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여름, 박민정

「바비의 분위기」(『문학과사회』 2017년 여름호)

선정의 말

전통적으로 소설에서 인물의 내면성은 필수적인 요소처럼 간주되어왔던 것이 사실이다. 내면성이 드러나는 방식은 다양할 수 있지만(혹은 드러나지 않은 방식으로 감춰질 수 있다), 그것은 소설이 인간에 대해 갖고 있는 특별한 태도를 함축한다는 점에서 여전히 중요하게 이해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모든 문제적 인간들에게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삶의 깊이가, 표면으로 외화되지 않은 내적 복잡성이 존재한다는 것. 이러한 전제는 인간을 향한 휴머니즘적 이해와도 깊은 관계가 있는데, 종종 소설이 현실에 적응하지 못한 인물들의 삶을 규명하고자 하는 욕망에 가닿는 것도 그와 무관하지 않다. 범죄자와 광인의 삶 뒤편에도 어두운 사연이 숨겨져 있다는 관점은 소설의 인간주의적 태도가 도달한 하나의 정점에 다름 아니다.

문제는 이 같은 깊이를 상실한 것처럼 보이는 행위들, 더 나아가 내면성을 발견하기 힘들어 보이는 인간의 삶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이다. 박민정의 바비의 분위기」가 던지는 문제의식이 이와 멀지 않은데, 이 물음은 분명 동시대적인 요소가 있다. 공적 지평에서는 비주류의 영역으로 봉인되어 있지만, 분명한 흐름으로 자리 잡은 우리 사회의 각종 혐오들, SNS상에서 발화되는 공격적 언어들의 주인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들을 말의 바른 의미에서의 주체로 바라볼 수 있을까.

전통적인 이데올로기론으로 충분히 규명될 수 없는 이러한 일탈적 행위들은 주체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새로운 관점을 요구한다. 물론 그것은 소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관련하여, 박민정의 바비의 분위기」는 인간을 이해하는 새로운 언어, 즉 새로운 주체에 대한 소설적 관점을 탐구하는, 일종의 시론적(試論的) 텍스트에 가까워 보인다. 매체가 주체성이 드러나는 자리가 아니라, 오히려 주체가 매체성의 종속 변수라는 소설 속 유미의 관점은 ‘외화’의 형식으로 주체의 내면이 드러난다는 전통적인 인간주의적 입장과 다른 곳에 위치하고 있다. 외화가 여전히 내적인 깊이, 보이지 않은 심연을 상정한 개념이라고 할 때, 거기에는 인간의 행위를 조율하고 있는 복잡성에 대한 이해가능성을 가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민정의 바비의 분위기」는 그와 같은 휴머니즘적 인간 이해가 직면한 곤혹스러움 위에서 씌어진 것처럼 읽힌다. 소설 속에서 서술되는 다양한 혐오적 행태들, 그리고 유미의 사촌오빠 뒤에 가려진 삶의 내력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도 그와 같다. 휴머니즘적 이해 가능성을 차단하는 이러한 사례들은 인간이야말로, 등 뒤가 없는 로봇과 다르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환기하는 것이 아닐까. 인간은 어떻게 인간으로 남을 수 있을까. 박민정이 던지는 도발적인 물음은 그의 소설이 새로운 소설적 탐구 영역에 진입하고 있다는 사실을 흥미롭게 증명하고 있다. 강동호(문학평론가)

인터뷰

조연정_ 안녕하세요. 올해 초 「행복의 과학」으로 문지문학상을 수상하셨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뵙게 되었네요. 반갑습니다. 박민정 작가의 두번째 소설집 『아내들의 학교』가 갓 출간되었습니다. 첫 책을 내던 때와 비교해 두번째 소설집이 나오는 이즈음의 기분은 어떠신지 궁금해요.

