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2월, 최은영

「그 여름」 (『21세기문학』 2016년 겨울호)

선정의 말

조심하는 사람― 들킬까 봐, 읽힐까 봐

 

문학평론가 서영채는 『쇼코의 미소』 해설에서 최은영의 작품이 신통하다고 했다. 신통함. 요즘은 잘 쓰지 않는, 마치 옛 다방에서 주문한 십전대보탕 같은 말맛이 느껴지지만 이는 최은영을 바라보는 평자들의 시선을 어느 정도 대변하는 것 같다. 어쩌면 작가에겐 치명적인 그러면서도 작가가 부러워지는 평가. 뭔가 특출하지도 신선하지도 않은데, (여기서부터 중요하다) 왜 이리 마음을 끄는 걸까. 이 신통함을 쪼개어보면, 소설의 효력과 소설가의 능력이 서로 잘 맞아떨어지고 있는지 의심하면서도 소설이 지닌 미혹에 매혹된 평자 자신의 투항이 뒤섞여 있다.

 

언젠가부터 평자들은 최은영의 신통함을 맑음으로 번역했다. 나 또한 그녀의 작품을 읽었을 때 이 청량감의 출처와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한데 맑음과 해맑음은 다르다. 해맑은 사람은 저질러놓은 일에 종종 대책이 없어 그 꿍꿍이가 싱겁다고, 아니 꿍꿍이도 아예 없으리라 치부하고 싶지만, 맑은 사람은 비의의 렌즈를 대고서라도 뭐가 그리 담담한지 파보고 싶은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다. 최은영 소설의 맑음에는 읽어내고 싶은 대책이 있다. 나는 이를 조심성에서 찾는다.

 

최은영의 소설엔 조심하는 사람들이 자주 등장한다. 「그 여름」도 마찬가지다. 이경, 수이, 은지. 세 레즈비언의 연애를 다룬 본 소설은 “감정을 들킬까 봐” “그런 마음을 읽힐까 봐” 예민해하는 여성의 말과 생각으로 이뤄져 있다. 조심하는 사람에게 안심이란 곧 근심이다. 근심하지 않으면 불안하다. 소심과 의심으로 쌓인 내면에는 상대의 감정을 풍부하게 읽은 흔적이 있다.

연애의 시기 서로 타들어갈 땐 행여나 그렇게 너의 우울을 읽어낸 흔적이 자신도 모르게 새어나와, 널 불편하게 할까 봐 나는 늘 읽지 않은 척 감정을 간수하며 너를 배려한다.

그러다 불현듯 조심성이 제어해놓았던 울분이 터진다. 할퀴는 말을 내뱉은 본인의 여린 감정에 소스라치면서, 자신이 생각보다 단단한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에 실망하고, 뒤돌아보니 너를 궁금해했던 건 결국 너를 읽고 싶어서가 아니라, 내가 무척 괜찮은 사람임을 주변 사람이 읽어주길 바란 것이었단 축축한 말들이 방언처럼 나온다. 이런 우리네 삶의 길을 뚜벅뚜벅 걷는 듯한 「그 여름」은 무엇보다 상처를 발견하는 여성, 더 나아가 왜 하필 너의 그 상처가 내 눈에 발견되고 밟히는지 괴로워하는 운명을 체감하는 여성들의 섞이려는 노력이 은은하게 빛난다.

 

얄궂게도 소설 속 조심하는 사람이 자신의 삶 하나하나, 자신이 만나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괴로워하고 그 때문에 홀쭉해질 때마다 나는 왠지 모르게 따뜻해진다. 「그 여름」의 겨울맛 나는 선물일지도. 김신식(독립연구자)

인터뷰

강동호_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올해 「씬짜오, 씬짜오」가 이달의 소설(6월)로 선정된 후 두번째로 인사드리게 되었네요. 이제 어느덧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기에 이르렀네요. 문단이든 정치권이든 우리 사회에 누적된 부조리와 폭력성의 민낯이 드러난 한 해라, 개인적으로는 글을 쓰는 것 자체가 굉장히 힘들었는데요. 작가님은 어떻게 지내셨는지, 그 근황이 궁금합니다.

