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 백수린

「여행의 끝」(『문학과사회』 2016년 겨울호)

선정의 말

흔히 사람들은 여행이 ‘또 다른 나’를 발견하는 여정이라고 말한다. 여행 예찬자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여행의 끝에는 이전과는 다른 나, 이전과는 다른 삶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버리기 쉽지 않다. 소설의 상당 부분을 여행의 서사에 기대고 있는 백수린 역시 이러한 여행자의 들뜬 정서를 모르지 않는다. 비록 그녀가 여행자들의 섣부른 기대를 늘 부드럽게 달래주었던 것은 아니지만, 「여행의 끝」에서처럼 그 기대를 무참하게 배반하면서 만족시켜주었던 적은 없었던 듯하다. 놀랍게도 이 소설에서 백수린은 여행의 서사를 이른바 ‘개저씨’로서의 ‘나’를 발견하는 서사로 활용한다. 이것이 놀라운 이유는, 여행자 특유의 감상적이고 헝클어진 감각들을 우아하게 매만지던 작가가 자신의 장기인 섬세함을 다소 희생하면서까지 한 남성 여행자의 내면에 잠재된 추레한 보수성을 폭로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년퇴임한 교사 종구는 몇 달 전 아내를 잃고 혼자 쓸쓸히 빈집을 지키며 고독한 일상을 유지하다가 “그에게 아직 남은 가족이 있는데 이렇게 홀로 남겨져 있다는 사실이 억울”(p.65)하다는 생각이 들어 프랑스에 있는 하나뿐인 딸을 보러 간다. 작가는 종구의 프랑스 여행을 순차적으로 쫓으며 아내를 극진히 보살피던 다정한 남편이자 이따금 프로스트의 영시를 암송할 줄 아는 교양인이었던 60대 한국 남성에게서 어떻게 ‘개저씨’의 속성이 발현되는지 특유의 차분하고 절제된 어조로 이야기한다. 시작은 대단할 것이 없다. 종구는 한국인의 관념 속에 과도하게 낭만화된 샤를 드골 공항이나 퐁네프 다리의 실상에 실망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인천공항이나 반포대교를 자동적으로 떠올리면서 크기와 위용을 중시하는 산업화 시대의 감각으로 한국의 발전상을 기어코 확인하고 마는 서구 콤플렉스를 보여주더니, 딸의 프랑스 애인을 만나면서부터 나이와 위계를 따지는 특유의 권위주의적인 사고방식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는 딸의 애인에게 만나자마자 직업과 나이를 묻고, 그의 채식주의를 남성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무시하며, ‘아랫사람’이면서 먼저 악수를 청한다거나 ‘어른’이 따라주는 술을 두 손으로 받지 않는 그의 행동에 언짢아하고 그를 가르치려 든다. 그런데 종구의 ‘꼰대’적 면모는 동서양 간의 문화차로 용인될 수도 있을 무례한 행동으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그의 보수성은 프랑스에서 새롭게 깨어난 자기 안의 가부장성과 인종주의와 만나면서 맹렬한 열기를 띠기 시작한다. 그는 파리의 거리에서 “비쩍 마른 백인 남자의 허리를 끌어안고 있는 뚱뚱한 아시아 여자나 가슴골이 드러난 옷을 입고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흑인 여자”를 보고 “이 나라 도처에 널린 문란함에 대해서 욕지기”(p.82)를 느끼며, 자기 딸 역시 그런 문란한 여자가 아닐까 딸을 강박적으로 의심한다. 백수린은 종구라는 ‘평범하고 점잖은’ 한국 아버지의 남성성이 어떻게 보수적 성도덕과 성차별주의, 인종차별주의와 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지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결국 자신의 가부장적이고 인종주의적인 가치관이 통하지 않는 낯선 타국에서, 한평생 성실하고 올바르게 살아왔다는 감각이 부정당한다고 느끼며 “영문을 알 수 없는 서글픔과 불안함”(p.76)으로 답답해하던 종구는 친숙한 환경의 한국행 국적기에 타자마자 만만한 젊은 여성 승무원에게 보란 듯이 진상을 부린다. 이 낯 뜨거운 장면은 주인공 스스로도 (독자 또한) 전혀 예상치 못했던 혐오스러운 ‘개저씨’의 도래라는 의미에서 여행의 이상한 성취이다. 이 결말이 다소 갑작스럽고 불쾌하다면, 종구의 여행이 완전히 끝나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이경진(문학평론가)