박민정_ 안녕하세요. 「행복의 과학」이 문지문학상에 선정되어 감사하게도 여러 독자 분들과 만나 뵐 수 있었습니다. 첫 책을 내던 2014년에는 작품에 대한 평을 듣기가 좀처럼 어려웠었는데 그때보다는 더 많은 관심을 받으며 중단편집을 출간하게 된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그때 상상할 수조차 없었던 결의 상처를 받기도 했습니다. 공개된 문지문학상 후보작 중에 제 작품이 그다지 뛰어난 편은 아니었는데, ‘여론’을 의식해 상을 준 것이라는 이야기를 누군가 저에게 전달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런 이야기를 비웃으며 넘길 만큼 무던한 성격을 갖지 못해서 꽤 힘들어하며 지냈습니다. 더불어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런 이야기 자체가 징후적이라고 여겨지더군요. 올해 출간된 문학상 작품집이나, 최종심 과정을 전하는 기사에는 굳이 이런 말들이 꼭 따라붙고 있습니다. ‘여성 작가들의 약진’ 혹은 ‘문단 내 성폭력 파문의 결과’……어떤 작가들은 오래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자기 작품을 쓰고 있을 뿐인데 말이죠. 저는 쓸쓸하게도 어떤 사람들에게는 지금이 예외상태인가 보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최근에 다짐한 것이 있다면 나는 더 많이 그런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저에게는 평생을 다해도 모자란 이야기들이 있는데, 지금이 항구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불안함은 자꾸 스스로를 다그칩니다. 지금이 아니라면 이 목소리가 확성기를 달 일은 앞으로 다시없을지도 모른다. 거의 그런 심정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조연정_  그럼 이 계절의 소설 선정작인 「바비의 분위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대학원의 신설 전공인 비판커뮤니케이션학과에서 ‘트위터의 혐오발언’을 주제로 석사 논문을 쓰고 있는 유미와, 그녀와 어린 시절을 공유한 사촌오빠의 이야기가 중첩되어 있는 소설입니다. 사촌오빠는 부모에게서 버림받고 학교에서도 따돌림을 당하며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사회부적응자입니다. 자신이 좋아하던 여성을 스토킹하다 개인아이디를 해킹해 그녀에 관한 악질적인 소문을 퍼뜨리기도 한 그는 결국 그녀의 형상을 본 뜬 로봇을 만들어 그녀에 대한 소유욕을 충족시키기에 이릅니다. 사랑받지 못한 스스로를 ‘병신새끼’라고 칭하다가 이내 “그럴 만한 여자가 아니”었다는 식으로 자위하는 사촌오빠의 심리는 꽤 전형적인 것으로 그려집니다. 현실의 인물이 극사실적으로 재현된 듯 느껴지는 소설인데요, 이러한 인물을 그리게 된 이유가 분명 있으실 듯합니다. 그 이유에 대해 듣고 싶어요.

박민정_ 이 작품은 제가 써온 작품들 중에서 가장 제 경험을 많이 반영한 작품입니다. 90퍼센트 이상 제 경험 그대로라 거의 자전소설이라 해도 무방할 듯합니다. 사촌오빠 캐릭터도 실제 모델이 있어요. 제게 컴퓨터와 PC통신 사용법을 가르쳐주고 하드디스크를 만들어준 사람인데, 저는 그를 통해 대학사회가 ‘누군가의 구애를 거절한 여성’을 얼마나 철저하게 짓밟는지 간접 경험했습니다. 제가 처음 PC통신에 접속한 1999년에 ‘군가산점 폐지’ 논쟁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중학생이었던 제가 처음 본 ‘커뮤니티 게시물’의 내용은, ‘이화여대생은 전원 위안부로 군에 입대해라’는 끔찍한 것이었습니다. PC통신 커뮤니티와 대학사회와 혐오발언이 총체적으로 제게 육박하던 순간이었습니다. 제게 ‘사촌오빠’의 모델이 되어준 사람은 소설 속의 그가 그러하듯 오랫동안 닿을 수 없는 사람을 짝사랑하고 그 진지한 마음을 제게 털어놓곤 했는데 그랬던 그가 어떻게 그 사람을 현실과 망상 속에서 차례로 무너뜨렸는지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 사람이 저를 ‘이대생 혐오’가 넘쳐나던 PC통신으로 이끌었다는 것이 아직도 제게는 신비로운 것입니다.