 

최은영_  안녕하세요. 이렇게 다시 인사할 수 있게 되어서 반갑고 기쁩니다. 저는 지난 7월에 책을 내고 개인적으로는 행복한 여름을 보냈습니다. 가을과 겨울로 넘어 오면서 여러 상황들 때문에 상처도 받고 분노하기도 했고요. 그간 가려진 것들이 폭로되고, 수면 위로 떠오른 시기인 것 같습니다. 자신보다 약한 존재를 짓누르고, 침묵을 강요하고, 진실을 가리기에 급급한 사람들의 모습. 아주 작은 권력이라도 제 손에 들어오면 폭력적으로 휘두르는 사람들의 모습. 그런 모습을 보고 환멸을 느끼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이 분노와 상처의 한복판에서 일말의 희망을 보고 있습니다. 여기서 멈추면 안 되겠지요. 저 자신부터 정신을 차리고 좀더 예민하고 섬세하게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람은 아주 작은 특권이라도 손에 쥐면 그것을 놓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공적인 영역에서 뿐만 아니라 사적인 영역에서도요. 공적인 영역에 대해서는 진보를 자처하면서도 정작 사적으로는 다른 사람을 이용하고 해를 끼치는 사람들도 있고요. 저 또한 그런 사람 중의 하나가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것 같아요.

 

강동호 「그 여름」은 이경과 수이라는 두 여성 인물들 사이의 사랑을 섬세하고도 아름답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여름」처럼 최근 들어 한국 소설에서 퀴어적인 소재가 자주 등장하는 것이 흥미로운 현상 같습니다. 퀴어적인 것을 소재적으로 특별하게 과장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분명 과거와는 다른 현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요즘 들어 ‘젠더적인 것’에서부터 ‘소설적인 것’을 이끌어내려는 사례들이 점차 많아지는 이유는 뭘까요? 이건 최은영 작가의 이번 작품의 문제의식에 대한 질문이기도 합니다.

 

최은영 존재하지만 가려진 것, 중요하지만 중요하게 취급되지 않은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문학이라고 저는 생각해왔습니다. 책을 내고 왜 여성의 이야기만 쓰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요. 텔레비전만 틀어 봐도 모두 남자들의 이야기잖아요. 남자들의 경험, 남자들이 이해한 세계, 남자들이 바라보는 여자. 영화나 이야기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고요. 왜 여자의 이야기를 쓰냐고 묻는다면 저는 왜 세상이 온통 남자들의 이야기로 가득한지 역으로 묻고 싶어요. 퀴어 서사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는데요. 이성애자 커플의 이야기를 쓰면 왜 이성애 커플 이야기를 쓰는 거예요?라고 묻는 사람은 없잖아요. 그저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는 것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강동호_  「그 여름」은 ‘이경’이라는 인물이 겪는 내면적 갈등에 초점이 맞춰진 상태에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수이’라는 인물이 가지고 있었을 자의식과 콤플렉스, 그리고 이경에 대한 마음이 이경의 관점에서만 그려지고 있어서 조금 아쉽기도 했습니다. 물론 작가의 의도라고 생각됩니다만, 그럴수록 더 궁금해지더라고요, 수이라는 인물에 대해서요.

 

최은영_ 처음 소설을 쓸 때 ‘수이’는 중요한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이경’과 ‘은지’의 연애에 대해 쓰던 중에 잠시 등장한 인물이었어요. 그런 수이의 모습이 저에게 생생하게 다가와서 초고를 이경과 수이 중심으로 다시 쓰기 시작했습니다. 이 소설에서 제가 가장 큰 애정을 둔 인물도 이경이 아니라 수이입니다.
이경은 사랑에 빠져 있는 자기 자신의 모습, 자기 자신의 상황에 집중하는 인물인 것 같아요. 수이를 사랑하지만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이해하려 크게 노력하는 것도 아니고요. 이경은 수이와의 관계가 끝나고 나서야 ‘수이는 어떤 사람이었을까’를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이경은 수이에 대해 자신이 아는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데요. 수이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감추고, 이경을 초점화자로 둠으로써 읽는 분들이 수이의 마음이 어떠했을까, 어떤 상황이었을까를 이경의 입장에서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두고 싶었습니다. 수이를 이러이러한 사람이다, 라고 단정 지어 보여주고 싶지는 않았어요.

