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봄, 김효나

「2인용 독백」 (문장웹진 2017년 4월호)

선정의 말

복합감각의 실존, 혹은 수동적 관음(觀音)의 능동적 차연

-김효나의 「2인용 독백」

“어떻게 되돌아오지 않을 수 있을까?” 신예 김효나의 서술자는 그렇게 읊조린다. 전통적 이야기가 주로 잃어버린 것을 되찾는 과정에서 자기동일성의 상실과 회복의 드라마를 연출하려 했다면, 이제 새로운 이야기는 그 방향을 파상적으로 전복할 때 가까스로 탄생할 수 있는 어떤 감각이라고 여기는 것일까? 어쨌든 김효나는 되돌아가지 않기 위해, 잃어버리고 잊기 위해, 전방위적 감각을 탈주적으로 펼쳐 보인다.

소설은 3년 동안 살았던 집에서 이사하기 위해 짐을 꾸리는 인물의 독백으로 시작한다. 3년 중 2년은 누군가와 함께 살았고, 마지막 1년은 혼자 살았다. 3년이되 30년 같았던 그 집을 벗어난다는 것은, 그 집에서 마주쳤던 사물들과 이미지들, 혹은 상처들을 지우는 이행의 기획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쩌면 2년 동안 함께 살았던 사람과의 상처 때문이었을까. 그러나 그 시절 무슨 일이 있었는지, 혹은 상처를 받았던 것인지에 대해서는, 독자 입장에서 헤아리기 어렵다. 다만 “주운 기억” 부분에서 인상적 독백의 하나인 “어떻게 되돌아오지 않을 수 있을까?”를 통해 잊고 싶은 사연이 있었나보다 짐작할 따름이다.

독백은 이제 잊기 위해, 잃기 위해 한없이 낮은 어조로 가녀리게 이어질 듯 끊어지고 끊어질 듯 이어진다. 그러면서 깊은 수동성의 세계를 탐닉한다. “사물들과 영원한 술래잡기 놀이”를 하면서 “내가 사물을 발견한다기보다는 사물이 나를 부르는 거야”라고 말할 때, 그것은 촉발된다. 이 수동적 탈주체화를 위해 주인공은 소리알갱이와 감정알갱이 사이의 교감을 시도하고, “길에서 무언가 줍는다는 것은 시각보다는 청각과 관계된 일이야.” 라는 대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수동적 관음(觀音)의 감각 놀이를 수행한다. 사물의 풍경을 어조로 인지하고, 그 어조나 음성은 때때로 촉각으로 가늠되기도 한다. 이 복합감각의 놀이가 매우 신선한 감각의 실존을 알게 한다.

그러면서 “이미지와 중첩된 텍스트”에서 “이미지를 지워가는 텍스트” 놀이를 복합적으로 추구한다. “고정된 기억, 지워지지 않는 이미지를 글쓰기를 통해 극복해 보려는 걸까요?”라는 독백은 중의적이다. 고정된 기억은 애도의 발원점처럼 보이지만, 그래서 극복 대상처럼 보이지만, 결코 현전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무의식의 심연에 웅크리고 있는 그 지점의 이미지를 지워가기 위해서 이미지의 감정알갱이와 소리알갱이를 미분하면서 지우려 하지만, 그것은 역설적으로 이미지를 적분하는 결과는 낳기도 한다. 이미지를 지우기 위해 이미지를 재현하고, 다시 지우고 하는 과정에서 고정된 기억은 계속 미끄러진다. 그 미끄러짐의 과정을 견딜 때, 무력해진 글쓰기는 새로운 에너지로 충전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을 작가 김효나는 견지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짐작한다. 복합감각의 신선함, 감각의 중층성, 역설적 묘사의 수행성 등 여러 면에서 새로운 서술의 지평을 예감케 하는 작품이다. – 우찬제(문학평론가)

 