석사 논문을 쓰는 유미의 지금은 그 역시 저의 경험인데, 얼마 전 누군가가 대학원 시절은 어떠했느냐, 논문을 어떻게 썼느냐를 물어왔는데 열람실을 어슬렁대며 날마다 저를 불안하게 만들던 신원 미상의 남자만 떠올랐습니다. 소설 속 유미처럼 저도 어려운 철학책을 날마다 뒤졌고 뭔가 진리를 찾고자 했는데 지금 와서 떠오르는 건 밝은 캠퍼스를 가로질러 귀가하면서도 자꾸 뒤를 돌아볼 수밖에 없었던 나뿐이라는 것, 그런 빈곤한 경험인데, ‘사촌오빠’도 누군가에게는 그런 존재였을지도 모른다는 게 슬펐습니다.

 

 

조연정_  소설을 읽으며 가장 흥미롭기도 가장 혼란스럽기도 했던 지점은 오빠에 관한 유미의 심경에 대한 것입니다. 도서관에서 하루 종일 음란 동영상과 몰카 사진들을 검색하며 유미의 옆자리를 맴도는 남성을 불편해하며 유미는 사촌오빠를 떠올립니다. 그리고 “경멸하는 마음과 동시에 연민하는 마음이 들어 곤란했다”라는 표현을 쓰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오빠의 잘못을 용서받을 수 있나. 그가 불행했던 것이 사실이고 그의 좌절을 바로 옆에서 목격한 사람들이 있다고 해서”라는 문장도 이 소설에 적혀 있습니다. 그것이 어떤 범죄이든 범죄의 이유를 찾자면, 그러니까 악행을 저지른 인간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그것이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어떤 행위에 대해서든, 어떤 인물에 대해서든 인간의 감정적 반응이 한 가지로 매끄러울 수도 없을 것입니다. 이제껏 문학이 집중해온 일은 사회적 악행을 고발하는 일보다는 그것을 넘어서는 인간적 사태를 이해하는 일이 아니었나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렇다면 「바바의 분위기」가 유미를 스토킹하는 남자와 사촌오빠를 겹쳐놓음으로써 말하고자 한 것은 결정적으로 무엇일까요?

박민정_ 사회인인 저에게는 어떤 악행도 차마 이해할 여유는 없습니다. 그러나 소설가인 저에게 어떤 악인을 통한 악의 고발은 두려운 것입니다. 소설이 고발에 복무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그 어떤 인간이든 그를 이해하자는 생각 역시 차마 할 수 없습니다. 고발과 이해는 제게 모두 프로파간다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나를 쳐다봐주지 않는, 나보다 잘난 놈과 곧 결혼할 예정인 닿을 수 없는 아득한 아름다운 여자’를 노래하는 서사는 너무 많았고 제게는 지겨웠습니다. 홀로 궁정풍 사랑에 빠져 있는 오빠를 지켜보며 경악하는 동생 유미의 이야기가 저에게는 필요했고, 성인이 되어 자기가 어떤 망상 속 여자가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때 예전의 그 오빠를 떠올리며 못내 불편한 마음을 어쩌지도 못하는 이야기 역시 하고 싶었습니다. 그 인물들을 이용해 뭔가 결정적인 것을 이야기했다고 말하기는 조심스럽지만, 사촌오빠를 통해 남자를 이해한 것보다는 남자를 통해 사촌오빠를 더욱 증오하게 되었다고 말하는 쪽이 차라리 나을 것도 같습니다.