 

강동호_ 최은영 작가도 잘 아시겠지만, 한국에서는 몇몇 퀴어 영화에서 그려지고 있는 인물들 사이의 관계를 규정하고 해석하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논란이 있었습니다. 몇몇 남성 비평가들이 영화에서 그려지는 사랑을 굳이 특별한 것으로 치장하지 말자고 주장했었지요. ‘보편적 사랑’의 문법으로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인데요. 물론 그러한 주장의 의도가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보편적 사랑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퀴어성이 괄호 쳐지고, 결과적으로 이야기의 젠더적 정치성이 소극적으로 평가될 여지가 있다는 것을 간과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퀴어라는 소설적 소재의 특수성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최은영_ 다수(이성애자/남성/비장애인……)에 의해 규정된 보편이라는 것이 소수자에게는 폭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소수자의 존재와 그들의 구체적인 경험을 지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비슷한 맥락으로 예를 들어볼까요. ‘페미니즘을 넘어 휴머니즘으로’와 같은 말, ‘여성의 권리만이 아니라 인간 보편의 권리를 지향한다’ 같은 말을 들을 때 여성으로서의 저는 화가 나고 소외감을 느끼게 되는데요. 굳이 소수자의 자리를 지우면서 보편을 말해야 하는가,라는 의문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구체적인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남자라면 겪지 않아도 될 일을 여성이어서 겪는 것, 내가 이성애자라면 겪지 않아도 될 경험을 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이어서 겪게 되는 것. 그런 지점을 보편이라는 이름으로 지워버리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러한 발화의 맥락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레즈비언 여성이 자신의 연애를 ‘이건 그저 사랑이에요’라고 이야기하는 것과, 이성애자 남성이 레즈비언 여성의 연애를 보고 ‘그건 동성애라기보다는 보편적인 사랑이다’라고 ‘규정’하는 것은 전혀 다른 맥락의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강동호_ 한편으로는 한국에서 씌어지고 있는 퀴어 서사가 다소 전형적인 연애담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때도 있습니다. 상당 부분 소설이 성장담의 형식으로 그려지고 있고, 연애 서사의 경우 계급 차, 종교관 등 두 인물 사이의 내적 차이로 인해 결별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그 여름」이 많은 독자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요소가 많다고 생각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것은 「그 여름」 역시 다소 안전한 이야기, 모든 사람들이 크게 불편함을 느끼지 않을, 어떤 보편적 연애 서사에 의존하고 있다는 뜻은 아닐까요?

 