김효나의 「2인용 독백」은 망각의 늪에 빠져 있던 과거의 기억이 낯선 사물처럼 현재의 삶에 당도했을 때 발생하는 낯선 감정과 체험을 아름다운 문체로 기록한 소설이다. 알랭 레네의 영화들을 연상시키는 김효나의 소설에서 이야기의 화자는 발신인 불명의 잘못 걸린 전화처럼 당도한 과거의 기억을 경험하면서 돌연 유령처럼 익명화되기에 이른다. 그런 의미에서 소설의 제목인 ‘2인용 독백’은 이 소설의 주제이자 형식을 가리키며, 소설의 주체를 스스로의 삶으로부터 이방인의 목소리처럼 추방시키는 과정을 가리키기도 한다. 때문에 「2인용 독백」은 소설 쓰기의 불가능성을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방식으로 증언하는 소설이기도 하다. 롤랑 바르트가 말한 바 있듯이, 소설은 과거의 사건을 완료형의 시제로 박제시키는 테크닉으로 인해 비로소 태동할 수 있었던 글쓰기의 장르이다. 그러나 어떤 기억은 완료형의 시제로 완성될 수 없는 것, 더 나아가 글쓰기의 주체가 머물고 있는 ‘현재’라는 지평에 균열을 가하는 우연적 사건이기도 하다. 이러한 우연성 앞에서 주체는 익명의 기억으로 인해 극단적인 수동성의 상태로 텍스트 앞에 노출된다. 글쓰기로부터 소외된 글쓰기, 텍스트의 무기력함을 증언하는 글쓰기. 망각의 어둠 앞에 노출되어 있는 김효나의 자기 부정적 글쓰기를 속에서 우리는 섬광처럼 빛나는 어둠의 아름다움을 감각할 수 있을 것이다.  – 강동호(문학평론가)

인터뷰

이경진_ 안녕하세요? <이 계절의 소설>을 통해서 처음 인사드리는데요. 2016년 『쓺―문학의 이름으로』를 통해 등단하셨고, 이번에 선정된 소설과 같은 제목의 첫 소설집 『2인용 독백』의 출간을 준비 중이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등단하신 지 얼마 안 되셨고, 또 첫 소설집이 나오기 전이라 작가님이 어떤 분이신지 궁금해하는 독자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독자분들께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김효나_안녕하세요.

읽어주신 것도 감사한데, 이 계절의 소설로 소개해주셔서 두 배로 감사드린다는 이야기를 먼저 드리며 제 소개를 하자면……
저는 과거가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미래도 있는 사람입니다.
현재는, 계속 꿀렁꿀렁 흘러가는 것을 다만 바라보고 있는 사람입니다.
저는 그냥 보는 일을 가장 잘 하는 사람 같다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글을 쓰기 전에는 사진을 찍었고 오랜 시간 암실에 머물며 이미지를 인화하고 현상했었습니다.

 

경진_ 「2인용 독백」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이야기해보고 싶습니다. 이 소설에서 기억은 능동적 행위의 대상이 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기억하는 자는 기억을 묻고, 또 줍고, 기억의 표면을 파헤치고, 기억의 덩어리를 부스러뜨리며, 기억을 던져 버리기도 합니다. 다른 한편으로 기억은 그 스스로가 자동사적인 삶을 살며, 기억하는 자를 부르거나 엄습하는 힘을 갖고 있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기억하는 자가 기억에 대해서 갖는 이 능동적이면서도 수동적인 관계가 소설에 잘 나타나 있는 것 같은데요. 특별히 이런 주제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계기가 있으신지요?

김효나_기억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자꾸 떠올라 현재를 엄습하고 군림하는 기억을 어떻게 처리해야할지 몰라서 기억을 버리고, 줍고, 더 멀리 버리고, 다시 모른 척 줍고 하다 보니 이런 소설을 쓰게 되었습니다.
「2인용 독백」에 들어있는 「주운 기억」은 십 년 전 실제로 제가 만들었던 작은 책의 제목이기도 한데, 「주운 기억」을 완전히 잊고 있던 중 어느 날 방을 정리하다 우연히 그것을 주웠고, 주운 기억을 다시 주웠다는 사실에 낯설어하며 그 소설을 썼습니다.