 

 

조연정_ 유미의 논문 주제는 “혐오발언 생산은 주체가 매체의 종속변수임을 드러내는 징후”라는 것입니다. 작품의 말미에서 유미는 자신의 논문 주제를, 나아가 현실과 이론의 관계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어느 정도 회의하게 되는 것 같은데요, 「바바의 분위기」가 최신의 이슈를 다루고 있는 만큼 ‘혐오발언과 새로운 매체’의 관계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박민정_ ‘주체는 매체의 종속변수’는 키틀러의 전언인데 이는 매체가 인간 육체의 확장이라는 나르시시즘과 대척해보았을 때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말이기도 했습니다. 소설 안에서 노골적으로 서술하기도 하는바 ‘트위터’라는 매체가 특유의 커뮤니케이션 구조를 갖고 있어서 혐오발언 재생산에 기여한다, 예전에는 그렇게 분석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소설 속 유미가 로봇 ‘바비’의 사진을 받아들고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고 느끼며, ‘외화’가 아니냐고 묻는 교수의 말을 아프게 받아들이듯 저에게는 SNS와 각종 커뮤니티 사이트의 혐오발언과 1999년 군가산점 폐지 논쟁에서의 혐오발언이 다르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뉴미디어의 발달이 확대 재생산했다고 하기에 혐오발언은 너무나 오래된 지난한 전통놀이처럼 느껴졌던 것입니다. 사실 소설 속 유미가 철학과에서 신설학과로 옮겨갔을 때는 문헌연구를 넘어 현상을 이론적 토대로 삼을 수도 있다는 환상을 가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현상을 직시한다는 것의 어려움을 깨닫고 나를 둘러싼 현실의 본질을 파악하는 일이 극도로 혼란스러워졌을 때 결국 자신이 그토록 저항하고 싶었던 문헌연구의 방식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절망이 유미에게는 있는데요. 뉴미디어와 정치 참여의 관계를 분석하던 몇 년 전의 제가 믿었던 ‘주체는 매체의 종속변수’라는 말은 결국 혐오발언에 대해서는 아무 설명도 해주지 못한다는 것, 그게 유미와 저의 공통된 좌절이 아닐까 합니다.

 

 

조연정_ 최근 문단에는 문학의 정치적 올바름 혹은 윤리적 올바름에 대한 요청과 우려의 목소리가 다양하게 공존합니다. 이에 대한 박민정 작가의 생각이 듣고 싶습니다. 문학의 윤리 혹은 작가의 윤리와 관련하여 현재 박민정 작가를 가장 곤란하게 만드는 지점은 무엇일까요?

박민정_ 저는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말을 잘 모릅니다. 그렇게 읽힌다면 다 이유가 있으리라고 생각할 뿐입니다. 저는 더욱이 어떤 선한 인물을 그려본 적도 없습니다. 하물며 이 소설 속 유미조차도 ‘이러면 안 되는데’라고 생각하면서 중국인 유학생들을 싸잡아 무시하기도 합니다. 피해자를 그릴 때도 그를 선하게 표현하는 방법을 알지 못했으며 그런 과정을 통해 올바름을 실천하는 일이라는 건 제게 요원한 일입니다. 다만 다시 사촌오빠의 이야기를 잠깐 언급하자면, 그가 자신의 궁정풍 사랑에 울부짖으며 고통받을 때, 지켜보는 사촌동생이었던 저는 그것이 조금도 숭고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숭고하기는커녕 자기가 무슨 잘못을 하는지도 모르는데 애달프게 울고 있는 게 한심할 뿐이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읽어온 수많은 ‘정전’ 속 주인공들이 그랬습니다. 그런 건 이제 좀 그만해야 하지 않나, 가 제가 생각하는 윤리에 가장 가까울 것 같습니다. 저에게는 지금 하는 이야기가 옳은 이야기가 아니라 절박한 이야기에 가깝습니다. 아마 이 생각으로부터 배반당할 날도 오리라고 예감하며, 이 예감이 가장 곤란한 것 같습니다.

관련 작가

박민정 소설가

1985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중앙대 문예창작학과와 동대학원 문화연구학과를 졸업했다. 2009년 『작가세계』 신인상에 단편소설 「생시몽 백작의 사생활」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소설집 『유령이 신체를 얻을 때』(민음사, 2014)로 제22회 김준성문학상을 수상했다.   자세히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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