최은영_ 한국 퀴어 서사에 나타난 계급의 문제, 종교의 문제 같은 내적인 차이에 대해 말씀하셨는데요. 그러한 내적 차이 또한 정체성 문제와 떨어뜨려 생각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기독교를 믿는 이성애자와 무신론자인 이성애자 커플의 내적 차이와, 기독교를 믿는 동성애자와 무신론자인 동성애자 커플의 내적 차이를 ‘종교관 차이’라는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런 설정이 연애 서사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측면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한국 소설에서 퀴어 서사가 차지하는 유독 작은 비중을 생각한다면 더 그렇게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여름」은 레즈비언 커플의 사랑 이야기입니다. 수이는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성정체성을 발견한 인물이고, 이경은 수이와의 연애를 통해 자신의 성정체성을 인정하게 되는데요. 두 인물이 자신의 성정체성을 받아들이는 자세나 관계를 시작하는 태도가 다르기 때문에 갈등이 발생합니다. 이런 부분을 ‘보편적이다’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누구나 불편함을 느끼지 않을 안전한 서사라고도 볼 수 있겠지만, 호모포비아를 내면화한 사람들이 읽는다면 불편함을 느낄 수 있는 이야기라고도 생각합니다. 살면서 수많은 호모포비아들을 만났고, 자기 자신이 동성애자이지만 호모포비아를 갖고 있는 것이 고통스럽다는 이야기도 들어보았습니다. 호모포비아가 만연한 사회에서 레즈비언 연애 서사가 모두에게 편안하게 읽힐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강동호_ 마지막으로 대상화와 당사자성에 대해 질문하고 싶습니다. 소설은 타인의 삶을 재현한다는 점에서 불가피하게 타인의 삶을 대상화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건 소설이 근본적으로 안고 있는 윤리적/정치적 숙명이긴 하지만, 이 문제가 퀴어라는 소재로 연결될 때 당사자성과 관련된 딜레마가 더욱 두드러질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자면 당사자성은 앞에서도 언급한 전형성의 문제와도 연결됩니다. 당사자가 아닐 때, 우리는 누군가의 삶을 관습적이고도 전형적인 방식으로 재현/대상화 할 위험이 높은 것이죠. 이야기의 윤리라는 측면에서 이 딜레마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까요? 「그 여름」을 쓸 때 최은영 작가가 했을 윤리적 고민이 궁금합니다.

 

최은영_ 제가 소설을 쓰면서 가장 두려워하는 부분입니다. 소설로 재현을 할 때 누군가를 ‘전형적인 방식’으로 대상화하는 것은 이야기가 흥미롭지 않다거나 작품이 미학적으로 떨어진다는 것보다도 더 무서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야기의 재미나 미학적 수준은 윤리와 떨어뜨려 생각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같이 갑니다.) 이런 위험 때문에 최대한 제가 아는 부분을 쓰려고 하는데요. 저의 개인적인 경험이나 친구들, 지인들의 경험이 씨앗이 된 이야기들이 있고요. 그러나 실제 경험을 토대로 한 이야기라고 해서 관습적 재현의 위험이 없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더 위험할 가능성이 있기도 한 것 같아요. 그래서 사회과학 서적, 르포, 인터뷰 바탕 논문을 많이 참고하는 편입니다.
이 작품을 예로 들자면, 이경은 자신의 레즈비언 정체성을 쉽게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이는데요. 제가 실제로 이런 경험을 한 친구를 안다고 해서 그대로 썼다가, ‘어떻게 이렇게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느냐’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겠지요. 또 수이 같은 경우 성정체성 수용에서 내적 고통을 크게 겪는데, ‘왜 이렇게 전형적인 모습으로 동성애자를 재현하느냐’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겠지요. 이 경우 레즈비언 여성의 성정체성 수용 연구 논문이나 르포를 보면서 참고했습니다. 저 스스로 확실히 납득할 수 있는 상황까지 다시 쓰고, 비판적인 관점으로 읽어줄 수 있는 친구에게 보여주면서 의견을 묻기도 합니다. 그래도 여전히 작품을 발표할 때가 되면, 혹시나 저의 얕은 이해 때문에 제 글을 읽는 누군가가 상처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낍니다.

관련 작가

최은영 소설가

1984년 경기 광명에서 태어났고 고려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했다. 2013년 작가세계신인상에 중편소설 「쇼코의 미소」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자세히 보기

김신식 일반저자

1982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성공회대에서 신문방송학을,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영상이론을 전공했다. 2008년 <당비의 생각>(舊 당대비평)을 통해 비평, 출판활동을 시작했다. 1인 사회과학출판연구소 '김샥샥 연구소'를 차려 학문제도권 바깥에서의 감정사회학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자세히 보기

강동호 평론가

1984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현재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박사 과정에 재학 중이며 제5회 대산대학문학상 평론 부문 수상 및 200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되며 문단에 나왔다. 자세히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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