 

이경진_ 소설을 읽으면서 프루스트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기억에 대한 다양한 비유와 성찰이 등장하는 점도 그렇고, 앞서 기억하는 자가 기억에 대해서 갖는 능동성과 수동성은 프루스트의 ‘의지적 기억’과 ‘무의지적 기억’에 대응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또 소설에서 한트케나 뒤라스의 글이 인용되기도 하는데요. 특별히 영향을 받은 작가나 작품이 있는지요?

김효나_ 뒤라스, 바르트, 한트케를 좋아합니다. 또한 아르브뤼 계열의 원시적이고 병적인 작업들에서 들리는 울부짖음, 고통, 욕망, 뜨겁고 울컥하는 덩어리들이 지속적으로 저를 건드립니다. 아르브뤼 작가들은 기억 혹은 고통에 대해서 완전히 수동적입니다. 살아가면서 나타나는 다양한 정신적인 질환들, 광기의 증상들을 받아들이고 아파하면서 그것이 예술인 줄 모른 채 종이 위에 옮겨 쓰거나 그림으로 그립니다. 저의 경우 일단 무의지적인 기억의 시간을 거친 후, 글쓰기를 통해 다소 의지적으로 기억을 행하는 것 같습니다.

 

이경진_ 소설에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화자가 지나간 시간을 더듬고 헤아리느라 등이 굽고 머리가 하얗게 샌다고 말하는 부분인데요. 여기서 기억하는 자는 기억을 하면서 늙어갑니다. 이것은 프루스트가 우리가 기억을 통해 무자비한 시간의 힘에서 벗어나 영원성을 체험할 수 있다고 보았던 것과 반대입니다. 기억은 우리에게 어떤 시간의 체험인 것일까요?

김효나_유령의 시간.
기억하는 동안 우리는 이름도 사라지고, 우리에게 부여된 의무나 역할도 사라지고, 단지 어느 작은 방에 누워 기억하고 또 기억하는 물컹한 덩어리가 되는 느낌입니다. 기억의 목소리들이 끊임없이 말을 걸어오고 나는 대답하거나 침묵합니다.

 

이경진_ 앞으로의 집필 계획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곧 출간될 예정이라는 첫 소설집을 포함해서 계획 중인 작업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는지요? 그리고 어떤 소설을 쓰고 싶은지요?

김효나_ 하나의 목소리를 갖고 싶다, 는 생각을 하면서부터 글을 썼던 것 같습니다. 저에게 책은 어떤 낯선 목소리입니다. 독서는 그 목소리에 오랜 시간 귀 기울이며, 함께 중얼거리거나 함께 울부짖는 행위입니다. 많은 말을 하지 않게 되고, 고개를 숙이게 되면서 목소리를 갖고 싶어졌고 고유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소설을 쓰고 싶습니다. 그 목소리에 누군가 동참할 수 있고, 침묵의 공간에서 읽는 자의 음성이 소리를 낼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외견상 두 개의 목소리가 대화를 주고받는 이인용대화의 형식을 당분간 이어가며 다양한 발화의 방식을 발견해볼 생각입니다. 다음 달 문학실험실에서 출간 예정인 「2인용 독백」에는 각기 화자가 다른, 크고 작은 15개의 대화 조각들이 엮여 있습니다. 그중 「남자여자」라는 대화를 가장 마지막으로 썼는데, 그들의 목소리가 앞으로도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경진_ 감사합니다.

김효나_ 발화할 공간을 주셔서 제가 감사드립니다.

관련 작가

김효나 소설가

1982년 서울에서 출생. 2016년 『쓺—문학의 이름으로』를 통해 등단했다. 첫 소설집 『2인용 독백』이 출간될 예정이다. 발화모임 '즙즙'의 멤버이다. 자세히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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