인터뷰

김신식_ 여행이 자주 나오는 작가님 소설에 제가 어울리는 인터뷰어일까 망설였습니다. 실은 지난해 비행기를 처음 타봤거든요. (웃음) 목적지도 제주도였답니다. 작품을 읽고 문득 생각했습니다. 난 언제 ‘아, 이게 여행이구나’ 느꼈을까. 뒤돌아보면, 2000년대 초반 친구들이 싸이월드 사진첩에 해외여행 사진을 올린 걸 보고, ‘여행이 저런 거군’ 한 것 같아요. 작가님에게 ‘아, 이게 여행이군’ 하던 기억이 있다면요.

 

백수린_ 사실 저는 여행을 귀찮아하는 편인 데다 모험심이 아주 부족해서 ‘아, 이게 여행이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여행은 거의 해본 적이 없어요. 비행기를 타고 낯선 곳에 가더라도 숙소 안에만 있거나, 어떤 카페나 공원을 찾아가 앉아 있거나, 시장을 어슬렁거리는 정도라서요. ‘아 이게 여행이군’이라고 하시니까, 떠오르는 것은 먼 나라에서의 기억이 아니라 대학교 때 친구들이랑 제부도에 놀러 갔을 때의 일이에요. 여자 친구들 셋이 놀러가서 재미있게 놀다가 섬을 빠져나오는 길에 다리가 아파서 히치하이킹을 했어요. 셋 다 소심해서 평소라면 낯선 사람의 차에 올라타는 일은 하지 않았을 텐데 제가 차를 세우니까 망설이던 친구들이 저를 따라 차에 올라탔고 덕분에 쉽게 시골길을 빠져나왔거든요. 제게 여행이란 장소가 어디든 그렇게 자신과 다른 사람이 되는 그런 순간을 가리키는 말인 것 같아요.

 

김신식_ 작가님 소설을 읽으면 생활 대신 ‘-살이’라는 단어가 입안에 자주 맴돕니다. 전작들도 그랬지만 ‘어디론가 떠밀려서 지내는’ 이들에게 눈이 가는. 소설을 쓰시면서 작가님이 놓지 않으려는 기구한 삶의 유형이 있는지요.

 

백수린_ “어디론가 떠밀려서 지내는”이라는 표현이 제 인물들을 설명하는 데 정말 적절한 표현인 듯싶습니다. 등단했을 때부터 줄곧 저는 경계로 밀려난 사람들, 어떤 범주에 속하지 못하고 이쪽과 저쪽에 걸쳐 있는 (혹은 이쪽과 저쪽 모두에서 배척을 받는) 사람들에 관심이 간다고 말해왔습니다. 이때 경계란 물론 물리적인 것만은 아니고, 심리적인 것일 때도 있고요. 비슷한 맥락에서 언뜻 겉으로 보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신을 견디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인물들에도 애정을 느끼곤 합니다.

 

김신식_ 주인공 종구가 아낼 여읜 뒤 딸을 보러 프랑스에 가는데요. 종구의 딸이 종구와 대화하면서 엄마의 지난 삶에 대해 그다지 파고드는 말을 하지 않는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딸의 입장이었다면,으로 시작되는 지점이 으레 있을 텐데 이를 비껴간다 할까요. 종구와 딸은 서로 적당히 신경을 건드리는 관계로 비춰졌어요. 아내를 (이야기 배분상 두 인물에 비해 상대적으로) 투명하게 처리한 이유가 있었을까 궁금했습니다.

