가 본인에게 이미지란 무엇인지, ‘이미지에 대한 이미지’를 듣고 싶었습니다.

허희정_ 사람마다 유달리 발달한, 혹은 예민한 감각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제 경우에는 그게 시각인 것 같습니다.

 

 

 

향후에 대하여

김신식_ 구상 중인 작품 활동과 향후 계획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허희정_ 일단은 근성과 근력을 키우고 싶습니다.

 

나의 가역반응

김신식_  마지막 질문입니다. 뜬금없지만, 신해경의 『나의 가역반응』이란 앨범을 좋아하나요?

(작가의 작품을 읽을 때 무척 어울리는 음악 같아서 언급해보았습니다. 특히 본 작을 재차 읽을 때 「화학평형」이란 수록곡을 우연히 틀어서 듣게 되었고 작품에 더욱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허희정_ 질문지를 받고 음원 사이트에 검색을 해보았습니다. 좋아하는지 아닌지 판단을 내리기에는 아직 이른 것 같지만, 제 소설을 읽고 이 앨범을 떠올렸다는 사실은 굉장히 마음에 듭니다.

관련 작가

허희정 소설가

1989년 서울 출생.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및 같은 과 대학원 재학 중 자세히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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