 

백수린_ 이 소설에서 제가 중점을 둔 것은 애도 자체나 부녀 혹은 모녀 관계라기보다는 종구라는 인물이 지금껏 살아왔던 삶(집)을 떠나 낯선 곳(여행지)에서 생활하게 되면서 겪는 혼란, 흔들림 그 자체였어요. 종구라는 인물 자체에 집중하고 싶다 보니 여행지에서 함께 생활하는 인물이 아닌 아내의 비중은 상대적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었는데요. 종구에게 아내는 함께 인생을 살아온 동반자로서 그리움의 대상일 수 있겠지만 동시에 일상성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었던 존재이기도 합니다. 저는 아내를 잃고, 한국을 벗어나고, 딸과 생활을 하는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서 종구라는 인물의 삶을 흔들어놓고 싶었어요. 딸의 입장에 대해 지면을 더 할애했다면 이 소설은 완전히 다른 소설이 될 수밖에 없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김신식_ 종구는 딸을 만나, ‘이 정도’ 직장밖에 못 다니는가라는 실망과 ‘이 정도(집의 상태)’를 어떻게 유지하지라는 의구심 사이를 왔다 갔다 합니다. 소설의 끝,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종구가 승무원에게 역정을 내는 건 딸을 향한 실망과 의구심이 풀리지 못한 채, 그 상태가 응축된 우발적인 행동에 가까웠을까요.

 

백수린_ 종구가 승무원에게 역정을 내는 것이 우발적인 행동임은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그 역정은 의구심과 혼란 끝에 내지른 고통스러운 비명이기보다는 종구가 다시 ‘나’를 되찾았다는 사실을 확인받고자 하는 몸부림에 더 가까운 행동이라고 생각해요.

 

김신식_ 종구가 딸, 딸의 애인 기욤과 식사를 하다 화장실에 다녀온 뒤 방향을 잠시 잃는 대목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사람이라면 겪어봄 직한 리얼한 장면이서도, 이 장면을 영화화한다면 어느 사운드도 집어넣지 않은 채 종구를 잠시 몽환 속에 가두고픈(저는 배우 조재현 씨를 떠올리며 소설을 읽었답니다). 작품 속 종구는 헤매는 걸 두려워하는데요. 이는 단지 이국을 여행하는 자가 갖는 두려움이었을까요, 아니면 딸의 삶에 실망한 종구가 나라도 정신을 차려야겠다는 데서 본인을 동여매고자 한 두려움이었을까요.

 

백수린_ 제 소설 속에는 이국에 가 있거나, 이국에서 온 인물들이 종종 등장하고, 그래서 여행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아온 편인데요. 사실 지금까지 발표한 다른 소설들을 쓸 때는 여행이라는 소재 자체가 제게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았어요. 그저 누군가 다른 이를 만나러 가거나, 만나러 오는 상황, 낯선 장소에 놓여 있는 상황 그런 것들이 필요해서 썼는데 그런 것들이 ‘여행’으로 읽히게 된 경우가 많았거든요. 반면 이 소설의 종구는 다른 인물들과 달리 정말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하고, ‘여행’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인물입니다. 종구가 두려움을 느낀 것은 여행을 통해서 지금까지 그가 살아왔던 삶의 방식에 의문이 생겼기 때문이 아닐까요? 소설을 쓰면서 종구는 어쩌면 결코 길을 잃어서는 안 된다고 믿으며 살아왔던 종류의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결코 헤매서는 안 되고, 살기 위해서는 언제나 단단한 것에 발을 고정시켜야만 한다고 믿어온 사람, 그래서 아주 조그만 진동에도 걷잡을 수 없는 공포를 느끼는 사람의 마음에 대해서 소설을 쓰는 내내 상상했고, 그래서 조금 슬펐습니다.

관련 작가

백수린 소설가

1982년 인천에서 태어나 연세대 불문과를 졸업했다. 2011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거짓말 연습」이 당선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현재 서강대 불문과 박사과정에 재학중이다. 자세히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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